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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꽃, 그대 02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꽃, 그대 02

박로제 2016. 8. 30. 17:10


책갈피는 에디(@lovedi97)님이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즈를 데려오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레이는 본가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제 성인이고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리츠 때문에 나가는 걸 망설이고 있었던 레이였다. 그러다 안즈를 맡게 되었고, 이 집에서 키우는 것보다는 나가서 둘이 함께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망설이던 독립을 드디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남자 혼자가 여자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며 걱정했고 여기서 우리가 도와줄테니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레이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키우겠다고 데려 온 아이였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실수하고 벽에 부딪히더라도 제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리츠까지 있는 집에서 안즈를 같이 키우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고, 레이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의 부모님도 더는 그를 잡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집은 본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예쁜 2층집이었고, 1층 거실에 있는 유리창을 열면 바로 마당이 보였다. 레이는 그곳에 꽃을 심을 생각이었다. 어떤 걸 심을까 고민할 때 문득 안즈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그래서 수국을 키우기로 했다. 수국은 돈도 많이 들고 신경도 많이 써야해서 번거롭다고 주위에서 말렸지만 그것말고 다른 꽃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두지도 않았다. 안즈와 자신이 사는 집이다. 그런 특별한 공간에는 특별한 꽃을 키워야했다. 물론 안즈가 수국을 좋아하는 것도 큰 이유였다. 부모님이 좋아해서 안즈도 좋아하게 되었고, 그 날 비를 맞으면서 꽃을 끌어안고 운 이유도 부모님이 생각나서였다고 했다. 잘 웃지 않던 안즈가 처음으로 웃었던 날도 레이가 새로 살게 된 집에서 수국을 키우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했을 때였다.

레이는 안즈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고 싶었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레이에게 있어서 안즈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즈가 원하는 것들로 이 집을 꾸밀 생각이었다.

'...원하는 게 없다고?'
'...'

그러나 안즈는 원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분명히 원하는 게 있었고, 그걸 숨기지 못해 얼굴에도 그게 적나라하게 보였지만 안즈는 레이의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좋다고 했다. 계속 말해도 괜찮다고 원하는 게 분명히 있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말없이 고개만 저을 뿐 안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 레이는 한숨을 쉬며 이유를 물었다. 대체 왜 그러냐고. 이유라도 들어야 자기가 납득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다그치자 안즈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고 했어요.'
'뭐?'
'그래서...아저...씨한테, 폐 끼치면 안된다고...떼쓰고 투정부리다가 아저씨가...저를 맡기 싫다고 하면, 큰일난다고...'

'그러면 또 누가 저를 맡아야할지 시끄러워지니까, 말썽 부리지말고 얌전히...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안즈는 뭐가 미안한지 그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버러지같은 인간들. 저게 어디 부모가 죽어서 혼자가 된 아이에게 할 말인가? 안그래도 안즈를 누가 맡아야 할지 시끄러웠다고 했다. 서로에게 그걸 미루다가 레이가 나서자 얼씨구나 좋다며 떠넘겼고, 혹시 몰라 아이에게도 저렇게 말을 했을 게 분명하다. 사람 취급을 해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말을 여과없이 들어야 했던 안즈를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안즈야.'

레이는 다정한 목소리로 안즈의 이름을 불렀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새빨개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상처 준 그 인간들을 레이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나중에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이라도 해 줄 생각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안즈가 안심할 수 있도록, 나는 너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고 어떤 마음으로 너를 데려왔는지를 알려줘야 했다.

'나는 네가 떼를 쓰고 투정 부린다고 해서 내쫓지도 않을 거고, 네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해줄 생각이란다.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너를 동정해서 하는 것도 아니야. 그건 안즈, 네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들이지.'

'나는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그래서 너를 맡겠다고 한 거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너를 절대 버리지도 않을 거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도 않을 테니까. 말을 마친 레이는 떨리는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어린 아이는 그제야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안즈가 이런식으로 자기 감정을 폭발하는 건 장례식장에서 비를 맞으며 울었던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레이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어설프게 그 모든 걸 이해한다면서 위로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울고있는 안즈를 안아주는 것, 그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태까지 레이가 하자는 대로 군말없이 따르던 안즈는 그 날 저녁으로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로, 원하는 것을 레이에게 요구했다. 아저씨랑 같이 자고 싶어요. 자신의 손가락을 꼭 쥐고 비장한 얼굴로 말하는 안즈가 귀여워서, 레이는 그걸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레이안즈 : 꽃, 그대 02



리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말이 없어서 레이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욕을 하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레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 불쾌하거나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중간에 이야기를 끊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지속되고, 계속 테이블을 두드리며 불안함을 달래던 레이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입을 열려고 할 때, 리츠가 조용히 레이를 불렀다. 

"뭘 걱정하는지, 왜 망설이는지도 알겠는데... 그렇게 해서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알고 있잖아?"
"..."
"똑똑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멍청하네..."

응? 망할 형님. 질린다는 얼굴로 레이를 바라 본 리츠가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휘저었다. 반도 못 먹었는데 얼음 다 녹았네. 이야기를 듣는데 집중해서 손도 못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시 주문해줄까, 하고 물었지만 리츠는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제 갈 거야. 얘기 다 들었으니 끝났잖아?"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섭섭하구먼..."
"별로."

