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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you don't love me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you don't love me

박로제 2017. 11. 4. 23:29



*Caro Emerald - you don't love me 를 들어주세요(__)
*역시나 무엇이든지 괜찮으신 분만.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원하는 건 같은 침대에 누워서 자달라는 것뿐이었고, 그거말고 더 필요한 게 있냐 물었더니 필요없다는 답이 날라왔다. 겨우 그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손해볼 건 없었기에 레이는 흔쾌히 그녀에게 제 팔을 내주었다. 팔베개까지 해주는 거예요? 웃으며 그렇게 물어보는 얼굴이 귀엽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다들 난리라서 궁금한 마음에 들어와본건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헤어졌는데 그 다음 날 제게 우편이 날라왔다. 보낸 사람은 어제 만난 그 여자였고, 우편 안에는 열쇠와 카드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열쇠만 받는 일이 처음있는 건 아니라서 별로 놀랍지는 않았고, 휴양지에 있는 별장의 열쇠이거나 자동차 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카드를 열었는데 전혀 예상 밖의 말이 그 카드에 쓰여져 있었다.

「비밀번호 xxxxxx. 열쇠로 들어오거나,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둘 중 마음에 드는 걸로 해요.」

집 주소와 함께 쓰여져있는 그 짧은 문장 하나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서 첫만남에 집열쇠를 보내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거기서 흥미가 생겼고,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같은 사람을 두 번 연속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그녀는 직접 가게로 레이를 찾아왔고, 이번에는 무릎을 빌려달라고 했다. 여기는 불편하다고, 차라리 집이나 호텔로 가자고 했더니 정말 잠깐이면 된다고, 몇시간만 자면 되니까 무릎만 빌려달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에게 레이는 무릎이 아니라 제 품을 빌려주었다. 무릎보다는 이게 편할 것 같은데. 민망하다며 거절하려던 그녀도 더는 못버티겠는지 결국 구두를 벗고 그 무릎 위로 올라가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세 시간만 잘 거니까, 잊지말고 세 시간 뒤에 깨워줘요. 그 말을 끝으로 안즈는 바로 잠이 들었고, 레이는 그녀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셔츠의 리본과 단추를 풀어주었다. 이 방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손님을 제 무릎 위에 앉혀놓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 것 또한 레이에게는 처음있는 일이라서 낯설기도 했고, 신기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숨소리가 듣기 좋았고,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자신을 부르면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안즈의 연락을 기다리기 시작한 건. 첫만남처럼 그다지 특별하지도, 인상 깊었던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레이는 불면증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제 품 안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즐거웠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미사여구로 외모를 칭찬받고, 그를 유혹하기 위한 수만가지의 문장을 들어보았지만 「좋은 베개」라는 칭찬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 아가씨 뿐일 게야.'
'그래서 싫어요?'
'싫었다면 진작에 잘라냈겠지.'

싫지 않았다. 재미있었으니까.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사쿠마 레이의 일상은 매우 단조로웠고, 모든 게 재미가 없었고 지루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괴로울 정도였다. 그런 일상에 안즈가 들어왔고, 레이는 요즘 그녀를 만나는 게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고, 굳이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그녀를 만나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다른 손님보다 안즈를 더 우선시했고, 누구와 있든 그녀에게 연락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먼저 약속한 건 나인데 왜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냐며 화를 내는 사람에게 그가 해줄 말은 하나 뿐이었다. 당신보다 그 사람이 내게 더 중요하니까. 가지말라고 돈을 던져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다지 돈 때문에 안즈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레이는 가볍게 무시하며 다른 남자를 불러줄테니 그쪽과 마저 즐기라는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왔었다.

