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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엑쏘

세백 전력 : 쌍둥이

박로제 2016. 7. 20. 00:41
쌍둥이라는 건 너무나도 불편했다. 단순히 얼굴이 똑같아서,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오세훈과 오세희는 성별이 달랐기 때문에 얼굴이나 목소리로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 하는 일은 없었다. 세훈과 세희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것을 넘어서 불쾌할 정도로 똑같은 두 사람의 취향때문이었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가 있으니 어른들은 어릴 때 세훈에게는 로봇을, 세희에게는 인형을 선물해줬는데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취향은 인형이었다. 그 날 인형을 두고 서로 가지겠다며 싸우는 도중에 열이 받은 세훈이 집어던진 로봇이 부서지며 만들어 낸 파편이 세희의 볼에 상처를 내는 것을 보고 식겁한 집안의 어른들은 그 다음부터 쌍둥이에게 줄 선물은 항상 똑같은 것으로 사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즐겨입는 옷 스타일까지 겹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옷은 똑같은 걸 두 벌 사면 되는 것이고 음악과 영화는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쌍둥이의 겹치는 취향은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세훈과 오세희는 두 사람의 겹치는 취향을 증오하다시피 했는데 그건 영화와 음악, 음식과 옷을 넘어 사람을 보는 눈까지 똑같았기때문이다. 오세훈의 친구는 오세희의 친구였고, 오세희의 친구는 오세훈의 친구였다. 사람 보는 눈이 비슷하고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까지 비슷한 두 사람의 친구가 겹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다른 쪽 쌍둥이와 친구가 더 친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오세희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알아왔던 김종인이 오세훈과 "남자"라는 이유로 더 친해졌을 때 분함을 이기지 못해 세훈의 정강이를 걷어찼고, 오세훈은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가깝다고 생각했던 정수정이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오세희와 더 친해졌을 때 온갖 욕을 중얼거리며 세희의 머리채를 잡았다. 쌍둥이는 한 몸인데 왜 그걸 서로한테 뺏기는 거라 생각하며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가족들과 친구들은 두 사람을 설득했으나 오세훈과 오세희는 그들에게 쌍둥이라도 따로 태어났으면 남이나 다름없다며 소리쳤다.

그런데, 평범한 사이의 친구가 상대방과 더 친해져도 짜증내는 이 쌍둥이가 만약에 동시에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백현쌤 오늘 과외 끝나고 나랑 데이트하기로 했거든?! 내가 먼저 약속 잡았는데 왜 내가 포기해야해?!"

"웃기고있네. 야, 너 그때 약속한 거 잊었어? 선수치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안나?!"

"그러는 너도 지난 주말에 쌤이랑 놀러갔다왔다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스토커냐?!"

"지랄하고 있네 카톡 프사로 해놨는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네가 그렇게 멍청하니깐 모의고사에서 영어 8등급을 받지!"

모의고사 영어 점수가 까발려진 세훈은 백현을 위해 예쁘게 세팅한 세희의 머리를 잡았고, 세희는 그와 동시에 다리를 들어 제 머리를 잡은 재수없는 쌍둥이 오빠의 무릎을 세게 걷어찼다. 

쌍둥이는 애석하게도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세백 전력 : 쌍둥이



백현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고, 덕분에 돈이 굉장히 필요해졌다. 학비는 장학금, 집세는 부모님이 내주시지만 생활비는 본인이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그래서 신입생 때부터 꾸준하게 해왔던 과외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입대 전에 꾸준하게 공부해왔던 탓에 성적도 좋았고, 꽤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백현은 과외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받는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과외를 더 늘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동기인 찬열이 좋은 알바가 있다며 소개시켜준 자리였다. 주 3일, 하루에 5시간, 월급은 일당으로 쳐서 하루에 10만원, 성적 오르면 플러스 알파로 더 챙겨준대. 어때, 할래? 내 사촌동생인데, 공부를 너무 안해서 우리 이모가 고생한다고 하더라고. 일단 이모한테 말은 해놨는데 굉장히 좋아하더라. 생각있으면 여기로 전화해봐. 그렇게 찬열이 건네 준 종이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있었고, 백현은 망설임없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달에 백이십,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런 일을 소개시켜 준 찬열에게 뽀뽀라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찬열의 이모님은 백현을 마음에 들어하셨고, 그 다음 주부터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현은 지금 박찬열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죽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자신에게 달려가 전화하기 전에 그 종이를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딴 알바하지말라고, 하게되면 머리털이 뽑혀나갈 정도로 고생할테니깐 절대 하지말라고! 하지만 변백현은 타임머신도 없었고, 박찬열을 죽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 알바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첫째는 돈이었고, 둘째는 돈이었으며, 세번째는 돈때문이었다. 

"선생님 저 이번 기말고사 성적 오르면 제 부탁하나만 들어주시면 안돼요?"

"세희, 뭐 갖고싶은 거라도 있어?"

"갖고싶은 게 있으면 주실 거예요?"

"선생님 능력에 한해서."

"그럼 도장주세요. 선생님 도장."

"선생님 도장은 왜?"

"혼인신고서에 도장 찍게요!"

백현은 일단 참았다.

"백현아."

"...오세훈, 말이 짧다."

"다음 모의고사에서 나 영어 1등급 받으면,"

"8등급이 꿈도 야무지네. 그리고 반말하지마."

