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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백 : 해피투게더 外 본문

이엑쏘

세백 : 해피투게더 外

박로제 2016. 1. 24. 01:28

 변백현은 오세훈을 위해 홍콩에 남았다. 그 날, 이렇게 한국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었던 백현이 비행기 표를 제 손으로 찢어 버린 뒤 세훈을 뒤쫓아 갔고, 그를 붙잡았다. 억울하지만 당신보다 내가 더 용기 있고, 분하지만 내가 더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깐 말할게요. 옆에 있게 해줘요. 아니, 옆에 있을 거야. 싫다는 말 하지 말아요. 처음 봤을 때부터 내가 좋았다고 고백한 사람이잖아 당신. 숨을 몰아쉬며 그동안 참고 참으며 마음속에 쌓였던 것들을 세훈에게 따지듯이 말했지만, 그가 이것들을 무시하고 왜 돌아왔느냐며 소리칠 것 같아 백현은 불안했다. 그가 밀어내도 붙어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세훈은 그에게 소리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이런 말 웃긴 거 아는데, 보내주겠다는 거 다시 붙잡은 당신이에요. 나중에 딴말 하지 말아요. 나 그다지 착한 사람은 아니라서, 나중에 당신이 떠나겠다고 하면 가둬버릴지도 모르거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그런 말을 하는 오세훈에게 변백현이 해줄 수 있는 건 그의 품에 안기는 일밖에 없었고, 세훈은 이제는 보내주지 않겠다는 말처럼 백현을 꽉 끌어안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한참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두 손을 꽉 잡고, 울어서 엉망이 된 얼굴로 바보처럼 웃으며 함께 살아갈,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세훈과 백현에게는 충분했다.

 

 당연하지만 백현의 집은 난리가 났다.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거냐며 온 가족이 나서서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매달렸지만, 그때마다 백현은 여기서 살 이유를 찾았어요. 이게 어머니나 아버지, 형이 말하는 잘못된 선택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니깐,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라는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결국, 포기한 건 백현의 가족이었다. 당장은 무리니 자리 잡으면 한 번은 오라는 말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싸움을 끝내며 백현은 후련하다는 듯이 웃었고, 세훈도 함께 웃었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두 사람의 생활에 문제는 없었다. 백현은 하던 공부를 계속 이어가기로 했고, 세훈 또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백현의 일정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세훈이 학교 앞으로 찾아갔고, 같이 장을 보러 가거나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는 그런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이어졌다. 휴일에는 밖으로 나가 데이트를 하기도 했으며,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리고 백현은 드디어 <해피 투게더>의 마지막을 보았고, 세훈은 대사까지 외울 정도였지만 그의 옆에서 함께 영화를 봐주었다.

 

 그 날도 그랬다. 홍콩의 여름은 덥고 습하며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인데, 그 날은 나가는 게 무서울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원래는 몽콕으로 데이트를 갈 생각이었는데, 우산을 써도 몽땅 젖을 것 같은 데다가 천둥·번개까지 치는 이 날씨에 나가는 건 무모함을 넘어서 죽으러 가는 것과 똑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이번 주말은 얌전히 집에서 영화나 보자는 의견에 동의했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어제저녁 백현이 빌려 온 영화인 <아비정전>을 보는 중이었다.

 

 

 사건은 거기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세훈씨, 왜 나한테 소개 안 시켜줘요?"

 

  "누구를요?"

 

  "장국영 닮은 형 있다면서요. 진짜 닮았다고 해놓고 왜 안 보여줘요."

 

  "···, 백현씨한테 말하고 난 다음 날 그 형 얼굴 봤는데 저--혀 안 닮았어요. 볼 필요도 없어요."

 

  "웃기지 마요. 그 날 닮았다고 계속 그랬잖아. 그래서 별명도 장국영이라며! "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 백현씨는 저 영화 속의 장국영이나 봐요. 장국영이 저기 있는데 뭐 하러 가짜를 봐."

