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안았을 때의 그 느낌을 카나타는 기억해냈다. 매우 뜨거웠던 그 느낌을, 잊기란 쉬운게 아니었다.
카나타선배.
안즈는 그 날 이후 카나타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카나타를 만나러 분수대에 오는 일이 많았고, 그의 물놀이에도 자주 어울려주었다. 처음에는 옷이 젖을까 분수대에 발만 담궈놓고 있었지만 안즈씨. 저랑 「물놀이」 해주지 않을 건가요? , 라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헤엄을 치고 있는 카나타를 보고 있기가 어려웠는지 안즈는 옷을 갈아입고 분수대로 자주 물놀이를 하러왔다.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카나타 혼자일 때는 다들 평범한 일상처럼 넘어가겠지만 거기에 안즈가 끼어있다면 조금 달랐다. 처음에 교복을 입고 카나타와 물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 그걸 보고 달려 온 아라시가 처음 보는 얼굴로 화를 냈고, 체육복을 입고 물 속에 들어가 있는 안즈의 모습을 본 케이토는 그 자리에서 세시간이나 설교를 했다. 그러나 안즈는 매일 카나타를 만나러 왔고, 날이 추워지기 전까지 계속 그와 함께 물놀이를 했다.
날이 추워져 안즈가 분수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만 담구고 있을 때, 카나타는 칠석제를 떠올렸다. 카나타는 그 날, 무대가 보이지 않는 그녀를 안아올려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카나타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좋게 남아있었다.
이건 카나타의 마음이지, 안즈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녀도 똑같이 생각할까? 그때의 그 행동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카나타는 안즈의 마음과 생각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무슨 일이에요, 카나타 선배?
아무 말도 없이 제 손을 잡고 있는 카나타가 이상했는지 안즈는 카나타의 젖은 머리 위에 수건을 얹었다. 이제 그만 하고 나오세요. 바람도 차가운데. 마주 잡은 손은 그날처럼 뜨거웠고, 카나타를 바라보는 안즈의 얼굴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저 미소는, 오직 카나타만이 보았던 특별한 미소였다.
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안즈 씨. 이번 「휴일」에 혹시 「시간」 괜찮나요?
네? 아. 괜찮아요. 무슨 일 있나요?
저랑 「데이트」해요 안즈씨.
카나타의 말을 들은 안즈는 수줍게 웃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과 생각이 어떤지. 카나타는 그 어느때보다 밝게 웃었다.
나츠메의 일상을 허락도 없이 들어와 마구 헤집어 놓는 사람은, 학원의 유일한 소녀였다. 작고, 가녀리고, 힘없어 보이는, 그 무력해보이던 소녀는 나츠메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냈고 이 학원을 바꾸었으며, 이제는 아주 태연하게 나츠메의 일상에 들어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아니, 조금 다르다. 소녀가 나츠메의 일상을 휘젓고 다닌 건 맞지만 그걸 내치지 않고 그대로 소녀를 자신의 일상에 들어오게 만든 사람은 바로 나츠메다. 먼저 그녀를 마음에 담은 것은 나츠메 자신이었고, 그녀의 말과 행동에 자꾸 신경을 쓰며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는 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 초래한 일이었다. 마법사는 자신인데, 오히려 안즈가 더 마법사처럼 느껴졌다.
나츠메군. 또 땡땡이치는 거야?
사람을 찾는 일에 재능이라도 있는 건지, 안즈는 나츠메를 잘 찾아냈다. 당번일을 빼먹고 사라지면 금세 찾아내서 교실로 끌고 갔고, 내킬 때만 등교하는 나츠메를 걱정해 집 앞까지 찾아온 적도 있었다. 내 집은 어떻게 알아낸거야? 한번도 말해준 적 없는 자신의 집 앞에 안즈가 서있자 나츠메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어보았고, 그녀는 사쿠마 선배가 가르쳐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 날 나츠메는 친히 경음부실까지 찾아가 자기가 레이에게 만들어 준 그 관을 제 손으로 고장을 냈다. 사실은 망치로 부술까하다가, 그 다음날부터 안즈와 함께 등교를 하게 되어서 고장내는 것에 그쳤다.
