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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신 : 시선

박로제 2015. 12. 1. 23:34

사실 그렇게 물어 볼 생각은 없었다. 단지 둘만 있게 된 상황에서, 뭐라도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 너, 날 좋아해? '



말을 내뱉고 난 다음에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지만 더 민망했던 것은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고 저를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는 그 아이였다. 생각없이 그런 말을 내뱉은 저를 탓하며 나는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아이를 지나쳐 교실을 나갈 생각이었다.



' 좋아해. 근데 그게 왜? '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진.







시선






나는 그냥 반에 흔히 있는, 존재감 없는 학생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불량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반 아이들에게 무시 당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냥 말그대로 존재감이 없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반의 일원이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잘생긴 얼굴도 아니었고, 성적이 뛰어난 편도 아닌데다가 성격 또한 조용해서 쉽게 존재감을 지울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학교생활은 외롭고 재미없지 않냐고 나에게 묻겠지만 외롭고 재미없어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나 또한 그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는 지금의 생활이 좋았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상냥했고 아버지는 무뚝뚝하지만 심성이 나쁘신 분은 아니었다. 친구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학교에는 없지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그들과 만나면 말도 많이 했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단지 나는 그들 외의 사람과 연을 맺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이었다. 이미 필요한 인연은 다 가지고 있는데 무엇때문에? 그래서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 벽에 막혀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대로 3년을 보낼 생각이었다. 2년을 버텼으니 남은 1년도 평탄히 보낼 수 있었다. 아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새학기 첫 날, 묘한 시선을 느끼지만 않았다면.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선은 내가 평소에 느끼던 것들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그것은 노골적인 호감의 시선으로 바뀌었고,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에는 끈적하고 야릇한 시선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건 끈적함을 넘어서 오싹하기까지 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몰랐다면 그건 그거대로 무서웠겠지만 자신을 숨길 생각도 하지않고 대놓고 저를 바라보는 것은 더 무서웠다.


저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는 유명인이었다. 신비로운 분위기와 잘생긴 외모는 그 아이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쯤되면 주위에 사람이 많을 법도 한데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때문인지 그 유명도와 다르게 혼자 다니는 아이었다. 처음엔 그런 아이가 저를 보고있을리 없다고, 제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를 보고 있는 그 아이와 시선이 마주친 다음부터는 그것이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확신을 하고 난 다음부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건지 따지고 싶다-였다. 하지만 그건 그 아이가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학교의 유명인을 상대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남은 학교 생활에도 영향을 줄 것이 뻔했기 때문에 따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시선으로 저를 보고는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거나 원하지 않은 것도 포기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봄에 시작된 그 시선은 여름의 습기를 먹기라도 한 것이지 더 음습해져갔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의미모를 시선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저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거지? 그 아이의 시선은 끈적했고, 음습했으며, 장마철의 그 꿉꿉함을 닮아있었다. 근데 왜 아무 짓도 하지 않는거지? 내 궁금증은 커져만 갔고, 그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자마자 터져버리고 말았다.


방학식이었다. 종례를 마치자마자 반 아이들은 신나하며 교실을 빠져나갔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는 나만 남아있었다. 사실 나는 좀 설레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다닐 생각을 하며 나답지 않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방을 챙겼고, 바로 교실을 나갈 생각이었다. 나가려는 순간에 그 아이가 들어오지만 않았으면.



" 아. "



교실에 들어오던 아이는 나를 보았고, 나도 그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교실에 남아있던 사람이 나인 것을 확인하더니 의미모를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웃음을 평소처럼 무시하고 교실을 나가면 되는 거 였다. 그러면 됐는데-



" 나기사군, 날 좋아해? "



그러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머리가 질문을 고르고 있을 때 입은 그런 선택지따위는 저와 상관없다는 듯 아무말이나 내뱉고 말았지만.


말을 내뱉고 난 다음에 엄청난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하지만 더 민망했던 것은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고 저를 쳐다보는 그 아이였다. 생각없이 그런 말을 내뱉은 저를 탓하며 나는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아이를 지나쳐 교실을 나갈 생각이었다.



" 좋아해. 근데 그게 왜? "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진.



" 잠깐, 뭐라고? "


" 좋아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


" 저기, 아...그러니깐, 나기사군? "


" 말해, 신지군. "


" 그래, 어...그러니깐 나를, 좋아한다 말한거야 지금? "


" 맞아. 좋아해.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우리 자주 시선 마주친 것 같은데. "


" 그건 맞는데....나기사군은 내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고.... "


" 꼭 그래야만 해? "



좋아한다는 것에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확신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의, 나기사군의 말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벙쪄서 아무런 말도 못하는 나를 보며 웃은 나기사군은 꽤나 신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좋아해, 신지군. 그래서 계속 바라봤어. 변해가는 내 감정을 내 시선에 담아서 계속, 계속  너를 바라봤어. 뭘 더 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거면 충분했으니깐. "


" 신지군이 내 시선을 의식하고 있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그 이상을 해야한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어. "


" 오늘도 신지군이 먼저 질문하지 않고 이 교실을 나갔다면 나는 평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를 바라보기만 했을거야. 고마워, 그렇게 물어봐줘서. "


" 그럼 먼저 가볼게. 방학 잘보내. "


" 신지군. "



나기사군은 그 말을 마치고 나보다 먼저 교실을 빠져나갔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나는 그에게 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다고 내게 말했다. 좋아하면서 왜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냐고 물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렁 필요가 없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니깐. 하지만 그 아이는, 나기사군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그 시선은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고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선에는 두근거림도 없었고, 설렘도 없었다.



" 대체... "



...방금 전까지도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봤으면서,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눈으로 날 쳐다봤으면서, 뭐가 충분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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