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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 안녕 나의 세계 본문

이엑쏘

오백 : 안녕 나의 세계

박로제 2015. 12. 1. 00:31

* 딕펑스-안녕 여자친구를 들으면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도경수와 변백현의 관계는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긴 시간을 트러블 없이 잘 지낸 좋은 친구 관계였고, 사정을 아는 사람이 봤을 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힘든 관계를 문제없이 이어온 대단한 연인 관계였다. 조용한 도경수와 활동적인 변백현. 상반되는 성격인 데다가 맞는 것보다는 맞지 않는 게 더 많은 두 사람이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할 수 있었느냐고 사람들은 자주 물어보았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백현은 일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해 애틋해서 그렇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이 1년 중 많게는 여섯 달, 적게는 두 달이나 석 달밖에 안 되는데 싸울 틈이 어디 있느냐고 웃었고, 경수 또한 백현의 말에 동의했다.

 

백현은 여행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었다. 글을 읽는 사람이 마치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생동감 넘치는 글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외국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은 싸워서 금방 풀 수도 없으니 두 사람 다 서로를 배려했고, 한국에 와있는 동안에도 언제 또 출국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더 잘 해주려 노력했다. 다른 사람이면 불만을 가질 법도 한 이 관계를 그런데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도경수가 변백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변백현도 도경수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현은 귀찮을 법도 한데 하루에 한 번씩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정리한 메일을 사진과 함께 보냈었다. 시차 때문에 전화는 자주 못했지만, 경수가 일을 쉬는 주말에는 무조건 전화를 해 몇 시간씩 통화를 한 적도 있었다. 백현의 이러한 노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경수도 더는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노력했다. 얼마 전까지는.

 

계획대로라면 백현은 어제 귀국을 해야 했다. 마침 귀국 날짜가 경수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휴일이었고, 그 날 내가 마중을 나갈 테니 절대 늦으면 안 된다고 당부를 했다. 그 잔소리에 너야말로 늦지 말라고 웃으며 대꾸했던 백현이었다. 그리고 당일 날, 얘기했던 도착 시각에 맞춰 빠져나오는 사람 중에 백현은 없었다. 처음엔 아, 얘가 또 비행기를 못 탔구나. 사실 이런 적이 몇 번 있었기에 경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백현을 위해 비워뒀던 휴일이었고, 백현을 만날 수만 있다면 오늘 하루를 공항에서 보내도 상관은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온다고 했으니깐, 기다리는 것이 경수에게는 당연했다. 그런 믿음을 배신한건 변백현이었다. 백현은 그 날 오지 않았다. 연락조차 없었다. 늦은 저녁, 실례를 무릅쓰고 경수는 백현의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오늘 온 연락 없었냐고, 온다고 해놓고 애가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다고.

 

 

별일이네, 경수 너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고...백현이 더 머물다가 온다고 오늘 연락 왔단다. 아마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고, 내년은 되어야 들어올 것 같다네. ’

 

 

자신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았던 게 서운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정이 길어져서 더 있다 온다면 자신보다 부모님이 먼저인 게 맞았으니깐. 경수가 제일 서운했던 것은 하루가 지나도록 자신에게 연락 한통 없다는 사실이었다. 백현의 어머님이 아니었으면 바보같은 도경수는 내일 휴가를 내서라도 이 공항에서 변백현을 기다렸을 게 분명했다. 그런 자신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무슨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었을지 뻔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는 게 너무나도 화가 나고 서운했다. 그리고 그 분노와 서운함이 가시고 난 다음 든 감정은 그동안 경수가 감추고 감추었던 불안이었다.

 

 

 

 

 

안녕, 나의 세계

 

 

 

 

 

2. 올해 처음으로 백현이 없는 생일을 보냈다. 백현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생일 축하한다는 내용을 담은 메일과 선물을 보냈지만 경수는 답장을 하지 않았고 선물도 뜯어보지 않았다. 올해는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고 약속했으면서, 새해가 지나고 경수의 생일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끝나도 오지 않았다. 언제 올 거냐는 물음에 4월쯤이라고 답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다. 이번 책은 좀 더 욕심을 내고 싶다고,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경수는 그저 알았다는 답밖에 할 수 없었다.

 

백현을 좋아하니깐, 사랑하니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지만 백현이 좋아하는 일이니깐 참았다. 한편으로는 무서운 것도 있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백현은 뒤도 안돌아보고 저를 떠날 것만 같았다.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함께 했지만 시작부터 한쪽으로 치우쳐있었던 이 관계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더없이 완벽해 보였지만 사실은 속빈강정과 같았다.

