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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백 본문

이엑쏘

준백

박로제 2015. 11. 17. 02:17


*종교소재 주의



김준면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다. 아니, 현재는 그렇지 않으니 과거형으로 표현을 해야한다. 고쳐서 다시 말하자면 김준면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준면은 신을 사랑했고 신을 위해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분노와 어머니의 애원, 형의 설득을 무시하고 집을 나와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김준면은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신이 항상 그와 함께 했고, 대학에서는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함께 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 준면은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따금 어머니가 붉어진 눈을 애써 감추며 저를 만나러 와서 돌아가자고 애원했지만 준면은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을 잡아줄 뿐 그녀가 원하는 답은 해주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년동안 반복하자 드디어 어머니는 준면을 포기했다. 네 마음대로 하렴. 어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아들을 한 번 안아준 뒤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준면은 그제서야 자신이 완벽하게 신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전부 과거의 이야기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준면은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신을 믿지도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않았다. 그저 집안 대대로 신을 믿어왔고 어릴 때부터 정해진 시간에 이 곳으로 와 부모님과, 형제와, 제 친구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성경에 대해서 공부하고 찬송가를 불렀기 때문에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당연한 일상이라고 했다. 나에게 신은 일상같은 게 아닐까요. 밥먹고, 학교가서 공부하고, 자는 것과 같은 일상이요. 그러니깐 믿고 말고를 따질 수도 없죠. 우리는 당연한 사실을 믿는다와 믿지 않는다로 나누지 않으니까요.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준면은 말할 수가 없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준면은 이제 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그는 소년을 사랑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신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햇살처럼 빛나고 따스한, 소년때문이었다. 준면은 소년의 일상이 되어버린 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자신의 일상이 소년으로 가득 채워졌으니 소년도 그러기를 바랐다.


소년을 사랑하지만 준면은 여전히 신부였고 더는 신을 사랑하지도, 믿고있지도 않는 주제에 사람들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독실한 신의 사람인척 연기했다. 과거의 김준면이 이것을 본다면 이런 미래를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자신을 탄생시킨 부모도 버리고 신을 선택한 주제에 이제는 신을 헌신짝처럼 버린 준면에게 신이 벌을 내릴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이제 준면에게 신은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믿지않으니깐. 그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믿지않는 그에게 신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김준면의 신은 소년이다. 나는 너를 종교로 삼고싶어. 네가 나의 신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바라보는 그 존경과 친애를 담은 눈빛이 교리가 되고 네 입맞춤이 세례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소년의 발등에 입맞추며 몇번이고 속삭이고 싶었던 그 말들을 애써 삼키며 준면은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된 소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생일 축하합니다. 너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신따위 당장이라도 소년의 옆에서 떨어져줬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상냥하고 성실하며 독실한 젊은 신부이기에 준면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미카엘 신부님. 제 생일을 축하해주셔서 기뻐요. 내년도 함께 해주실 거죠? 소년은 웃으며 준면의 손을 잡았다. 물론이죠. 나는 루카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 줄 수 있어요. 너는 나의 신이니깐. 준면은 마지막 말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그런 진실을 알리 없는 소년은 그저 자신이 다니는 성당의 젊고 아름다우며, 성실하고 제게만 유난히 다정한 신부가 생일을 축하하며 축복을 내려줬다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아직은 어린 내 절대자여. 얼른, 얼른 자라서 오늘의 내가 너에게 했던 것처럼 입맞춤으로 세례를 베풀어주십시오. 그 어떤 성인보다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서 하루빨리 이마가 아닌 입술에, 그리고 입술에 닿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빨갛고 통통한 그 혀를 집어넣고 마치 이브를 유혹했던 뱀처럼 움직여서 나를 마음껏 축복해줄 수 있을 정도로 빨리 성장해주기를 바랍니다.



김준면은 독실한 신자다.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김준면은 신을 사랑한다. 이것또한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저 김준면의 신이 바뀌었을 뿐이다. 저 소년으로.












<이현호, 붙박이 창>. 이 문장보고 썼다. 처음 쓰는 준백인데 수치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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