 

  "···그럼 장국영 닮은 남자는 됐으니까 세훈씨랑 제일 친하다는 그 형 만나게 해줘요. 제일 친하고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던 형이라면서요."

 

  "···그렇죠. 그랬지···."

 

  "설마 친한 형도 나한테 소개 안 시켜주는 거 아니죠? 이번에도 거절하면 세훈씨가 나를 어디 소개하기에는 부끄러운 애인으로 생각한다고 오해할 거예요."

 

 이런 식으로 머리를 쓰다니. 세훈은 그때 제일 친한 형이 장국영을 닮았다며 나불거렸던 자신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백현이 장국영을 좋아하길래, 관심 한 번 끌어보려고 했던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이런 상태에서 안 된다고 했다가 정말로 백현이 오해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원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오세훈의 성격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세훈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주 안으로 약속을 잡을 테니 그 날에 맞춰 시간을 비워두라 말했고, 백현은 다음 주 주말이 좋겠다며 웃는 얼굴로 대답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세훈의 어깨에 기댔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처음부터 알았다고 할 걸. 세훈의 기분을 알기나 하는지 영화는 어느새 절정을 향해가고 있었고, 백현은 화면에 크게 잡히는 아비의 얼굴을 보며 잘생겼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 마음에 안 드네.

 

 절대로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세훈은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얼굴로 화면 속 배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세백 : 해피 투게더

(부제 : 내가 더 잘생겼잖아?)

 

 

 

 오세훈은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었다. 저와 친한 도경수가 그 배우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을 뿐이었고, 그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아 본 적도 없었다. 그냥 저런 배우가 있구나, 잘생겼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오세훈에게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그 배우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싫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백현을 상처 입히고 그 대가로 산 채로 시멘트와 같이 매달아 바다에다가 집어 던진 그 쓰레기만큼이나 싫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남자를 이렇게나 싫어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백현이 좋아하니깐! 처음에는 그냥 저렇게 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질투가 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혐오에 가까운 감정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 장국영 때문에 유학 왔잖아요. 솔직히 일본이랑 홍콩 중에서 고민했었는데, 홍콩은 장국영의 도시니까, 혹시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해서.'

 

  '나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꽤 유명했어요. 장국영 나만큼 좋아하는 남학생은 없었거든. 홍콩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가서 공부는 안하고 장국영만 쫓아다니는 거 아니냐고 했을 정도였다니까?'

 

 단순히 얼굴만 좋아했다면 취향이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냥 잘생긴 배우가 연기까지 잘하니깐 좋아한다고 했으면 그것 또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백현이 그 이상으로 배우를 좋아한다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단순한 팬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오세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질투가 났다. 스스로가 치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원래 같았으면 당연히 소개해줬어야 할 사람인 경수와 만나지 못하게 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배우는 연예인이니깐 동경, 팬심으로 볼 수 있지만, 경수는 평범한 일반인이었고, 누가 봐도 멋있는 남자였기 때문에 백현이 도경수를 보고 반하기라도 하면 오세훈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는 형 중에 장국영을 닮은 형이 있다고 처음 말을 꺼낸 것은 세훈이었고, 그 말 또한 영화 속의 배우보다 자신을 더 신경 써줬으면 하는 마음에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던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두 자신이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고, 세훈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주말이 왔다. 경수가 이 만남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거절하는 것을 간절하게 바랐으나 애석하게도 도경수는 오세훈의 '애인'에게 매우 관심이 많았고, 백현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좋다며 고민도 없이 수락했다. 그사이에 끼인 세훈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말에 세 사람이 만날 식당을 예약하는 것과, 지금 도경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빨개진 얼굴로 수줍게 인사하는 변백현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안녕하세요, 도경수입니다."

 

  ", 변백현입니다. 세훈씨한테 이야기 듣고 꼭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돼서 너무 기뻐요."

 

  "세훈이가 제 이야기를 했어요?"

 

  ", ...국영 닮았다고, 해서...그래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근데 정말 닮으셨네요···."