안즈에게 전화가 오는 시간은 고정적이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전화를 했고, 비슷한 시간에 가게로 찾아왔다. 그보다 늦게 올 때도 있었고, 일찍 올 때도 있었지만 기껏해야 4, 5분 정도였다. 그랬던 그녀가 늦은 밤에 전화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자신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고, 그 장소는 불행히도 침대 위였다. 막 시작했을 때였다면 그래도 덜 했을 텐데, 그러니까, 딱 직전이었다. 그만두기도 애매한 상황에 전화벨소리가 울렸고, 아무리 사쿠마 레이라도 그 순간 곧 바로 일어나지를 못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녀를 우선시한다지만 정말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고, 울리는 벨소리를 무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번 울리다가 끊긴 그 벨소리가 왜 그리도 신경이 쓰이는지. 신경쓰지말자고, 지금 우선으로 둬야할 건 저 전화벨소리가 아니라 눈 앞의 상대라고 몇 번을 되내여봤지만 헛수고였다. 자꾸 머릿 속에서 안즈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 옆에서만 편안하게 잘 수 있다던, 작고 사랑스러운, 그녀가 자꾸 떠올라서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레이는 하던 것을 멈추고 침대 위에서 내려왔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놨던 셔츠를 집어들었다.

'뭐하는 거야?'
'...'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설마 여기까지 해놓고 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녀는 신경질을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고, 난처한 얼굴로 그저 웃기만 하던 레이는 자켓 주머니에서 잠깐 울리다가 다시 조용해진 전화기를 꺼내 안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이 씨? 응, 나라네. 집인가? 그래, 곧 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저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과 웃으며 통화하는 레이를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쳐다보았고, 인사 없이 나가려는 매정한 그 남자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짜증을 냈다. 나한테까지 이럴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이렇게 놔두고 가버릴거냐고. 그녀의 분노섞인 외침을 가만히 들어주던 레이는 다시 몸을 돌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역시, 네가 당연히 이래야지. 그런 얼굴로 다시 손을 뻗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쿠마 레이는 웃으며 그 손을 쳐냈다.

'선택해.'
'...뭐?'
'첫 번째, 나를 그냥 보내준다.'
'...'
'두 번째. 여기 남는 대신에 다른 여자 이름 부르는 걸 받아준다.'
'너,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여태까지 만나온 정이 있어서 너한테는 특별히 기회를 주는 거니까, 잘 선택해.'

뭐, 자존심 강한 네가 뭘 선택할지는 뻔하지만 말이야. 역시 그의 예상대로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는 꼴도 보기 싫다며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지라고 소리쳤고, 레이는 그동안 즐거웠다며 웃는 얼굴로 인사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집을 빠져나왔다. 택시를 탈까, 직접 운전을 할까 고민했지만 안즈를 만나러가기 전에 자신의 집에 먼저 들려야할 것 같아서 자신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런 상태로 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지금 제 몰골이 어떤지는 예상이 갔다. 머리는 땀으로 젖어있을테고, 입술에는 립스틱이 번져있을 거다. 입고있는 옷도 엉망이고, 몸에는 그녀의 향수냄새가 남아있을테니 바로 안즈를 만나러갈 수는 없었다. 그게 예의였고,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을 안즈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늦었네요. 차 많이 밀렸어요?'