내버려두라고 해도 안즈는 말을 듣지 않았다. 너는 꽤나 고집이 쎄네. 수업에 땡땡이치려던 나츠메를 찾아내 교실로 데려가던 안즈를 향해 나츠메가 한 말이었고, 안즈는 그런 말, 많이 들었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렇게 안즈는 나츠메의 일상에서 이제 뺄 수가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나츠메의 일상에 끼어들어 간섭하는 이 모든 행동이, 안즈가 프로듀서이기 때문이라고 보기엔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이상한 걸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묘한 일이었다. 나츠메는 그걸 안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생각이 그의 착각이었을 때 돌아 올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그다지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잡고 있는 이 손을 보고 있으니,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코네코쨩.'
'응?'
'나를 좋아해?'
나츠메는 일부러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썼다. 최대한의 방어였다. 안즈는 답이 없었다. 조금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 나츠메의 눈에 빨개진 안즈의 귀가 보였다.
'...그렇게 티났어?'
사카사키 나츠메는, 마법을 쓰지 않았다.
우리집 아이가 되어주면 좋을텐데.
조용히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때, 뜬끔없이 에이치가 내뱉은 말이었다. 가든 테라스에 있는 사람은 안즈와 에이치 이 두 사람 뿐이니 저 말은 안즈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맥락도 알 수 없는 그 말에 안즈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제 식어버린 퐁당 쇼콜라만 포크로 괴롭히고 있을 때,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에이치가 입을 열었다.
"안즈쨩이 우리 집 아이가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이해를 못하겠어요."
"응. 생각해보니 조금 행복해졌어. 어때, 안즈쨩. 우리 집 아이가 될 생각은 없니?"
"그-러-니-까. 이해를 못하겠다구요, 그 말."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걸 지금 말하는 것뿐이야. 안즈쨩. 진지하게 생각해줄 수 없을까?"
"싫어요."
단호하게 말하는 안즈를 보며 에이치는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안즈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에이치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영리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얼굴이었다. 딱히 에이치의 외모가 안즈의 취향인 건 아니지만 그렇게 천사같이 생긴 얼굴이 우울한 얼굴로, 슬픈 얼굴로, 안되냐고 물어보면 거절하는 게 오히려 죄같아서 이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넘어가버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번에 에이치가 한 말은 자기 집의 아이가 되어달라는, 기가 막힌 요구였고 안즈는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말이었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안즈쨩이 나와 같은 텐쇼인이 되어주었으면 해."
"보통 그럴 땐 프로포즈를 하지 대뜸 우리집 아이가 되어달라고 하지 않아요."
"나는 결혼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럼요?"
결혼은, 상대를 붙잡아 둘 구속이 될 수 없는 걸.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관계잖아? 나는 그런 것보다 더 완벽한 관계를 원해 안즈쨩. 에이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조금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안즈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에이치를 무서워하고, 같이 있는 걸 버티지 못해 도망가던 그 소녀는 이제 없었다.
"에이치선배."
"응, 안즈쨩."
"저는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도망가지도 않아요."
"알고 있어."
"말로만 그러지말고, 나를 믿어줘요."
믿지도 않으면서 떠날까 겁부터 먹지 말아줘요.
안즈는 조금은 지친 얼굴로, 화를 억지로 참으며 에이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에이치가 어떤 의도로, 무슨 마음으로 자신에게 이러는지 알고 있다. 처음에는 이건가, 싶었지만 지금은 확실해졌다. 안즈는 그를 이해하고 있다. 처음에는 무섭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좀 더 그에 대해 알고나니 안즈의 눈에는 보였다. 텐쇼인 에이치가 어떤 사람인지. 감히 이해한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안즈는 그를 이해하려 애를 썼고, 노력했다. 그런 안즈를 힘들게 하는 건 이렇게까지 해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에이치였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에이치는 자꾸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집 아이가 되어주지 않을래? 그러지 않아도 당신 옆에는 내가 있을 거에요. 수십번을, 수천번을, 수만번을 말해줘야 에이치는 안즈의 말을 믿어주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지칠 법도 한데 안즈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에이치에게 지쳐서 떠나면 결국 그의 말대로 되는 거였고, 안즈의 패배였다. 그녀는 죽어도 에이치의 말을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장한 얼굴로 이미 식어버린 홍차를 마저 마시며 안즈를 바라보던 에이치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역시 안즈쨩이 우리집 아이가 되어주면 좋겠어."
"저도 역시 싫어요."