"아 말 끊지말고, 아무튼 영어 1등급 받으면 내 부탁도 하나만 들어주면 안돼요?"

"실현 가능성이 없어보이지만 일단 들어나 보자. 뭔데?"

"나랑 연애해요."

"영원히 선생님이랑 네가 사귈 일은 없겠네. 멍청한 오세훈아."

세희의 말 한마디에 세훈이 들고있던 지우개를 이마에다가 던져버리면서 이제는 세기도 힘든 쌍둥이의 싸움이 벌어졌고, 백현은 이번 달에 들어 올 월급을 생각하며 참을 인자를 마음 속 깊이 새겨넣었다. 참자, 참아야 한다, 수도세가 올랐다 백현아. 물가도 올랐다 백현아. 저번 달에 게임 과금했던 거 잊지마라 백현아. 그러니깐 참아야 한다. 백현은 지금까지 했던 그 수십가지 생각들을 다시 되씹으며 세훈과 세희가 풀었던 문제들을 채점했다. 차라리 두 사람다 백현이 가르치는 걸 이해 못하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그대로였다면 능력이 없다며 잘리는 것으로 이 쌍둥이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빌어먹게도 백현을 만난 후부터 성적이 꾸준하게 오르기 시작했고, 매번 영어 8등급이라고 세훈을 놀리고 있지만 현재는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씩 영어 성적도 오르고 있었다. 덕분에 백현은 플러스 알파로 보너스를 받게되었고, 더욱더 제 발로 걸어나가기 힘들어졌다. 

백현이 채점을 끝내고 빨간색연필을 책상 위에 올렸을 때 쌍둥이의 싸움도 끝났고, 세희는 백현의 오른팔에 매달리고 세훈은 왼팔에 매달려서 미주알 고주알 저게 나를 어떻게 때리고 나한테 어떤 폭언을 내뱉었는지 이르기 시작했다. 오세훈이 나한테 돼지래요! 선생님 저 돼지같아요? 아니죠? 오세희 저게 나보고 자꾸 바보라고 하잖아! 나 처음보다 성적 많이 올랐지? 그치?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매달려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듣고있던 백현은 내일 학교에 가면 박찬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겠다고 다짐했다. 



***



돈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솔직히 핑계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백현은 오씨 남매의 얼굴을 좋아했다. 정말 뻥 안치고 쌍둥이의 얼굴은 지독하게도 백현의 취향이었다. 심지어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쌍둥이의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하기까지 했다. 물론 쌍둥이 앞에서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알면 당장이라도 결혼하자면서 매달릴테고, 애석하게도 얼굴을 제외한 부분은 그다지 백현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얼굴! 얼굴만이 취향이었다. 아니, 최근에는 그래도 그동안 지내 온 시간이 있어서 처음처럼 마냥 부담스럽고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그 저돌적인 쌍둥이가 귀여워보이기도 했고, 둘다 제법 키가 있어서 매달리면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강아지처럼 매달려서 애정을 달라고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이미 저격당한지도 오래였다. 

그렇다. 사실 변백현은 쌍둥이가 좋았다. 그 애정이 비록 두 사람의 애정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해도 어쨌든 백현은 세훈과 세희가 좋았다.

"너 그런 얼굴이 취향이었냐?"

"그래! 덧붙여서 말하자면 네 얼굴은 내 취향 아니다."

"내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

"어디가 어떻기는. 못생겼지."

"웃기지마 내가 오세훈보다 잘생겼고 오세희보다 예쁘게 생겼거든?"

"찬열아 드디어 미친거야? 아니면 눈이 잘못되기라도 했어? 네가 제정신이고 눈이 멀쩡하면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데?"

"...너 오늘 한 얘기 그 두 사람한테 말 하는 수가 있어."

안돼. 말하지마. 그전까지 실실 웃으며 찬열을 놀리던 백현은 바로 자세를 바꿔 미안하다 사과했다. 지금도 부담스럽게 들이대는데 그런 말을 들었다가는 폭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은 조금 부끄러웠다. 세훈과 세희는 본인이 잘난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걸 나름 어필이라고 백현의 앞에서 자랑한 적이 많았지만 한 번도 두 사람 앞에서 외모에 대한 칭찬은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영혼없이 예쁘다, 잘생겼다같은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취향'의 외모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쌍둥이는 어느순간부터 외모로 어필하는 것을 관뒀는데, 그랬던 변백현이 사실은 엄청나게 두 사람의 얼굴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가는...부끄럽고, 부끄러웠으며, 이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어떡할 건데?"

"뭐를?"

"걔네가 진심인 건 너도 알잖아. 어떡할 건데? 계속 무시할 거야?"

"음..."

"내가 걔네 어릴 때부터 봐서 아는데, 절대 누구 하나가 너랑 사귀기 전까진 포기 안 할 걸? 아니다, 사귄다고 해도 계속 들이댈 거다. 어린애들 장난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왔지 않아?"

"뭐..."

내가 보기에도 쌍둥이가 나 포기할 것 같지는 않거든. 내가 걔네 본지만 벌써 1년이 넘었는데 그것도 모르겠어? 나 반년 전에 이미 장가가는 거 포기했어 찬열아. 처음에는 내가 왜 사이에 끼어서 고생해야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깐 나쁘지도 않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셋이서 결혼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에라이 미친놈아. 박찬열은 결국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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