빠르게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시간이 걸려서, 약속했던 시간 보다는 조금 더 늦게 도착했고, 문을 열어 준 안즈는 피곤한 얼굴로 레이에게 비척비척 걸어와 그 품 안으로 쓰러졌다. 나 3일 동안 야근했어요. 더는 못버텨. 좀 재워줘요. 삐쩍 말라 무게라고는 느껴지지도 않는 몸을 들어올려 품에 안으니 잠투정을 하는 아이처럼 칭얼거리며 안즈가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쩐지 연락이 없더라니, 많이 바빴었구만. 응. 나 많이 바빴어요. 그러다가 겨우, 끝나서...전화한 건데... 레이 씨 일 있는데 나때문에 온 거 아니죠? 잠이 묻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보는 안즈가 사랑스러웠다. 아니, 마침 나도 할 일이 없어서 지루하던 참이었다네. 거짓말. 다른 사람 만났죠? 마음대로 생각하게나. 실없이 웃으며 레이의 얼굴 여기저기 키스하던 안즈는 오늘만은 믿어주겠다며,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하루종일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레이는 무언가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어떤 감정이 목끝까지 차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분명히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다음에 자신을 부른다면 그때는 다른 사람을 보내야지, 라고 생각만 했던 과거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레이는 안즈에게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있어서 즐겁다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만났고, 레이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안즈는, 레이가 옆에 있으면 편안하다고 해주었다. 내가 쉴 수 있는 장소잖아요, 레이 씨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두근 거렸던 적도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여겨주는 건 이런 기분인가. 그래서 사쿠마 레이는 그녀가 자신의 옆에서 쉴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진 건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최우선이 그녀였으니까,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안즈였으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레이는 안즈도 그렇게 여겨주길 바랐다. 공식적인 옆자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레이는 안즈의 연인자리도, 그리고 남편자리도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만난 관계에서 무얼 바라겠는가. 만약 반대였다면 그런 관계를 한 번 쯤은 꿈꿨겠지만- 지금의 관계로는 그다지 제게 필요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만큼은, 그녀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이길 바랐다. 나말고 다른 사람을 찾지마. 나말고 다른 사람에게 내게 바랐던 것을 원하지마. 이상한 집착이었고, 기이한 독점욕이었지만 레이는 그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걸 숨길 생각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레이는 그녀에게 이 관계가 어떤 관계임을 확실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선을 그은 건 안즈를 위해서, 라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건 혹시라도 더 많은 걸 바라게 될까봐, 그녀에게 제 분수도 모르는, 가당치도 않은 것을 바라게 될까봐 스스로의 손에 수갑을 채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혹 이렇게 선을 긋고 스스로의 손에 수갑을 채운 게 나쁠 때도 있었고, 슬플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레이는 그만두지 않았다. 물론 이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수갑을 끊어내고, 그어두었던 그 선을 넘어가는 일이 생기겠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레이는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자신은 이상하고 일그러진 인간이었으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내내 저기압이었던 레이는 계속 안즈를 붙잡고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었고, 햇빛에 약한 사람이라서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짓궂게 군 적은 없었는데, 결국 그걸 참지 못한 안즈가 상의를 입지 않아 손톱자국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의 등을 짜증과 울분을 담아 내리쳤고, 그제야 레이는 아픈 소리를 내며 그녀를 놔주었다. 아파하는 얼굴을 보니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말도 안하고 매달려서 심술을 부린 건 자신이 아니라 저 남자였으니까.

"뭐가 문제예요. 말을 해야 알죠."
"아무것도 아니라네."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니잖아요. 어제부터 왜 그래요. 응?"
"...됐네. 내가 유치하게 군 거니까."
"레이 씨."
"..."
"그럼 여기서 그러지말고 가요. 오늘 하루종일 나랑 있으면서 그런 얼굴로 있을 거예요? 나 그런 거 못보니까, 이유 말 안해줄 거면 그냥 가요. 다른 사람 만나러 가라구요."

난 쉬려고 레이 씨 부른 거지, 당신 화난 거 받아줄려고 부른 거 아니예요. 아무리 레이가 좋아도 확실하게 구분은 지어야만 했다. 나 좋자고 부른 건데, 화가 난 얼굴로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저를 괴롭힐거면 차라리 없는게 나았다. 단호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안즈를 말없이 바라보던 레이는 한숨을 쉬더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 내가 그러면 안되는 건데. 실수했구만. 그 부분은 사과하겠네.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부드럽게 웃는 레이를 보니 덩달아 안즈도 한숨이 나왔다.

"아가씨."
"네, 네. 이유 말해 줄 건가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사람을 만났나?"
"...아. 어떻게 알았어요?"
"이 몸이 모르는 건 없다네, 아가씨."
"아, 정말... 이번은 좀 이해해줘요. 자고 싶은데 레이 씨한테 전화도 못하고, 이제 약은 못먹겠고. 그래서 불렀어요. 이게 내 탓이예요? 자리 비운 건 레이 씨잖아요."
"..."
"나도 레이 씨가 좋아요. 얼마나 불편했는 줄 알아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비슷한 거라곤 하나도 없지만 대타를 찾을 수밖에."
"대타라..."
"그럼 대타지. 레이 씨만한 사람이 어디있어요?"