 

시작은 도경수의 짝사랑이었다. 자유롭고 활기 찬, 태양과도 같았던 백현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현은 항상 자신감에 차있었고, 원하는 목표가 뚜렷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에 맞는 노력을 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빛나는 태양과도 같았다. 경수는 그런 백현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 태양을 붙잡고 싶었고, 그 태양과 함께 빛나고 싶었다. 그 태양이 오직 저와 있을 때만 빛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같은 남자라는 걸 생각해봤을 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고백했다. 좋아한다고, 너를. 거절해도 좋고 나를 뭐라고 해도 좋고, 소문내도 좋다고. 하지만 장난으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라고.

 

 

좋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난 너를 욕하지도 않을 거고, 소문내지도 않을 거야.

 

대신에 나한테 시간을 줘. 네 마음,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긍정적인 답이었다. 동성의, 그것도 친하지도 않던 그저 반이 같다는 것 외에는 겹치는 부분도 없는 사람의 고백이 낯설고 무섭고, 혐오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백현은 그 고백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 어디에도 제 고백을 받아준다는 긍정적인 의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백현은 예상보다 빠르게 생각하는 것을 끝냈고, 생각 끝에 결정한 답 또한 예상외의 것이었다.

 

 

나도 너 좋아. 물론, ...네가 좋아한다는 그 의미랑 조금은 다르지만 그래도 싫지 않아. 근데 내가 너에 대해서 잘 모르니깐 지금 당장 사귀는 것보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도 너를 좋아할 수 있도록.

 

 

조금은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 백현은 그렇게 말했었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도 너를 좋아할 수 있게 우리 서로를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태양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때는 마냥 좋았다. 백현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란히 서서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열일곱의 도경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처음 고백을 했던 장소에서, 경수는 다시 고백을 했다. 그리고 백현은 그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행복했다. 좋아한다 말하면 나도 좋아한다는 답이 왔고, 손잡기를 망설이는 자신을 대신해 먼저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수험생이 되었고, 그 때 처음으로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었다.

 

 

그러니깐 왜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거기에 원서를 낸 건데?

 

이미 부모님이랑 상의 끝난 일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원서를 내는 건데 거기에 네 허락이 필요해?

 

나한테 말이라도 할 수 있잖아. 나 여기에 낼 거라고, 그냥 그렇게라도 말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래, 그건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이렇게 화낼 일은 아니잖아 경수야. 우리가 다른 대학에 간다고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도 볼 수 있고, 매일 전화하면 되잖아. 넌 대체 뭐가 불안해서 그러는 건데?

 

 

허탈했다. 그 말에 반박할 힘도 없었다. 경수는 무엇이든지 백현과 함께 하려 했지만 백현은 그렇지 않았다. 경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백현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했지만 백현은 경수와 있어도 행복했고, 다른 친구들과 있어도 행복해했다. 경수의 세계는 백현이 유일했지만 백현의 세계에서 경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일 뿐이었다. 이때부터였다. 도경수가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향한 감정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불안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걸 눈치 챈 백현은 불안해하지 말라며 제가 가진 애정을 모두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수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백현은 여전히 생일에는 단둘이서 만나는 것보다 저를 포함해 다른 친구들을 함께 만나는 것을 선호했고, 그건 경수의 생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도경수가 원하는 건 많은 축하도 아니었고, 그저 둘만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백현은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것을 원했다. 나와 함께 행복해지는 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과도 행복해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옆에 있을 텐데 왜 다른 사람과 행복해지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인지. 그렇지만 변백현에게 이기지 못하는 도경수는 불만이 많으면서도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마음속에 품고 썩혀두었던 상처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

 

 

 

 

3. 백현이 돌아왔다. 이미 꽃은 모두 졌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경수는 마중 나가지 않았다. 시차가 적응될 때쯤에, 연락하라는 문자만을 남기고 먼저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백현이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을 리가 없다. 귀국하는 날도 공항으로 달려가고 싶었던 것을 몇 번이나 참았는지 모른다.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좋아하는 목소리를, 그리고 지금도 보면 두근거리는 그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공항으로 가지 않았다. 무서웠다. 또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오지 않을까봐, 이번에도 자신에게 연락 한 통 없을까봐,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까봐. 그래서 참았다. 예전이라면 상처입고도 괜찮다며 웃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상처 입는 게 두려웠고, 그러면서도 백현을 놓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헤어질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다시 붙잡을 확률이 높았다. 긴 시간을 도경수는 변백현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백현은 경수의 태양이었고, 세계였으며, 우주였다. 경수의 세계는 백현이 만들었고 그것을 이어가게 한 것 또한 백현이었다. 다시 붙잡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경수는 제가 오래 동안 붙잡고 있었던 이 손을 놓고 싶었다. 더 이상 제가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그리고 백현이 저에게 잡혀서 더 멀리 날아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기 위해서는 이 손을 놓아야만 했다. 우습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경수는 백현을 자신보다 더 먼저 생각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다 생각하며 경수는 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을 내기 위해서는 만나야만 했으니깐.

