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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꽃, 그대 01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꽃, 그대 01

박로제 2016. 8. 4. 00:31

아이란 건 빨리 크는 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고 귀여웠던 그의 동생 리츠는 어느새 자라 이젠 제법 듬직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작은 손과 발은 어느새 레이처럼 커져있었고,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졌다. 목소리도 변성기를 거쳐 어른스러운 느낌이 들정도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는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받지만 그때와는 달리 얼굴선도 제법 굵어졌고 지금 리츠의 얼굴은 어린시절의 "예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릴 땐 형아, 라고 부르며 뒤를 쫓아다니던 예쁜 동생이 이제는 험한 말을 하며 형 취급도 안해주지만 레이는 리츠를 보고 있으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직접 키운 것은 아니지만 동생의 성장은 형에게 그만큼 기쁜 일이었다.

안즈도 그랬다.

손과 발, 어디 하나 작지 않은 곳이 없던 그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찬장에 손이 닿지 않아 레이를 불러야했던, 그 작은 꼬마는 없어졌다. 그 작은 꼬마는 자라서 소녀가 되었고, 그 소녀는 이제 곧 어른이 된다.

아이란 건 정말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 걸까.


레이는 안즈가 더는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이안즈 : 꽃, 그대 01



안즈를 데려온 날도 비가 이렇게 쏟아지던 장마 기간이었다.


먼 친척의 장례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상 따지고 보면 남인 관계였지만 제 부모님과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레이도 그들을 몇번 봤기 때문에 장례식을 안갈 수는 없었다. 빗길에 미끄러져서 일어난 운나쁜 교통사고였고, 안타깝게도 차에 타고 있는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은 딸을 이웃집에 맡기고 지방으로 출장을 갔고, 딸 아이의 생일에 맞춰서 올라오는 길에 그런 사고를 당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기일은 살아남은 외동딸의 생일이기도 했다.

운이 나쁘다고, 말하기엔 너무 끔찍한 사고였다. 다들 갑작스럽게 죽은 부부를 추모했고 살아남은 딸을 위로했다. 더욱 안타깝게도 그 여자아이는 이제 겨우 일곱살이었고,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장례를 주관하는 것은 친척들이었고 아이는 밖에 나가 있다고 했다.

'비가 오는데요?'
'차라리 그게 낫지. 여기 있어봤자 좋을 거 뭐 있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영정 사진과 제 부모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말들과 울음소리, 비명, 그리고 자신을 동정하는 시선만 받을텐데 그건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었다.

레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그 답답한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불쌍하고 안된 일이기는 했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장마기간이라 끊임없이 돌아가는 에어컨 때문에 꿉꿉한 실내를 벗어나고 싶었다. 담배나 한 대 피워야겠군. 주머니에 쑤셔넣어둔 담배를 꺼내 막 하나를 물었을 때, 레이의 눈에 제 몸만한 우산을 들고 화단 앞에 서 있는 아이가 보였다.

저 아이구나.

그 집의 딸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런 느낌이 왔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제 몸만한 까만 우산을 들고 수국이 피어있는 화단 앞에 서있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리츠보다 한 살 어린가. 자그마한 소녀를 보고 있으니 집에 두고 온 제 동생이 생각나 레이는 웃음이 나왔다. 

소녀는 울지도 않았고, 의젓하게 서있었다. 다른 친척들의 말을 들어보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울었던 걸 빼면 한번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서는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어른들이 있는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고 감정을 숨겨서 어린게 독하다는 소리도 들은 모양이었다. 너무 울지 않으니 이상하게 생각한 몇몇 사람들이 '너는 슬프지 않니? 왜 울지 않아?' 같은 멍청한 질문도 했던 모양인데, 그때마다 아이는 슬프다는 말만 할 뿐 왜 울지 않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보면 당연했다. 낯선 어른들에게 둘러 싸여서 맘 편히 울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이가 가장 맘 편하게, 신경 쓰지 않고 울었을 때 달래 줄 사람은 여기에 없었고, 그런 사람을 잃은 아이가 울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가만히 서있던 아이는 우산을 집어던지더니 화단에 피어있는 수국을 끌어안았다. 장맛비는 쉴새없이 내리고 있었고, 저 상태로 꽃을 끌어안으면 당연히 물에 젖을 것이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떨어뜨린 레이는, 그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서 그 작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꽃이 마치 부모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엄마, 아빠. 보고싶어요, 내뱉은 말은 그것뿐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옷이 젖고 화단의 흙에 신발이 더러워졌지만 아이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제 부모님을 부르며 오열했다. 이 공간에 그 아이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빗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레이의 귀에는 오직 아이의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날텐데, 어서 데려와야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쿠마 레이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며 우는, 그것도 다 큰 성인도 아닌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고 넋을 놓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아마 다시는 경험할 일 없을 것이다.


