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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君の銀の庭(너의 은의 정원)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君の銀の庭(너의 은의 정원)

박로제 2017. 6. 22. 22:44



*kalafina의 君の銀の庭(너의 은의 정원)을 들으면서 봐주세요.





무라사키노우에를 처음 만난 겐지의 마음이 필시 이런 것이었겠지. 그것은 사쿠마 레이가 소녀를 처음 만났던 날 밤, 달을 보면서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황태자의 궁은 유난히도 금목서의 향이 짙었다. 궁의 주인을 닮았나보군요. 그의 스승은 그렇게 말했다. 레이는 그 말의 뜻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마치 인형처럼 항상 표정이 없어서 불만이었던 제 스승의 얼굴이 다른 때보다 유하게 풀어져있었기 때문에, 그는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다. 가지고 있는 재능보다는 화려한 외모가 더 유명했던 황태자의 궁은 자신이 주인을 닮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지, 계절마다 가지각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봄에는 꽃의 왕이라는 모란, 여름에는 장맛비를 품은 자양화, 겨울에는 차가운 눈을 맞고도 화려하게 피어나는 동백, 그리고 가을에는 그 향이 만리까지 간다하여 만리향이라 불리는 금목서가 황태자의 궁에서 피어 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허나 아름답다고 소문난 것과 달리 그 궁의 모습을 제 두 눈으로 본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태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대신 황위를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황태후와 그의 스승, 그리고 황태자의 어린 동생만이 그 궁의 화원을 두 눈으로 보았을 뿐이었다. 다들 그것을 직접 보고싶어했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을테니 가까운 이 외에는 들이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직접 본 이가 없으니 화원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과장되게 부풀려져서 황궁 밖에까지 지나치게 과장된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허나 아름답기는 했지만 그곳의 주인인 레이에게 있어서 화원은 모든 걸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단지 꽃을 좋아해서 그렇게 꾸몄을 뿐이며 스스로도 이 화원의 꽃의 향은 다른 곳의 꽃보다 더 짙은지, 왜 더 화려하고 탐스럽게 피어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랬던 그가 생각을 고쳐먹은 건, 우연히 만난 그 소녀때문이었다.


「거기 누구냐.」

그 날의 수업을 마치고 화원으로 나오니 다른 때와 다르게 인기척이 느껴졌다. 황태자가 자신의 화원에 모르는 이가 들어오는 걸 싫어한다는 건 궁에 사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하나뿐인 동생은 지금 외가에 가있었고, 황태후는 지금 한창 정무를 보고있을 시간이니 남는 건 자객 뿐이었다. 감히 감도 크구나, 이 시간에 내게 자객을 보내다니.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꺼내려할 때, 수풀 사이로 겁을 먹은, 아주 작은 여자 아이가 걸어나왔다.

훗날 그는 이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화원을 가득 채웠던 금목서 향과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말했지만 레이는, 때마침 우연찮게 일어났던 그 일에 대해서 정말로 감사하고 있었다.

늦가을의 저녁노을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손에는 금목서의 꽃가지를 들고 있던 아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몰래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허리까지 굽혀가며 잘못을 빌었다. 분명히 잘못한 것은 이 아이였고, 레이는 허락도 없이 화원에 멋대로 들어온 아이에게 화를 내며 여기가 어딘 줄 아냐고 혼을 내야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린 궁인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이곳에 들어와 모란꽃 하나를 몰래 꺾으려다가 들켰을 때는 이 궁에 너같은 것은 필요없다며 쫓아낸게 몇달 전인데, 그때의 어린 궁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레이는 금목서 꽃가지를 들고있는 아이에게 아무런 분노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레이의 얼굴을 확인한 아이는 조금 자신감이 생겼는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버님을 따라 궁에 왔는데, 금목서의 향이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이곳으로 와버렸다고.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꽃가지까지 꺾어버려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이며 다시 고개를 숙였지만 레이는 그것을 흘려들으며 멍한 얼굴로 그 아이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저를 부르는 아이때문에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괜찮다 말하며, 비이상적으로 짙은 향을 내는 꽃을 피워내 너를 홀린 자신한테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치만, 아버님께서는 남의 것을 함부로 만져서는 아니 된다고 하셨는데...」
「그럼 내가 그 금목서 꽃가지를 너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하자. 자, 이제 그 꽃가지는 네가 꺾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준 선물이 되니 괜찮지?」
「아, 음. 감사...합니, 다.」

감사하다 말하며 얼굴에 울음을 지우고 웃는 모습을 보니, 우습게도 또 할 말을 잊어버려 레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보다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아이는 향을 쫓아 이곳으로 왔다고 했으며 황궁에 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원래는 어디에 있었냐고 물어보니 말을 하지 못했고, 레이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에게 자신이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저희 아버님을 알고 계세요? 아이는 그렇게 물었고,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입고 있는 옷과 말투를 보아하니 명문가의 여식일 게 뻔했고, 아비를 따라 황궁에 들어왔다는 말로 추측하건데 아이의 아비가 누구인지 쉽게 추려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집에 딸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안즈야!」

