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110212200506

유메노사키 백물어百物語 본문

안산블루스따즈/유메노사키 백물어

유메노사키 백물어百物語

박로제 2017. 4. 20. 19:48


*백물어百物語 : 백가지 괴담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촛불을 백 개 켜놓고, 사람마다 돌아가면서 괴담을 하나씩 하며 괴담이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끄는 것.


*노래를 들으면서 봐주세요.




 여러분은 도플갱어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히비키 와타루였다. 토모야는 청소하다가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며 짜증을 냈고, 호쿠토는 평소처럼 그냥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시를 했다. 그러나 와타루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청소도 곧 끝났고 오늘은 더 할 일도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끝까지 무시하고 청소하던 호쿠토는 한숨을 쉬며 도구들을 치운 뒤 와타루가 앉아있던 자리에 앞에 앉았다. 짜증을 내던 토모야도 호쿠토가 자리에 앉자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는지 들고있던 도구들을 정리하고 그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얼른 이야기 해보라는 듯 자신을 쳐다보자 즐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도플갱어란 단어는 둘을 뜻하는 Doppel과 걷는 사람을 뜻하는 Gänger으로 이루어져있죠. 장 파울이라는 작가가 그의 소설<지벤케스>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로 나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생물체를 뜻하는 단어랍니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나면 보통 죽는다고 하죠. 엄청난 공포를 느끼다가 결국 그걸 버티지 못하고 미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마지막은 죽음이었답니다. 뭐, 전부 그렇게 된 건 아니고 괴테는 스물한살 때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났지만 그는 죽지 않았죠. 이런 걸 보면 단순한 미신, 도시전설로 볼 수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알고 있나요? 하하하. 토모야군. 놀릴려고 이런 질문을 한 건 아니랍니다. 어쩜 그렇게 평범한 반응일까요! 그래요 자살한 그 비운의 천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문학계에 구전되어 오는 설 중 하나일 뿐 신빙성은 없지만 그 비운의 천재도 도플갱어를 봤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걸 그의 소설인 <톱니바퀴>에서도 알 수 있죠. 호쿠토군은 그 소설을 읽어보았나요?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이야기죠.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계속 쓸모없는 것만 늘어놓는 것이 짜증났는지 토모야는 결국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화를 냈다. 이런 비현실적인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의 선배가 저와 같이 화를 내주길 토모야는 바라는 것 같았지만 호쿠토는 지금 와타루의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호쿠토군은 이야기가 즐거운 모양이군요."
"즐겁다기보다는 흥미롭다고 해야할까..."
"증거도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따위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건 호쿠토군이었던 것 같은데, 많이 변했군요."
"실제로 겪어봤으니까 변할 수 있었던거겠지."
"호오, 그것 참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그 경험은 나중에 듣도록 하죠! 자, 그럼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겠습니다."

 저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도플갱어란 건 무엇일까요? 생령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죠. 토모야군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런, 역시나 평범한 대답이군요. 뭐, 좋습니다. 실제로 세상에는 저와 닮은 사람이 셋이나 있다고 하니 도플갱어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별로 공감하지 않지만 현대에서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답니다. 자, 질문입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도플갱어를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요? 저는 지금 죽으라고 저주하는 게 아닙니다 토모야군. 

"지금까지 그렇게 말해놓고 그런 질문을 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구요..."
"그런 예측 가능한 점이 토모야군다워서 좋긴 합니다만 겁을 줄 의도는 없었답니다? 그냥 여러분의 생각이 듣고 싶은 것 뿐이에요."
"글쎄요...부장에겐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서워서 도망치지 않을까요? 다가가서 말을 걸어 볼 생각은 안들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그럼 호쿠토군은?"
"토모야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런데 히비키부장."
"뭔가 더 할말이라도 있나요?"
"원래는 다른 모습이지만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한 것도 도플갱어라고 할 수 있나?"
"흐음...그 경우는 다르지 않을까요. 겉모습이 같다해도 본모습은 다르니 같다고 볼 수는 없겠죠? 그나저나 재밌는 질문이군요. 호쿠토군은 그런 경험이 있나요?"
"아니.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어. 다른 녀석들이 본 거지."

 도플갱어란 건 영혼도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습은 같다고 해도 속에 들어있는 영혼은 완전히 다른 존재죠. 호쿠토군이 본 건 장난을 치고 싶은 유령이었을 겁니다. 아, 저의 반응이요? 흐음 제가 두 명이라면...굉장히 편할 것 같군요. 호쿠토군과 토모야군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제가 두 명이나 있으니 시끄러움이 배가 될 것같다니. 그런 말은 실례입니다, 토모야군♪

"그래서 부장이 말하고 싶었던 건 대체 뭐에요?"
"앞서 말했지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 그저 도플갱어라는 걸 두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시간낭비잖아요 완전!"
"새로운 사실을 알았으니 시간낭비는 아니지요."