 

 아니, 장국영보다 잘생기신 것 같아요... 경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내뱉은 백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첫 만남에 이게 무슨 추태 냐며 황급히 사과했고, 경수는 나쁜 이야기도 아니고 잘생겼다는 소리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며 괜찮다고 당황한 백현을 안심시켰다.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은 게 너무 부끄러웠는지 백현의 커다란 귀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이대로 있다가는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다며 잠시 찬물로 세수 좀 하고 오겠다며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리에 경수와 세훈만이 남게 되자 오세훈은 여태껏 참고 있던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얼굴 봤으니깐 이제 그만 가지그래?"

 

  "왜 그렇게 공격적이야. 애인이 나보고 잘생겼다고 해서 그래?"

 

  "···."

 

  "아니면, 나한테 장국영 닮았다고 해서? 혹시 네 애인 장국영 좋아해?"

 

  "···."

 

  "세상에, 둘 다인가 보네. 네가 어느 쪽도 대답 안하는 거 보니깐. 이야, 세훈이가 남을 질투할 줄도 알았다니 놀라운걸."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나도 신기해서 이러는 거야. 연애하는 것도 신기한데 질투까지 한다라···. 너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되게 많이 변했네, 세훈아. 마치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자란 자식처럼 자신을 대하는 경수에게 짜증을 내며 세훈은 차게 식은 차를 들이켰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오세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백현을 만나고 그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역시 가장 큰 변화는 세훈에게 질투라는 감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세훈은 그런 초록색의 끔찍한 괴물을 만난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무리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였고, 그건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높은 지위에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에게 없는 건 가족뿐이었으나 세훈이 속한 무리에서는 가족이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오세훈이 타인을 질투한다는 것을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도경수는 그걸 방금 겪었음에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질투하는 것도 모자라 그 대상이 연예인이라니. 거기다가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까지 그 배우와 똑같이 욕을 먹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경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무슨 생각을 하다가 웃음이 터진 건지 알아챈 세훈이 한소리 하려고 할 때, 백현이 돌아왔다.

 

  "기다리셨죠. 빨리 오려고 했는데, 얼굴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괜찮습니다. 따지자면 책임은 저한테 있는데 백현씨 보고 뭐라고 할 수는 없죠."

 

 평소에 잘 웃지도 않아서 저건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 아니 냐며 한 소리 듣는 사람이 오늘따라 뭘 저렇게 헤프게 웃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만났을 때부터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는 경수를 보며 세훈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본래 성격 같았으면 아까 백현이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제 됐으니깐 가자며 손을 잡고 여기를 빠져나갔겠지만 그랬다가 백현에게 무슨 원망을 들을지 몰랐다. 이 질투를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질렀다가 백현에게 두고두고 원망을 듣느니 참는 것이 나았다. 세훈은 그저 이 만남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세훈 씨가 자기는 그런 이야기한 적이 없다면서 경수 씨랑 만나고 싶다는 걸 자꾸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웃기잖아요! 닮은 형이 있다면서 얘기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안 닮았다면서 못 만나게 하는 게 말이 돼요?"

 

  "세훈이가 그랬어요?"

 

  "! 그래서 얼마나 짜증 났는지 알아요?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그런 적 없다면서 못 들은 척 하는 게 얼마나 얄미운지!"

 

  "하하, 그럼 어떻게 설득한 거예요?"

 

  "장국영 닮은 남자는 됐으니까 제일 친하다던 그 형을 소개해달라고 했죠. 이렇게 말하면 거절 못할 테니까요."