레이의 스승이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는 다급한 얼굴로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고, 아이는, 안즈는 제 아비를 발견하자마자 잡고있던 레이의 손을 놓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것이 당연한건데도, 어쩐지 모르게 서운해 내쳐진 손을 한참동안 내려다보던 레이는 자신의 스승이 죽을 죄를 지었다며 무릎까지 꿇고 비는 것을 보곤 도리어 당황하며 그를 잡아 일으켰다.

「제 여식이 아직 아무것도 몰라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제 탓이니 잘못한 게 있다면 저를 벌해주시옵소서.」
「괜찮으니 일어나십시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여기 왔을 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스승께서 이렇게 무릎을 굽히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오나 태자저하 이곳은...」
「정말로 괜찮습니다. 만리향의 향에 홀려 이곳에 왔다길래 꽃가지 하나를 꺾어 주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느냐?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이를 향해 시선을 돌리니, 아이는 볼을 붉히며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딸아이의 행동이 조금 수상했지만 레이가 거듭 괜찮다 말하고 있으니 더 캐물을 수가 없어 그의 스승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아이에게 황궁을 구경시켜주고 싶어서 데려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태자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그 딸아이가 사라져있었고, 그 아이가 태자의 화원에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는 정말로 온 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허나 다행히도 황태자의 기분이 좋았는지 딸에게는 아무런 벌도 내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제 가겠다며 인사하는 딸아이에게 다음에 또 오라는 말까지 전하는 걸 보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지 멍청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떠난 그의 스승과 제 아비의 마음도 모르고 그저 다시 오라는 말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아이가 사라지자마자 레이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으며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안즈, 안즈라. 그러고보니 가족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제 스승이 유일하게 흘리듯이 말했던 게 딸의 이야기였다. 「이제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찌 그렇게 똑똑한지, 아들이었으면 아마 태자저하와 함께 가르쳤을 것입니다.」 답지않게 말을 많이 하며 자랑을 하는 것이 신기하여 얼마나 똑똑한지 궁금하니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했더니 스승은 그리 귀한 딸아이를 외간남자에게 쉽게 보여줄 수는 없지요, 라며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어이가 없어 리츠보다 한 살 어린 그 아이에게 제가 무슨 마음을 품는다고 그렇게 말을 하냐 따져물으니 그래도 아니된다고 고집을 부리던 스승이 무슨 마음으로 궁에 데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기분같아서는 정말로, 그에게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첫사랑이라는 게 이런 건가.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 심심풀이로 읽어왔던 소설 속의 남녀가 구구절절 자신의 마음을 늘어놓는 장면을 보면서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그러면 아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어머니에게 가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볼 시간에 다른 책을 읽으라고 혼을 낼 것 같았던 황태후는, 레이를 제 무릎에 앉히고 그 감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허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렴풋이 이해는 했지만 첫눈에 반한다는 표현만은 도저히 이해를 하지못해 저는 살면서 이런 감정을 절대로 겪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레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태자에게도 그런 사람이 곧 나타날겁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끝끝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저 깊은 곳에 묻어두었는데, 오늘 이렇게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상대를 만나면서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줄은, 레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의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냐고. 무라사키노우에를 처음 만난 겐지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날 안즈와 있었던 일은 별 내용도 없는 대화가 전부였고, 가기 전에 꽃가지를 들고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본 게 끝이었다. 그날 레이는 안즈에게 금목서의 향에 홀려서 이곳에 온 게 아니냐고 말했지만 사실 그날 금목서의 향에 홀린 것은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 아니었을까. 결국 레이는 그날 눈을 감을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에 괴로워하며 잠을 설쳤고, 안타깝게도 이 잠들지 못하는 밤은 열다섯 소년을 10년동안이나 힘들게 만들었던 상사병相思病의 시작에 불과했다.