그 길로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간 사쿠마 레이는 아이를 누가 맡을 건지로 싸우던 사람들에게 툭 내뱉었다. 제가 데려갈게요. 관심조차 없었던 아이를, 맡는다고 결정한 이유는 정말 그것뿐이었다. 우는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으니까. 단지, 그것뿐이었다.



***



"레이씨."

정신이 들었다.

"아침이에요. 오늘은 약속이 있으시다고 하셨잖아요?"

눈을 뜨니 침대에 앉아있는 안즈가 보였다. 하늘은 장마기간이란 것을 알려주듯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웠고, 약하지만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아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7시였다.

"어제 늦게 주무셨어요?"
"일찍 잤다고 생각하는데...꿈을 꿔서 그런가."
"꿈이요?"

너와 처음 만났을 때의 꿈. 이렇게 답하고 싶었지만 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별 거 아니라고 대답했다. 안즈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들고왔던 차가운 물을 건넸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장마라서 그런가.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고 이미 기억도 안나는 옛날 일을 꿈에서 다시 겪을 줄은 몰랐다. 다 마신 컵을 내려놓자 안즈는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의 볼에 입을 맞췄다. 10년 전, 안즈가 처음으로 이 집에 왔을 때부터 항상 하던 아침 인사였다. 

"좋은 아침...이라고 하기엔 무리인 날씨 같지만. 오늘 하루도 잘보내요."
"...10년 전에만 해도 부끄럽다고 안하더니, 많이 뻔뻔해졌구나."
"안해주면 울어버리겠다면서 나이도 잊고 떼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잊으셨나봐요."

우리 안즈는 이렇지 않았는데. 뽀뽀는 절대 못하겠다며 부끄러워하던 우리 안즈는 어디갔누. 꺼이꺼이 우는 시늉을 하는 레이를 외면하며 안즈는 아직도 침대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하는 그를 일으켜세웠다. 오늘 계란말이가 잘 됐단 말이에요. 빨리 와서 먹어주세요. 리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엌파괴범'인 레이를 위해 안즈가 요리를 배우면서 아침은 항상 안즈가 준비하게 되었고, 식사 준비를 마치면 아침에는 잘 일어나지 못하는 변변찮은 어른인-물론 이렇게 표현한 리츠도 레이와 똑같았다.- 레이를 안즈가 깨우러갔다. 긴 시간동안 이러기를 반복해왔고, 이젠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손에 잡혀 끌려가면서 레이는 안즈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즈는 잘 자라주었다. 이제는 레이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오히려 안즈가 없어지면 곤란한 건 레이였다. 아침에 다정하게 깨워주는 손길도,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그 상냥한 목소리도,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그 아침인사까지,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면 버티지 못할 사람은 안즈가 아니라 레이였다. 사쿠마 레이는 안즈가 필요했다. 

하지만 안즈는 더는 자신이 지켜줘야할 아이가 아니었고, 아마 내일은 오늘보다 더 성장해있을 것이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성년을 앞두고 있으니 또 달라져있을 것이며, 그 다음해에는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 아이는 레이를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자신이 모르는 세상으로 걸어나갈 것이다. 

그러면 내 곁을 떠나겠지.

"아직 잠이 덜 깼어요? 왜 이렇게 멍해요."

얼른 잠깨세요, 이 잠꾸러기 어른.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안즈에게 웃어주며, 레이는 속으로 한탄했다. 정말 아이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걸까. 이 상태에서 멈추지 않을 거라면 조금만 더 천천히 자라주면 좋을텐데. 아니, 차라리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전부 소용없는 말이다.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레이는 조금 울고싶어졌다.



















극악의 연재텀 과연 다음편은 언제 나올 것인가
오타와 비문은 나중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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