 

 백현의 말을 들은 경수는 다 알겠다는 얼굴로 웃으며 세훈을 바라보았다. 백현은 모르지만 세훈의 동료들은 그 소문만 무성한 '오세훈의 애인'을 엄청나게 궁금해 했다. 세훈을 통해서 말만 들었지 직접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은 적은 없어서 한 번만 만나보자고 다들 그렇게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뭘 믿고 형들한테 그 사람을 보여주느냐며 단칼에 거절했던 것이 세훈이었다. 특히나 경수한테 제일 단호하게 굴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한테 그런 식으로 단호하게 안된다고 자르는 모습에 서운했던 건 사실이다. 백현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도 그다지 좋은 표정은 아니어서, 거절할까 하다가 울컥해서 이 만남을 수락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앉아 백현이 자신 쪽으로 시선을 주길 바라고 있는 세훈을 보며 경수는 조금 더 세훈을 놀려주고 싶었다. 왜 자신한테만 유독 야박하게 굴었는지 이유는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의 서운함이 없었던 게 되는 건 아니니깐.

 

  "맞다, 백현 씨 저랑 동갑이라고 했죠?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친구 할래요?"

 

  "?"

 

  "저랑요?"

 

  ". 주위에 저보다 어린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있지만, 동갑인 친구는 잘 없거든요. 백현 씨는 나이도 똑같고, 저랑 취향도 비슷한 것 같고. 다음에 한 번 더 만나고 싶기도 하고."

 

  ", 저야 당연히 좋죠···. 저도 대학에 친한 동기는 있는데 친구, 라고 할 사람은 그다지 없어서..., 그럼 이제 말 편하게 하세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럼···말 편하게 할게, 백현아."

 

 이름 한 번 불렀을 뿐인데 대체 왜 얼굴을 붉히는 걸까. 백현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수줍은 목소리로 응, 경수야...라고 속삭였고, 경수는 제 번호가 적혀있는 명함을 건네주었다. 사무실 번호인데 웬만하면 집보다 거기 있는 일이 많으니 이쪽으로 전화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엄청나게 쓸데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도경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에는 세훈 없이 만나서 영화나 같이 보러 가자는 말까지 해버렸다. 저 인간이 드디어 미쳤나 싶어서 한 소리 하려 했지만 백현의 앞에서 평소처럼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세훈은 다시 침묵하는 걸 선택했다. 말마따나 동갑인 친구를 만나서 들뜬 백현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가 경수 또한 또래의 사람을 만나는 게 엄청나게 오랜만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이 친해진다고 해서 세훈이 손해를 본다거나, 기분이 나빠질 만한 일들은,

 

  "친구 하기로 했으니까 나 이제 말해도 되지? 진짜 왜 이렇게 잘생겼어? 처음 들어올 때 얼굴보고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니까...내가 살면서 봤던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어 정말···."

 

  "세훈이보다 더 잘생겼어?"

 

  "세훈...세훈씨도 잘생겼는데, 그래도 경...수 네가, 좀 더 잘생긴 것 같아..."

 

 ···정정한다. 이 두 사람이 친해지는 일은 오세훈 인생에서 절대로 있어서 안 되는 일이었다. 백현의 눈에는 잘생긴, 하지만 세훈의 눈에는 몹시도 악마 같은 얼굴로 경수는 보란 듯이 웃으며 세훈을 바라보았고, 세훈은 그 날 식사를 끝마치고 헤어질 때까지 경수의 손 위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

 

 

 

 ", ...세훈씨, 잠깐만!"

 

 분명히 경수와 헤어진 뒤 집에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벽에 밀어붙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백현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아니, 풀다가 짜증이 났는지 새로 사주겠다는 말과 함께 손으로 잡아 뜯었다.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단추까지 잡아 뜯었던 적이 없던지라 백현은 깜짝 놀란 얼굴로 잠깐만이라 외치며 그를 말리기 위해 세훈의 손을 잡았지만 되려 붙잡히고 말았다. 양손이 잡힌 상태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눈만 깜빡거리며 쳐다보고 있으니 세훈이 한숨을 쉬며 백현의 입술에 키스했다. 방금 전 단추를 잡아 뜯을 때와는 달리 평소와 똑같은 키스였고, 그래서 백현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주었다. 젖은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 조금은 거칠어진 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자기, 이러는... 흐으, 이유가 뭐, 예요?"