진심이었다. 레이만한 사람은 없었고, 추천받아서 그를 계속 부르기는 했지만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익숙해져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그 남자가 아니면 싫다는 건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안즈는 레이가 빨리 돌아오길 바랐고, 귀국 소식을 듣자마자 부른 건데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화만 내고. 억울하고 분한 건 레이가 아니라 안즈였다. 사쿠마 레이는 그녀가 설명해준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고, 더 몰아세울 수도 있었지만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며칠 만에 보는 건데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레이의 대타가 될 수 없다는 말이 기쁘기도 했으니까, 여기서 '자신이' 참고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미안하구먼. 평소의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레이는 안즈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 그녀는 알면 됐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로 싸우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나 이제 다른 사람 못 만나요. 레이 씨한테 익숙해져서. 그러니까 「좋은 베개」 씨. 겨우 그런 남자 만난 걸로 나한테 화내지 마요. 내 앞에서 그런 자존심 세우지도 말구요. 그는 쓰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모두 들어주었고, 이만하면 됐다면서 안즈는 레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벌로 오늘 하루종일 내 시중 들어주기.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해줄 수 있죠?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네. 그것은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안즈가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었고, 레이도 그것을 알았기에 별 말 없이 그 손길을 받아주었다.

"그 전에, 등의 상처에 약부터 발라줄게요. 많이 아팠죠?"
"응? 아아... 따갑긴 하지만 그렇게 아프지는 않으니까 걱정말게나."
"어떻게 걱정을 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 그만두면 좋았잖아, 진짜 이게 뭐야... 다른 사람이 보면 뭐라고 설명할거예요?"
"아가씨말고는 이제 볼 사람도 없는데 뭐 어떤가."
"또 그런 소리한다. 아무튼 다시는 이런 일 없을테니까 이번만 참아줘요. 다른 것도 아니고 레이 씨한테는 몸이 재산인데, 이렇게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요."

레이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상관은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제발 그래줬으면 했지만 안즈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있나.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제 몸에 남는 흔적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그에게 남는 흔적을 신경쓰는 건 안즈의 특이한 버릇이었고, 그건 자신의 몸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던 다른 이들과 그녀의 차이점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사실 약같은 건 필요없었다. 오히려 레이는 안즈가 만들어둔 상처가 덧나서 더 오래 남아있길 원했다. 징그럽다, 징그러워. 스스로가 보기에도 당사자인 안즈가 이걸 알면 뭐라고 할까. 또 입에 발린 말을 한다며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거나 자기 몸 소중히 여길지 모른다고 혼을 내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그녀에게 말할 생각은 죽어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그저 상상으로만 남을 뿐이었다.


곤란했다. 이런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은 뭔가 죄책감을 느끼게했다. 나만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거 누가 보면 뭐라고 하겠냐고. 그래서 레이의 몸에는 최대한 아무 흔적도 남기려고 애를 썼는데 어제는 급한 마음에, 혹은 분한 마음에 그런 것들을 한구석으로 멀리 치워버리고 아주 화려하게 제 흔적을 남겨놓고 말았다. 분명히 손톱관리를 받긴 했지만 그때 워낙 힘을 줘서 그런지 빨갛게 자국이 남아있는 것도 모자라 피가 나서 굳어있고, 딱지까지 나앉은 그 등을 보자니 한숨부터 나왔고, 이걸 어쩌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다음에는 무슨 상황에서라도 상처는 내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하면 약을 발라주기는 했지만 자꾸 그걸 보고 있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제 흔적이 남아있는 게 나쁘지가 않았다. 다들 이런 마음으로 상처를 내고 흔적을 남기는 걸까.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레이의 등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그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상처가 느리게 나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이걸 보고 기분 나빠하면 좋겠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런 생각들이 자꾸 어디선가 기어나와 저를 괴롭혀왔다. 정말 어떡하면 좋지. 이런 생각하는 거 레이 씨는 몰랐으면 좋겠다. 그가 알면 저를 얼마나 경멸할까. 사쿠마 레이가 이 사실을 알면 오히려 좋다며 받아주겠지만 그걸 모르는 안즈는 제 마음을 꾹, 꾹 눌러 담으며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아냈다. 그것이 새어나가서 레이에게 닿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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