어릴 때는 귀여웠는데, 아니 리츠는 지금도 레이의 눈에는 귀엽지만. 어린 시절의 리츠는 레이를 형아라고 부르며 매우 잘따랐고, 하나뿐인 형인 레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안즈를 질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커가면서 성격이 점점 바뀌더니 이제는 안즈의 1순위인 레이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제대로 형 취급도 해주지 않고 있다. 그게 섭섭하면서도 리츠가 안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잘해주는 게 기뻐서 레이는 지금의 리츠도 싫지 않았다. 그래서 레이는 리츠를 불러내서 자신의 감정을 다 털어놓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레이와 안즈를 지켜본 리츠만이 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였고, 해답을 내려주지 않았지만 입밖으로 꺼냈다는 점에서 레이는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레이는 안즈를 사랑하고 있다. 이건 사실이고, 깨닫는 게 늦었을 뿐 오래된 애정이다. 이건 리츠도 알고 있으며, 안즈의 상대가 레이라는 게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안즈가 진짜 가족이 된다면 그건 리츠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딱히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레이였다. 붙잡아 둘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안즈가 떠날까 봐 두려워 했고, 자신이 보호자로 계속 옆에 있을 수 있도록 안즈가 더는 자라지 않길 원했다.

그리고 리츠는 가장 큰 문제점을 지적했다.

"거절당할까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거잖아. 그래서 안즈가 지금 이 상태로 있어줬으면 하는 거고. 아니야?"

가족을 잃은 안즈에게 가족이 되고 싶다고 먼저 손을 내민 건 레이였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리고 가족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형태였지만 안즈에게 레이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레이도 안즈를 위해 부모가 되어줬고, 형제도 되어줬다. 그런 안즈에게 사실은 널 다른 눈으로 봤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레이도 안즈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서웠다.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했을 때 안즈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서 레이는 너무 무서웠고, 그래서 가족이라는 형태로 안즈를 계속 잡아두길 원했다. 

레이는 안즈가 더는 자라지 않길 바랐다. 아직 어린 아이로 있어줘야 지켜준다는 핑계로, 나는 너의 가족이라는 핑계로 안즈를 잡아둘 수 있으니까. 

"그런다고 안즈가 영원히 아이로 남아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른이 된 안즈가 형님을 떠나면? 그때야 후회할 거야? 그때 왜 잡지 못했는지, 왜 아무것도 못하고 보냈는지?"
"그때가서는 포기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 마음은 그렇게 쉽게 때가 되면 포기가 되는 마음인 거? 우와아- 최악이네."
"망할 형님. 그런 생각으로 안즈 좋아하고 있었던 거면 지금 당장 포기하지 그래? 형님이 아니라도 안즈 좋아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평소에도 리츠는 레이에게 험하게 말을 하긴 했지만 방금 한 말은 평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진지하게 화를 내고 있었으며, 도망가려는 레이를 비난했다. 웃긴 변명이지만 저를 비난하는 말에 레이는 안즈에게 경멸당할까봐 무섭다고 답했고, 리츠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안즈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답했다. 그건 리츠의 말이 맞다. 긴 시간 동안 레이가 봐온 안즈는 레이의 마음을 듣는다고 해서 그를 경멸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생각해서 받아주겠지. 안즈는 그런 아이니까."

안즈라면 레이를 받아줄 것이다. 리츠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게 뭐가 나쁜데?"
"그럼 내 욕심으로 안즈를 잡아두는 게 옳다는 거냐."
"좋아하잖아. 사랑한다면서? 안즈라면 바뀐 관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할거고, 그때를 노려서 안즈의 마음을 돌리면 되잖아."
"리츠."
"안즈가 다른 생각은 못하게, 형님의 곁에 있는 게 행복인 줄  알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나는 안즈의 상대로 형님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치만 형님이 그런 마음이라면, 안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치만 그런 의지도, 노력할 생각도 없다면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포기해.

"잘 생각해보라고. 형님은 답을 이미 알고 있잖아?"

리츠는 이번에는 진짜 가겠다며 손을 흔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지는 동생의 등을 바라보면서 레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리츠의 말이 맞다. 레이는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우습게도 안즈 앞에만 서면 레이는 한없이 작아졌다.

"...꼴사납구먼..."

리츠가 한 말은 전부 다 맞았다. 사쿠마 레이는 꼴사나운 겁쟁이고, 최악인 인간이었다.



***



"다녀왔습니다."

오랜 시간 활자를 쳐다 보고 있으니 눈이 아파 안경을 벗고 잠시 쉬려고 할 때 안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곧 서재의 문이 열리며 안즈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레이씨, 다녀왔습니다. 앉아있는 레이에게 뛰어 온 안즈는 아침때와 마찬가지로 볼에 입을 맞췄다. 아침에,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리고 밤에 잠들기 전에 말로 하는 인사가 아니라 입을 맞추는 걸로 버릇이 들게 만든 사람은 레이였다. 이 집에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직도 자신을 어려워하는 안즈때문에 레이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그때는 부끄럽다고, 못하겠다고 울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레이가 놀라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안즈를 보니 기분이 이상할 정도였다.

"오늘은 좀 늦었구먼."
"많이 기다리셨어요?"
"그럼.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지."

그럼 학교 가지말고 계속 집에 있을까요? 안즈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레이의 품에 안겼다. 학생이 그런 말하면 쓰나. 나는 우리 안즈를 이렇게 키운 적이 없는데. 레이도 웃으면서 품에 안기는 안즈를 끌어 안았다. 품에 가득 안은 안즈에게서는 레이와 똑같은 향기가 났다. 기분이 좋았다. 

평생 이 팔 안에 너를 가둬둘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레이는 평소보다 좀 더 세게 안즈를 끌어안았다.

너는 내 이런 마음을 죽어도 모르겠지. 














미쳐버린 연재텀(총) 에디님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흑흑
너무 재미없어서 저 진짜 어쩌죠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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