 

 

- 여보세요.

 

백현아. ”

 

- , 경수야.

 

내일, 만날 수 있을까. ”

 

- 그럼. 언제 볼까? 내일 저녁에 시간 괜찮아?

 

. 네가 우리 집으로 올래? ”

 

- 알았어. 내일 보자.

 

 

백현의 목소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제가 백현을 잘 아는 것처럼 그도 경수를 잘 알았다. 연락이 없던 그 시간동안, 경수가 어떤 생각을 했고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4.

 

내가 저번에 그랬지. 네가 다른 사람과 행복해지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그래. 그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경수야. ”

 

내가 언제 돌아올까 불안해하는 너를 보고 있으면 너무 슬펐어. 내가 옆에 있어도 불안해하는 네가 너무 안쓰러웠어. 그래서 다른 사람과 행복해 하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 거야. 그럼 내가 네 옆에 없어도 너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깐. ”

 

그런데 그게 내 욕심이었어. 그러면 내가 네 옆에 있었으면 되는 거였는데, 나는 항상 너보다 내가 먼저였어. 그걸 알면서도 고치지를 못했어. 다 내 탓이야 경수야... ”

 

 

백현은 경수의 손을 잡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때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제 생각을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손을 잡은 그 하얗고 예쁜, 제가 좋아했던 백현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을 때 경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왜 자신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백현이 아무것도 못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역시나 바보는 자신이었다.

 

 

백현아. ”

 

, 경수야. ”

 

그건 네 탓이 아니야. 그걸 알면서도, 그런 모습을 좋아해서 고백해놓고 나를 위해 그것을 포기하라고 한 내가 나빴던 거야. 네가 나를 위해서 노력했던 거, 나 다 알고 있어. 그러니깐 제발. ”

 

 

미안해하지마. 네가 그렇게 울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면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을 들은 백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백현에게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불안해하는 저를 알면서도 직접적으로 말을 해준 적은 없었고,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나름대로 생각해낸 방법은 경수를 더욱더 궁지로 내몰았고, 결국은 이렇게 상황이 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제일 큰 잘못은 경수였다. 백현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면서, 그리고 그런 모습을 사랑했으면서 이제 와서 자신을 위해 포기하라고 한 도경수가 나빴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를 돌고 돌아서 이제야 풀어냈지만, 두 사람 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백현도, 경수도 잘 알고 있다. 경수는 다 알면서도 불안해 할 것이고, 백현은 불안해하는 경수를 알면서도 그 옆을 떠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풀지 못해 지쳐버린 이 감정은 어떻게 해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보내줘야만 했다.

 

 

이제는 알아볼게. 네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해도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

 

그런데 옆에 네가 있으면 영원히 찾지 못 할 거야. 나는 습관적으로 너를 찾겠지. 너와 함께하는 행복만을 찾으려 하겠지. ”

 

그러니깐 백현아. ”

 

 

그만하자, 우리.

 

담담한 목소리로 이별을 고하는 경수에게, 백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경수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 제 옆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새빨개진 눈으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 위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경수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해야 할 때였다. 백현은 오늘따라 너무나도 작아 보이는 제 연인을, 끌어안았다.

 

안녕, 나의 연인.

 

 

 

 

 

*****

 

 

 

 

 

5.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무덥던 여름이 거짓말처럼 가버리고 어느새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다가왔다. 경수는 동료 선생님과 함께 가볍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경수는 이제 동료 선생님과도 많이 친해졌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백현이 아닌 사람과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어렵고 힘들었다. 우습게도 백현 없이 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어렵다고, 힘들다고 다시 백현을 찾지 않았다. 이제는 제 옆에 없으니깐, 이제는 친구도, 연인도 아니니 더는 투정부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텼다. 한 달, 두 달, 계절이 두 번 지나가자 이제야 경수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편해졌고, 즐거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백현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경수는 백현이 보고 싶었다. 지금 제집으로 가는 이 골목도 두 사람이 자주 걷던 골목이었다. 10년이란 시간이 짧지 않은 것처럼, 여기저기에 백현과 자신이 함께했던 흔적이 있어서 괴로웠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저를 보며 웃던 모습도, 다정하게 저를 불러주던 그 목소리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물론 그만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백현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잊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걸릴 뿐, 잊을 수는 있었다.

 

 

모두, 안녕. ”

 

 

경수는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안녕, 나의 세계.

안녕, 나의 우주.

 

 

이제는 안녕, 백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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