 

  "···말하면, 알아요?"

 

  "후우...지금처럼, 아무 말도 안 할 때 보다는 잘, 알 걸요."

 

  "···."

 

  "···왜 말이 없어요."

 

  "일단 먼저 사과부터 할게요. 아니다. 사실 하나도 안 미안한데, 그래도 사과는 할게. 미안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설명은 내일 아침에 할 테니깐, 지금은."

 

 그냥 얌전히 있어. 말을 마친 세훈은 단추를 모조리 뜯어놓은 백현의 셔츠를 마저 벗겨 아무 데나 던져놓은 뒤 멍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백현을 안아 올린 뒤 빠른 걸음으로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잠깐만, 오세훈! 놀란 백현이 다급하게 세훈을 불러봤지만 세훈은 그것을 무시하고 침대 위에 백현을 던져놓고 자신도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바닥에다가 던져놓았다. 변백현에게만은 한없이 무르고, 다정하며, 자상한 이 남자는 섹스에서도 똑같았다. 백현이 긴장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 분위기에 녹아 즐길 수 있도록 하던 남자가 갑자기 180도 변해 언제 그랬냐는 듯 옷을 잡아 뜯던 것도 모자라 이제는 침대에 던지기까지 한다. 도대체 뭐가 이 남자를 화나게 한 건지 백현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만약 그 원인이 저에게 있고 그것이 타당한 이유라면 그에게 사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백현의 손목을 잡아 누른 뒤 그의 위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세훈의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백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고, 그저 그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두 입술이 맞닿았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키스였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혀와 혀가 얽히고 닿아있을 뿐인데 섹스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막히는데.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세훈 때문에 숨이 막혀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또 손이 잡혔고, 고개를 뒤로 빼며 벗어나려 했지만 도망가지 말라는 듯 쫓아와서 다시 입을 맞춰오는 그를 백현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러다가는 키스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세훈이 그를 놓아주었고, 백현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키스나 애무, 삽입까지 해본 적은 있어도 받아본 적은 없는 백현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준 사람은 세훈이었다. 그런 오세훈이, 작정하고 변백현을 몰아가는데,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나 오늘 죽었구나. 땀에 젖어 잘 벗겨지지 않는 바지를 보며 가위로 찢어버릴까 고민하는 세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백현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

 

 

 

 결국 밤을 새웠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백현은 한숨도 못 잤다는 것을 의미했다.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계속 벌어져 있던 다리는 오므리고 있는 게 불편할 정도였고, 세훈이 물어뜯은 목이나 허벅지, 가슴과 어깨는 따가웠다. 위에 옷이라도 걸치고 싶은데 어제 물고 빨고 깨물고 핥은 가슴은 지금 이불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다행이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지금 이 상태로 학교에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사람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 놓은 오세훈을 지금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이 이렇게 아픈 만큼 등에다가 손톱으로 잔뜩 그어놨으니 괜찮았다. 지금 백현이 세훈을 때리고 싶은, 아니 죽이고 싶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가 원래 방음이 안 된다는 거 나도 알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죠···.'

 

  '이런 식으로 신음소리가 들린 게 한 두 번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어제는 정말 잠을 설칠 정도로 시끄럽게 들려서요. 두 분 사이가 좋은 건 알겠지만 조금은 자제해주세요.'

 

 ···옆집 사람이 찾아왔다. 시끄럽다고.

 

 아침부터 시끄럽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일어날 수 없는 백현을 대신해서 대충 바지만 주워 입고 문을 열어준 것은 세훈이었다. 찾아 온 사람은 몇 달 전 이사 온 옆집 사람이었고, 무슨 일로 왔느냐는 말에 헛기침을 하면서 한 말이 저거였다. 해가 뜨고 나서야 자신을 놓아준 세훈 때문에 정신이 없어 반쯤은 기절 상태이던 백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누군가가 망치로 정신 차리라며 제 머리를 후려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어제가 좀 심하기는 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소리도 참지 않고 엄청나게 질러댔으니 따지자면 백현의 잘못이 맞았다. 그렇지만 이웃이 직접 찾아와서 주의를 줄지 몰랐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혀라도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더 열 받는 건 세훈의 반응이었다.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말과 함께 죄송하다며 사과를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백현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않고 씻으러 가는 게 아닌가! 사랑해마지않는 애인에게 살인충동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

 

  "···?"

