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안산블루스따즈 (85)
110212200506
'내 옆에 있어.' 그때 너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네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자주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잊지 못해도 좋아. 그래도 내 옆에 있어.' 물론 다 쓸모없는 이야기다. 시간을 돌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너에게 손을 내밀 것이고, 너는 그 손을 잡을 거다. 그 시절의 나는 끔찍하게 망가진 너라도 붙잡아두고 싶어 안달난 인간이었고, 너는 자신을 위로해준다면 그 누구라도 좋았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나는 과거를 바꿀 생각도 없고, 후회도 하지 않는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나는 네가 필요해.' 어쨌든 지금 네 옆에 있는 건 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
책갈피는 에디(@lovedi97)님이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즈를 데려오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레이는 본가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제 성인이고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리츠 때문에 나가는 걸 망설이고 있었던 레이였다. 그러다 안즈를 맡게 되었고, 이 집에서 키우는 것보다는 나가서 둘이 함께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망설이던 독립을 드디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남자 혼자가 여자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며 걱정했고 여기서 우리가 도와줄테니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레이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키우겠다고 데려 온 아이였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실수하고 벽에 부딪히더라도 제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리츠까지 있는 집에서 안즈를 같이 키우는 건 ..
아이란 건 빨리 크는 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고 귀여웠던 그의 동생 리츠는 어느새 자라 이젠 제법 듬직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작은 손과 발은 어느새 레이처럼 커져있었고,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졌다. 목소리도 변성기를 거쳐 어른스러운 느낌이 들정도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는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받지만 그때와는 달리 얼굴선도 제법 굵어졌고 지금 리츠의 얼굴은 어린시절의 "예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릴 땐 형아, 라고 부르며 뒤를 쫓아다니던 예쁜 동생이 이제는 험한 말을 하며 형 취급도 안해주지만 레이는 리츠를 보고 있으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직접 키운 것은 아니지만 동생의 성장은 형에게 그만큼 기쁜 일이었다. 안즈도 그랬다. 손과 발, 어디..
장마가 시작되었다. 빨래를 햇볕에다가 말릴 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몸이 쳐지고, 비가 쏟아지는데도 시원하기는 커녕 찝찝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장마 기간이 돌아왔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반기지 않는, 오히려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장마였지만 안즈만은 달랐다. 오랜만에 입궁하는 서방님을 비몽사몽인 상태로 배웅하고, 그 뒤에도 어젯 밤의 여파로 물을 먹은 솜이불 마냥 무거운 몸을 침상에서 일으키지도 못하고 수마에 사로잡혀있던 그녀를 깨운 것은 다름아닌 빗소리였다. 톡, 토독,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안즈는 무거운 몸을 단번에 일으켰고, 마치 한몸처럼 붙어있던 침상에서 벗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창밖에서 세차게 내리는 장맛비를 보며 마치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환..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지 않을래?" 에이치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고 호쿠토는 그 천사같은 미소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 전보다는 얌전해졌다고 하나 눈 앞의 사람은 '그' 텐쇼인 에이치였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조금 모자란 스바루조차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정도로 싸늘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게..." "흑, 흐앙, 시러어.." 그 분위기를 깬 것은 호쿠토의 품 안에 안겨있던 어린 소녀의 울음소리였고,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지간히도 무서웠던지 어린 소녀는 이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호쿠토의 품에 매달렸다. 이렇게 어린 소녀가 자기 품에 안겨 우는 것은 또 처음있는 일이라 당황한 호쿠토가 등을 토닥이며 소녀를 달랬고, 스바루가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