​​君の銀の庭(너의 은의 정원)





황제는 자고로 많은 처를 두어야 하고, 그 처에게서 많은 자식을 보아야만 했다. 더군다나 죽은 선황이 역사상 가장 적은 수의 첩을 둔 걸로도 모자라 슬하의 자식도 정실인 황후에게서 본 아들 둘 뿐이었기 때문에 즉위한지 채 3년도 되지 않은 젊은 황제에게 사람들은 바라는 것이 많았다. 아직 정실도, 첩도 들이지 않은 황제에게 신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혼사에 관한 것이었고 젊은 황제는 그것을 가장 골치아파했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게다. 밀려오는 혼담에 지친 그가 그리 말하자 일시적으로 그 열기가 가라앉기는 했지만 겉으로만 그랬을 뿐, 뒤로는 제 딸을 황제에게 보내기 위해 체면도 잊고 다투고 있다는 걸, 레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레이는 그 누구와도 혼인을 할 마음이 없었고, 이런 일에 제일 먼저 나서주었으면 하는 이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레이의 스승이었던 자는 혼기가 찬 여식을 두고 있으면서도 혼인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보다못한 레이가 그를 콕 집어서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했지만 그는 폐하께서 정하실 일이니 그에 따르겠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얼핏 듣기로는 충신의 말처럼 들리나 그 속을 아는 레이에게는 그저 제 신경을 긁어놓는 말일 뿐이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이 목이 날라가는 한이 있어도 제 딸아이를 궁으로 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전에는 신나게 데려와서 그를 만나게 했으면서, 레이가 태도를 바꾸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는 안즈를 숨기고 보여주지 않았다. 핑계도 어찌 그렇게 정교하고 많은지, 밤중에 몰래 만나러 가지 않았으면 레이도 거기에 속아 넘어갈 뻔 했다. 거기에 분노해 실제로 칼을 뽑아 목에 상처까지 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고,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저렇게 말했다. 결국 먼저 포기한 쪽은 레이였고, 그 이후로 그에게 단 한번도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레이도 잘 알고 있었다. 권력욕도 없고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안즈에게 황궁은 독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유능하고 똑똑한 그녀라면 황제의 유일한 비에게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과 더럽고 추악한 말들을 굳건하게 견뎌내고 당당하게 그 위에 올라서겠지만 딸이 평범하게 행복했으면 하는 아비에게는 아예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제 스승이 얼마나 진지하게, 목숨까지 걸고 황제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레이였다. 그래서 분하지만 한발짝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문제는 제 스승만이 아니었다. 레이는 어젯밤에 만났던 안즈가 했던 말을 곱씹으니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아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하스미가 있었으면 황제께서 어찌 그리도 한숨을 내쉬냐며 분명히 잔소리를 했겠지만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폐하. 소녀의 집에도 길가의 돌맹이마냥 널려있는 것이 바로 금은보화입니다...'
'제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받아봤자...이것들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백성들이 들으면 슬퍼할 말을 어찌 이리도 생각없이 내뱉으시나요. 천하를 손에 쥘 사람은 제가 아니라 폐하가 아니신가요.'
'하늘 아래 가장 존엄한 황제의 청혼을 거절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기분도 나쁘지는 않네요.'

안즈가 혼인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시간날 때마다 찾아가서 청혼을 했지만 소녀는 단 한번도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다. 분명히 제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매번 그렇게 상처가 되는 말로 거절을 하는데도 미치지 않고 버티는 자신이 대단할 정도였다. 결국 참다 못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무엇이든지 해주겠다 했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은 폐하가 직접 찾아야 하며, 자신은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자고, 이 마음을 그만 접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그 웃는 얼굴만 보면 모든 괴로움이 마치 봄을 맞이한 겨울처럼 사르르 녹아버려 그거 하나만을 보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처음에는 강제로 데려올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직까지도 건장하게 살아계신 제 어머니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레이는 안즈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지 자신때문에 힘들어 하고 슬퍼하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나보고 대체 어쩌란 말이냐..."

안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면 레이의 청혼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건방지다 여기고 화를 내야 했으나 그런 조건이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기에 레이는 오히려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날부터 그녀가 좋아하는 서책, 금은보화, 이국에서 가져 온 진귀한 물건, 그리고 온 천하를 주겠다고 말해보았으나 안즈는 자신이 원하는 건 이것이 아니라며 그의 청혼을 거절하였다.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가 싶어서 그게 무엇인지 귀띔이라도 달라 했으나 스스로 해결하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세상에 있는 모든 귀한 것들을 전해주었으나 모조리 거절당했고,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것을 생각했으나 설마 이런 걸 원할까 싶어서 일찌감치 버리고 잊어먹은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이야기를 들은 친우의 조언도 그렇고, 안즈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을 생각해보니 답은 이것뿐이었다. 이것마저 아니라면 그때는 정말 이 마음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 더 생각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제 정인에게 보낸 것은, 금목서 꽃가지 하나였다.



***



그렇게 애간장을 녹이더니, 안즈의 답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레이가 보낸 것처럼, 안즈는 금목서 꽃가지 하나와 편지를 함께 보냈다.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듯 편지의 내용은 매우 짧았지만 아버지는 본인이 설득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만이 적혀있었기에, 그 어떤 연서보다 더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아, 드디어. 긴 시간 동안 보답받지 못했던 그 연정의 답을 드디어 받을 수 있게 된 황제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얼굴로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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