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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 식사를 합시다 1 본문

이엑쏘

오백 : 식사를 합시다 1

박로제 2015. 11. 22. 01:44

*양파-본 아뻬띠를 들으면서 봐주시면 제가 감사합니다.





식사란 무엇인가. 백현은 그저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는 행위를 뜻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변백현은 먹는 것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 그저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깐 먹을 뿐이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좋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진짜 사람이 못 먹는 음식만 아니면 맛이야 없어도 상관없었고, 그런 입맛때문에 끔찍하기로 유명한 인문대 학생 식당도 자주 이용했었다. 

반면에 도경수는 반대였다. 변백현이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도경수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같았다. 두 사람이 데이트할 때 경수는 모든 걸 백현에게 맞췄지만 먹는 것에 한해서 까다롭게 굴었다. 먹는 걸 즐기지도 않고 심지어 가리는 것까지 많은 백현이 그냥 아무거나 대충 먹으면 안되느냐고 투덜거리면 평소의 그 다정하고 자상한 매너남 도경수는 없고 엄하고 무서운 도경수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 간 음식점에서 시킨 것들을 백현이 씹고 있을 때, 도경수는 뿌듯하다는 얼굴로 변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것뿐이라면 백현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경수가 먹는 것에 까다롭게 구는 것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동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백현은 혼자서 자취를 할 생각이었지만 경수가 '보나마나 너는 밥은 커녕 라면으로 한 끼 적당히 채우고 하루종일 굶을게 뻔하니 내가 같이 살아야겠다.' 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백현의 부모님을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그 설득이 먹혀 두 사람은 같이 살게 되었다. 이유가 어이없기는 했지만 이제 도경수랑 눈치보면서 연애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백현도 이 동거가 싫지는 않았지만 이 자취방에 이사 온 첫날, 짐정리를 대충 끝내고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마트에 장을 보러갔을 때 사소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차피 남자 둘이고,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해도 요리하기 귀찮아서 밖에서 먹는 일이 많을테니 라면이랑 인스턴트 밥, 3분 요리같은 것들을 사다놓는게 좋다고 백현은 주장했고, 도경수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말라며 너한테 밥 하라는 소리 안할테니 당장 그것들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오라며 잔소리를 했다. 결국 그날 사들고 간 것은 쌀과 야채, 그리고 싱싱한 과일이었다. 인스턴트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게 동거 첫 날 있었던 날이고, 지금 두 사람은 군대를 갔다왔으니 적어도 3년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변백현이 이걸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도경수는 그때 했던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둘 다 아침 수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서 씻는 것만으로도 힘든 백현과 다르게 경수는 이미 준비를 끝마치고 아침을 준비 중이었다. 오늘 아침메뉴는 두부넣은 된장찌개와 양파와 당근을 넣은 계란말이, 그리고 콩자반과 콩나물 무침이었다. 


" 아침에는 그냥 빵 먹으면 안되냐. "

" 그러면 네가 나 없이도 좀 챙겨먹던가. "

" 그게 내가 아침에 빵 먹고싶은 거랑 무슨 상관인데? "

" 너 아침 먹었단 이유로 점심 안먹잖아. 그 상태로 저녁 먹기까지 굶을텐데 겨우 빵 하나 먹고 가겠다고? "

" 점심 먹으면 되잖아! "

" 학생식당가서 2천원짜리 라면에 500원 추가해서 공기밥 먹는 거 다 알고있으니깐 숟가락 들어라 백현아. "


대체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일부러 네가 다니는 공대랑 제일 먼 미대 학생식당으로 밥먹으러 갔던건데 사람이라도 풀었어?!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던 백현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자 경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백현의 밥 위에 계란말이를 올려주었다.


" 백현아,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게 있을 것 같아? "


아니요, 없죠. 백현은 그 말에 수긍하며 경수가 준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계란말이는 적당히 푹신하고 짠 것이 제법 맛있었다.