칼같은 거절에도 에이치는 웃었고, 안즈 역시도 웃었다. 평소와 다를 거 없는, 평범한 티타임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항상 그 사람이 있었고, 안즈는 그때마다 도망을 갔다. 좀 더 빠르게 걸었고, 시선이 느껴져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실수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안즈를 쫓아오지는 않았지만 그건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안즈의 이런 도망은,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그는 안즈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단지 그가, 이즈미가, 세나 이즈미가, 넓은 마음으로 봐주고 있을 뿐이었다.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
누군가가 안즈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였다. 네가 선택한 일이라고, 이 상황을 만든 건 안즈 바로 너 자신이라고. 그 목소리는 스스로의 목소리와 많이 닮았었고 눈 앞에 보이는 까만 형태도 안즈를 닮아 있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이니 어찌보면 당연했지만 안즈는 제 눈에 보이는 그 괴물이 싫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고, 다시 뜨니 눈 앞에서 섬뜩한 얼굴로 웃던 괴물은 사라졌지만 귓가에는 계속,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의 누군가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알면서도 선택했잖아.
주위에서 다 너를 말렸어.
기억안나? 그런 사람을 밀쳐내고 그 남자를 선택한 건 너야.
후회하니? 후회될거야.
그치만 어쩔건데. 도망갈 곳은 있어?
머리가 아파왔다. 안즈는 두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누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살려줘요. 그러나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안즈는 그저 소리 없이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도망가야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숨어야 한다.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은 저와 이즈미 뿐이고, 안즈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즈."
잡았다.
공포에 떨고 있는 몸을 잡아 그대로 품 안에 안은 이즈미는 안즈의 발을 보며 혀를 찼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나온 것은 이해하지만 맨발로 나오다니. 더러워지고 다쳐서 상처가 나고 피가 굳어있는 작은 발을 보니 짜증이 나 이즈미는 화를 내려다가 이 상태면 당분간은 얌전히 있겠지 싶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안즈는 이즈미에게 안겨있는 상태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같은 말을 하며 울었지만 아무도 없는, 오직 이즈미와 안즈만 존재하는이 공간에서 안즈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도망가려는 안즈를 잡아와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이 날을 위해 사둔, 안즈만을 위한 집에 이즈미는 사랑하는 그녀를 가두었다. 세나 이즈미는 안즈가 언젠가는 자신을 떠날거라고 믿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이즈미는 모든 준비를 마쳐놨고, 적절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서 헤어져달라고 하는 안즈의 말을 들어주었고, 의심을 사지 않도록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눈속임을 할 수 있는 가짜연인도 만들어두었다. 그의 계획은 성공했고, 아무도 세나 이즈미를 의심하지 않았다. 안즈는, 그제야 온전하게 세나 이즈미만의 안즈가 되었다.
가둬 둔 연인을 이즈미는 묶어두지도 않았고, 감시하지도 않았다.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도록 풀어두었다. 처음엔 의심하던 안즈도 그런 날이 계속 되자 이즈미가 없는 틈을 타 도망을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잡혀왔고, 안즈는 끔찍한,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그 집 안에 갇혔다. 자유롭게 놔두는 이유는 단순한 이유였다. 안즈는 자력으로 이 숲 속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안즈에게 있어 그 누군가는 이즈미 뿐이었지만 그는 절대로 안즈가 이 숲을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비가 다른 꽃을 찾으면 날개를 찢어놔야 하지 않겠어?
언젠가, 이즈미가 했던 말이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지켰다. 나비는 거미줄에 이미 걸렸고, 욕심 많은 거미는 누군가가 나비를 훔쳐가지 않게 가장 먼저 날개를 찢었다. 이제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된 나비는 거미에게 먹힐 일만 남았다.
거미에게 먹힌 나비는, 그와 하나가 되어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안즈 씨는 「바다」를 좋아하나요?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였다. 카나타는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안즈는 그런 카나타를 바라보는, 그런 평범한 하루였다. 다른 게 있다면 늘 일이 많아 바쁜 안즈가 할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레슨도 없었고, 기획서는 이미 다 넘긴 상태였다. 만들어야 할 의상도 없었고, 당분간은 그 어떤 행사도 없었다. 할 일이 없어서 학교를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았지만 정말로, 안즈가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이럴때 푹 쉬는 것도 일이라네, 아가씨.」 라고 말하는 레이 때문에 일거리를 찾는 걸 포기하고 카나타를 만나기 위해 분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즈는 카나타를 좋아했다. 좋아한다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고, 이 '좋아한다'는 연애 감정에 가까웠다. 아직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안즈는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갖게 해준 것만으로도 카나타가 고마웠다. 조금 들뜬 걸음으로, 평소보다 더 빠르게 걸어서 도착한 분수대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카나타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안즈 씨는 들어오지 않을 건가요?