 히다카 호쿠토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와타루와 토모야는 대화하고 있었고, 이것들은 호쿠토의 일상이었다. 히비키 와타루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그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기묘한 감정에 호쿠토가 두 사람의 대화에도 끼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있을 때, 와타루가 호쿠토의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면서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했다. 

 에이치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지는 않을 겁니다. 찾던 글의 원서를 에이치가 갖고 있다길래 받으러 가는 것뿐이니까요. 번역본으로도 읽은 적이 있지만 이 글은 원서로 읽어두고 싶었답니다. 그게 연극부와 관련이 있냐구요? 물론이죠. 이번 연극은 소설을 각색해볼까 싶어서 말이죠. 소설의 제목은 에드거 앨런 포우의 <윌리엄 윌슨>입니다. 두 사람다 한 번 정도는 읽어보세요.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랍니다.

 와타루는 그렇게 말하고 연극부실을 떠났다. 토모야는 끝까지 이상한 이야기만 하고 떠났다고 투덜거렸지만 호쿠토는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연극부실 문이 열리더니 와타루가 나타났다. 자리를 비운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음에도 와타루는 오래 기다리셨나요? 라는 말과 함께 평소처럼 요란하게 등장했다. 토모야는 시끄럽다 말하며 학생회실에 갔다온 것치고 빨리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소리내 웃으며 들고있던 책을 탁자 위에 내려놓던 와타루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웃던 걸 멈추고 묘한 얼굴로 토모야를 바라보았다.

"제가 토모야군에게 학생회실에 간다고 말을 했던가요?"
"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부장이 학생회장에게 받을 게 있어서 간다고 말하고 나갔잖아요."
"...제가요?"
"이제는 본인이 한 말도 기억을 못해요?"

 그게 부장이 말한 소설인가요? 우와, 전부다 영어야. 책을 들어 펼쳐 본 토모야는 빼곡한 영어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다시 책을 덮었고, 와타루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들어왔던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항상 시끄럽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던 사람이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토모야와 호쿠토 또한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고, 와타루는 연극부실을 열고 나가 복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이제는 창문 밖을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아, 이번에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이렇게 저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까요."

 이리도 만나고 싶어하는데 항상 엇갈린다니, 신도 참으로 가혹하군요. 진정으로 안타까운듯 한숨을 쉬던 와타루는 다시 연극부실로 돌아갔고, 그가 이상해 따라나온 토모야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뒤따라 들어갔다. 허나 호쿠토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은빛머리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와타루는 고개를 들어 호쿠토를 바라보았고, 그는 난처하다는 얼굴로 웃으며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말하지 말라는 듯 엑스표를 만들었다.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알았다는 손짓같은 걸 한 것은 아니지만 와타루는 그 멀리서도 호쿠토의 표정을 읽었는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난처함을 지우고 웃는 얼굴로 호쿠토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호쿠토군."

 무언가를 봤나요? 조용히, 기척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등 뒤로 다가와 서있던 와타루는 호쿠토에게 그렇게 물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히다카 호쿠토는 그 웃음이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호쿠토는 평소와 다름 없는 표정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와타루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그 자색의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눈길로 호쿠토를 관찰하다가 별 다른 말 없이 다시 연극부실로 돌아갔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 얼굴이었지만 붙잡고 늘어질 생각은 없어보였고, 호쿠토는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히비키 와타루의 그런 눈길을 견딜 수가 없었다. 연극부실 안의 분위기는 어쩐지 모르게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불편하다기 보다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같았다. 와타루는 자리에 앉아 갖고 온 책을 훑어보았고, 그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 볼 생각으로 호쿠토는 그 책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히비키부장. 이 소설은 무슨 내용이지?"
"아, 이 소설 말입니까? 포우의 공포단편 중 하나랍니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에요."
"무엇에 대한 이야기지?"
"도플갱어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신과 닮은 남자를 만나 윌리엄 윌슨은 온갖 불행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도플갱어였죠. 허나 윌리엄 윌슨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것을 찔러죽입니다. <잘 보아라, 네놈이 죽인 게 누구인지!> 이렇게 외치면서. 안타깝게도 윌슨과 도플갱어는 둘 다 죽습니다. 후후후. 누가 연기하냐구요? 토모야군은 당연한 걸 물으시는 군요. 이 연극의 각본, 연출, 배우. 모두 이 히비키 와타루입니다. 이 역할에 저만큼 제격인 배우가 있나요?


 히비키 와타루는 그렇게 말하며 평소처럼 웃었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나면 한 쪽은 죽는다고 히비키 와타루는 말했다. 그렇다면 어느쪽이 그의 도플갱어일까? 히다카 호쿠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와타루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이겼다. 나는 항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 너도 죽을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하여, 하늘에 대하여, 희망에 대하여 죽을 것이다. 너는 내 안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어갈 때 너 자신인 내 모습을 보아라. 네가 어떻게 자기자신을 완전히 죽였는가를!」 - 에드거 앨런 포우, <윌리엄 윌슨> 중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