 

  "그래, ! 왜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해?!"

 

  "···하아,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건데?"

 

  "아침에 전부 다 설명해준다고 했잖아.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해? 그리고 나한테는 왜 사과 안 해! 너 때문에 옆집에 온갖 추태를 다 들려준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어. 다음에는 안 그럴게."

 

  "지금 그게 사과야? 너 사과 그렇게 배웠어?"

 

 하도 울어서 붉게 짓무른 눈가가 다시 빨개지며 백현이 울먹거리자 세훈은 한숨을 쉬며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 내가 싫다는데, 듣지도 않고, , 진짜... 결국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백현이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고, 세훈은 백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울지 말라고 달래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안겨서 엉엉 울던 백현이 코를 훌쩍이며 이제 무슨 일인지 설명해보라며 축 처진 눈을 치켜뜨고 세훈을 노려보았다.

 

  "···듣고 싶어요?"

 

  "이유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나한테 미안하죠?"

 

  "아니, . 굳이 따지자면 잠도 못 자게 괴롭힌 건 미안하지만, 나머지는 그렇게 미안하지는 않은데."

 

  "너 진짜!"

 

  "지금 화내고 싶은 건 나거든. 변백현, 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말도 안 해주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진짜 헛똑똑이네. 그러니깐 어제 내가 그렇게 쳐다보는데도 무시하고 도경수랑 그렇게 신나게 얘기했던 거지?"

 

  "···그게 왜 나와?"

 

  "보여주기 싫은 사람 마음 죽어도 모르고, 장국영 닮은 그 형 좀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매달리고. 어쩔 수 없이 만나게 해줬더니 신나서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 어어...그러니깐, 지금···."

 

  "내가 옆에 있는데 처음 만나는 남자한테 잘생겼다는 소리나 하고."

 

 이게 무슨 일이야. 백현은 어제와는 다른 의미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지금 세훈이 하고 있는 말을 종합하면 오세훈은, 어제, 도경수한테 질투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해보지만 세훈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대답도 못 하고 멍하게 있는 백현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짜증을 담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꼴사나워 보여서 여기까지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나도 질투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착하지도, 자상하지도 않아. 그냥 참고 있는 것뿐이라고."

 

  "···."

 

  ", 지금 얼굴 귀여운데 뽀뽀해도 돼?"

 

 벙찐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게 귀여웠는지 세훈은 퉁퉁 부은 얼굴을 붙잡고 어젯밤에 역시나 물고 빨아서 얼굴만큼 부은 입술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했다. , 좀 더 화내려고 했는데 역시 안 되겠다. 세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이제는 터질 것처럼 빨개진 얼굴로 고개도 들지 못하는 백현의 귓가에,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그 말을, 해주기로 했다.

 

  "당신이 홍콩에 온 이유는 그 남자 때문이지만,"

 

  "당신이 홍콩에 남은 이유는 나잖아?"

 

  "그러니깐 나한테 좀 더 신경 써줘."

 

 화면 속의 그 남자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나는 이렇게 안아줄 수도 있고, 손도 잡아줄 수 있고,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도 해줄 수 있잖아. , 여기까지 들은 백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여유롭게 웃으며 부끄러운 말을 내뱉는 이 남자에게 지금 당장 안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옆집의 이웃은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집 문을 두드려야 했다.

 

 

 

 

그런데 세훈 씨 이런 사람이었어요? ···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요.

 

사귀기 전에 그런 모습 보여줄 수는 없잖아.

 

...?

 

도망가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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