오늘은 여분의 옷을 가져오지 않았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분수대 안으로 들어와서 같이 놀 수 없다는게 아쉬웠는지 카나타는 조금 풀이 죽은 얼굴이었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카나타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구나. 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느긋함을 즐겼다.
매미 울음 소리, 카나타와 안즈가 만들어 내는 물소리,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음. 여러가지가 들려왔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카나타였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던 카나타는 물 밖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안즈에게 물어보았다. 안즈 씨는 「바다」를 좋아하나요? 뜬끔 없는 질문이었고,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바다요?
네. 「바다」를 좋아하시나요?
바다 그 자체를 좋아하냐고 묻는 거라면 좋지도, 싫지도 않다고 말해줄 수 있겠지만 안즈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소녀에게, 바다는 카나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름의 바다 그 자체인 사람. 안즈에게 카나타는 그랬다.
좋아해요.
「좋아」하나요?
네. 좋아해요.
카나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안즈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더니 앉아있던 안즈를 안아올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란 안즈가 소리를 질렀지만 카나타는 소리내어 웃을 뿐이었다. 카나타에게 안기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처음있는 일이라 안즈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치만 내려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즈 씨.
아, 네?
저도 「태양」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카나타가 한 말에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안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고, 태양을 등지고 자신에게 안겨있는 안즈를 보면서 카나타는 다시 한번 말했다.
좋아한다구요, 반짝반짝 빛나는 「태양」씨?
그제야 말의 의미를 파악한 안즈는 다시 한 번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안즈씨는 나쁜 사람이네요.
의미를 알 수 없는 히나타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할 일에 열중하고 있던 안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만들던 의상을 자신의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거, 무슨 뜻이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안즈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으며 히나타는 말을 이어갔다.
"알고 있잖아요, 안즈씨."
"나는 히나타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걸."
"어라, 우리 이 대화 두번째 아닌가요? 그새 잊은 거에요?"
"...또 그때 이야기야?"
별로 달갑지 않은 주제였다. 안즈는 한숨을 쉬었고, 히나타는 재밌다는 얼굴이었다. 답례제 때 두 사람의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오고갔었다. 히나타는 발렌타인 데이 때 본심을 담은 초콜렛을 누구에게 줬냐고 물었고, 안즈는 거기에 모두 좋아해서, 모두에게 주었다고 대답했다. 믿을 수 없었던 건지 히나타는 몇번을 다시 물었고, 진심으로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안즈를 향해 이렇게 말했었다.
「진심으로 모두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잔인하네, 안즈씨는.」
모두가 안즈씨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걸 전부 튕겨내고 있다니, 불쌍하구나 모두.
「물론 가장 불쌍한 건,」
나려나? 그렇게 말하는 히나타의 얼굴은 1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서, 그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안즈조차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이름이 주는 느낌때문일까, 아니면 평소의 행동 때문일까. 히나타는 안즈에게 있어서 밝고 명랑한, 언제나 활기 찬 동생같은 후배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히나타는 평소와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안즈는 그런 히나타가 솔직히 말해서 달갑지는 않았다. 히나타가 강요할 문제도 아니었으며 안즈의 감정은 안즈 자신의 것이었으니 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까지 히나타가 강요하는 게 이상했다. 안즈는 모두를 공평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누구 한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한 적은 단 한 번도없었다. 그녀는 프로듀서였으니까, 그게 맞았으니까,
"언제까지 숨길 건가요, 안즈씨?"
"...오늘따라 이상한 말만 하네 히나타군."
"이것봐. 또 모른 척 한다니까~"
...언제까지 숨길거에요? 나, 다 알고 있는 걸요. 그때까지 평소와 다름 없는 얼굴로 히나타를 바라보던 안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치고 올라오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서늘한 표정으로 눈 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해주지도 않는 주제에."
"..."
"잘난듯이, 「나」를 프로듀스하고 있던 거야?"
안즈는 히나타에게 잡힌 손목을 뿌리쳤고, 히나타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 웃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물러났다. 본심을 들킨 안즈의 얼굴은 본 적 없는 무서운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