*****





식사란 무엇인가. 도경수는 그것을 굉장히 로맨틱한 단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도 좋아하는 행위이고 단어였지만 우연히 읽었던 소설에서 봤던 문구 때문에 경수는 식사라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소설에서 나왔던 문구는 이랬다. ' 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건 의미있는 행위이다. 아무리 섹스하는 사이라도 별개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매일같이 똑같은 음식을 몸 속으로 집어넣는다는 행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도경수는 이런 생각을 한 작가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경수는 식사를 굉장히 로맨틱한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경수가 사랑해마지않는 연인은 식사라는 행위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백현은 살기 위해 먹었고,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무엇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굴었다. 체력이 필요한 수험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가리는 것도 많았고 입도 짧았다. 어쩌다가 이런 애를 사랑하게 된건지 고민해본 적도 있었지만 그럼 점도 이제는 그러려니 넘어간다는 점에서 도경수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변백현이 저렇게 챙겨먹지 않으면 내가 챙겨주면 되는 거잖아? 거기까지 생각한 도경수가 내놓은 해결책은 동거였고, 마침 같은 대학에 붙어 사이좋게 독립을 해야했고, 어릴 때부터 쌓아온 도경수의 바른생활 청년 이미지는 별 노력없이 두 사람이 함께 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경수는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부엌이 놀이터였고,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부엌에서 스스로 밥을 해먹었던 것도 경수였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보니 실력이 되어서 이제는 자격증도 여러개 가지고 있었다. 대학은 전혀 상관없는 쪽으로 가기는 했지만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에 취미 생활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도경수는 정말 요리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누가 먹어준다는 것보다는 그냥 하고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고 행복해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건 두 번째 즐거움이었지 첫 번째는 아니었다. 하지만 변백현을 만나면서 도경수는 바뀌었다.


' 나 한 그릇만 더 먹으면 안돼? '

'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변백현이 두 그릇이나 먹고. '

' 신기한 생물보듯이 쳐다보지 말아줄래? 맛있으면 두 그릇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 ...너도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냐? '

' 이게 지금 누굴 미각치로 아나...맛있다고 해도 난리야. '


그 전에도 집에 불러서 밥을 먹인 적이 있긴 했지만 사귀고 나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해줬던 메뉴는 불고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단 걸 좋아하는 입맛에 맞춰서 배와 키위를 넣어서 달달하게 해줬는데, 그게 입맛에 맞았는지 한 그릇을 금방 비우더니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적당히 공복감만 채워지면 숟가락을 내려놓는 백현에게 드문 일이었고, 맛있다는 말까지 했다. 백현에게 듣지 못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그 날의 '맛있다.'는 어쩐지 조금 특별해서, 경수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었으며, 그 날 이후로 경수는 자신이 만든 걸 먹고 웃는 백현을 보기 위해 요리를 하게되었다. 

물론 요즘은 맛있다는 말은 듣기 어렵고 오히려 지겹지도 않냐며 하루정도는 부엌도 좀 쉬게하라는 잔소리까지 듣지만 도경수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밥을 하고 국을 끓였으며, 반찬을 만든다. 사실 도경수는 이제 맛있다는 말도 됐고, 웃는 모습도 필요없다. 그저 백현이 제가 만든 밥을 다 먹은 뒤 해주는 '잘 먹었습니다', 그 한마디만 있으면 충분했다.


"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잘 먹었다고 인사하는 변백현이 사랑스러워 도경수는 후식으로 꺼낸 방울 토마토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





언젠가 도경수가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백현이는 평생 자기가 데리고 살거고, 죽을 때도 아마 함께할 것이다. 둘 중 누가 먼저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변백현은 이미 도경수가 없으면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길들여 놓았고, 도경수는 변백현이 없는 세계에서 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죽을 것이다. 

60살이 넘은 노인 두 사람이 동시에 죽었으니 경찰들은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 자살인가, 아니면 타살인가, 같은 의심을. 흉기를 사용한 흔적은 없을테니 약물에 의한 것이 아닌지 해부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도경수는 어떤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들이 해부했을 때 위 속에는 어떤 약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식사하며 먹었던 음식이 들어있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토마토 스파게티와 사과 드레싱을 넣은 샐러드였으니 미처 소화되지 못한 그것들이 두 사람의 위장에 똑같이 들어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짜릿했다. 이보다 로맨틱할 수가 있을까? 사실 말도 안되는, 엉뚱하다 못해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을 수준의 상상이었지만 해부했을 때 같은 음식물이 있다는 그거 하나는 놀랍게도 도경수에게 엄청난 흥분감을 줬다. 거기다가 이건 변백현이 도경수가 해주는 밥을 계속 먹는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도경수가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은 하나였다.


" 백현아, 식사하자. "



식사를 합시다.

















중간에 안때려치고 끝까지 쓰게해주세요 제발...
그냥 밥 먹으면서 연애하는 오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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