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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Love Affair 上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Love Affair 上

박로제 2018. 3. 8. 00:43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영화나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일이 제 주위에서 생길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평범한 사람이었고,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살아온 안즈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은 현실이 소설보다 더 한다지만 그래도 자신의 주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 게 당연했다. 안즈도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안즈. 왜 그래?”
? ,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던 사람이 안색이 창백해져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본 스바루가 어디 아프기라도 하냐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았고, 안즈는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세상에 저렇게 생긴 남자가 둘이나 있다는 것도 엄청나게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보다는 차라리 그게 더 현실적이었다. 머리 모양도 달라졌고, 분위기도 달라졌잖아. 그리고 말투도 그때랑 다르고.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안즈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제 상사가 이름을 말하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름까지 똑같잖아. 차라리 이름을 몰랐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안즈는 이제 그때 자신에게 이름을 알려준 그 남자가 원망스러웠다.
우리 팀장님 말버릇이 좀 이상하긴 한데, 사람은 좋으니까 너무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대충 컨셉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아요.”
컨셉이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
옛날 생각하면 컨셉이지.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다며 웃고 있는데, 안즈는 지금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렇구나, 예전이랑 말투가 달라졌구나, 그럼 그 사람이 맞는다는 거잖아. 안즈는 절망적인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이제는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싶어졌다. 그때 일을 제외하면 여태까지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온 자신에게 어째서 로맨스 소설에서는 진부하다 못해 쓰이지도 않는 소재의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딱 한 번, 모르는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남자친구 때문에 우울해 하는 자신을 위해서 친구가 클럽으로 데려갔었고, 거기서 안즈는 그 남자를 만났었다. 시작은 일방적으로 그 남자가 끌고 나간 것이지만 거기에 자신의 의사도 없지는 않았다. 얼마든지 밀어낼 수 있음에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준 건 안즈였으니까. 그 이후로 다시는 그와 만나지 못했지만 안즈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되도록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이 남자와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길 가다가 마주치기만 해도 민망할 사람은 만약 이제부터 일해야 할 회사에서 만난다면? 거기다가 회사의 상사가 만약 그 남자라면? 누군가가 들으면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며 비웃을 일이 빌어먹게도 자신에게 일어났다.
그래도 다행인가
방금 전 자신과 악수하며 웃는 얼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 남자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진짜로 기억을 못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안즈는 이 남자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서로 기억하는 것보다 둘 중 한 사람만 기억하고 있는 게 차라리 낫겠지. 물론 안즈는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기억을 다 지우고 싶지만 그래도 저 남자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신만 민망한 건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저 남자에게는 자신이 그저 스쳐지나간 여자 중 한 명 일 뿐이라는 게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억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아는 척 하는 것보다는 억울해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모르는 척 하자. 어차피 나랑 자주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이니까 저 사람과 엮일 일도 잘 없을 거야. 그러다 보면 익숙해지고 점점 괜찮아지겠지. 사실 지금도 저 남자를 볼 때마다 그날 밤이 생각나서 고개를 들 수가 없지만 안즈는 이 모든 걸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

사쿠마 레이는 좋은 상사였다. 그때 자신에게 강압적으로 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상하고 성격도 좋은, 가끔은 동네의 친한 오빠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일에 관해서는 냉정하고 가차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누군가가 실수를 했을 때, 위에서 어처구니없는 것들을 요구 했을 때는 그날 자신이 봤던 같은 사람이 맞구나 싶을 정도로 신경질적으로 굴거나 살벌하게 화를 내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그 남자는 안즈에게 있어서 좋은 선배이자 좋은 상사였다. 그리고 사쿠마 레이가 이렇게나 좋은 사람임에도 안즈가 그를 아직까지도 불편하게 느끼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남자가 자꾸 자신에게 친근하게 굴기 때문이었다.
팀장님이 안즈 씨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 예전에는 막내라고 저렇게까지는 안 챙겨줬잖아요?’
귀엽게 생겼잖아. 팀장님 귀여운 얼굴에 많이 약하거든.’
안즈 씨가 많이 귀엽게 생기긴 했죠?’
이런 얼굴 취향 아니라면서요. 분명히 그때 그 사람이 자신을 데리고 나갔을 때 주위에서 들려왔던 말이 그랬다. 오늘 고른 애는 평소랑 다르지 않아? 이제 질렸나보지 그런 취향은. 그래서 그때는 이 사람이 어지간히도 술에 취했구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 취향이 바뀌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취향 잘 좀 유지하실 것이지 왜 굳이 바꿔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자신을 귀여워하는 게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레이는 간혹 안즈에게 동생 같아서 귀엽다는 말을 했고, 아마 조금 더 특별히 생각하며 챙겨주는 것도 연애감정이라기 보다는 막내 동생을 보는 기분으로 그러는 게 분명했다. 그런 특별취급은 필요 없으니까 좀 모른 척 해주면 좋겠는데 왜 사람 마음을 이렇게도 몰라주는 거야. 방금 전에도 같이 점심 먹자며 나가자는 걸 할 일이 남았다고 둘러대서 겨우 보낸 것 까지는 좋았는데, 레이는 그냥 오지 않고 아무리 바빠도 굶는 건 아니라며 커피와 샌드위치까지 사들고 왔다.
감사합니다.”
일은 다 끝냈는가? 아직 못 끝냈으면 내가 도와주겠네.”
, 아니에요. 괜찮아요. 혼자서 할 수 있어요!”
애초에 같이 나가고 싶지 않아서 만들어낸 말이니 해야 할 일 같은 건 없었고, 안즈는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곧 점심시간 끝나니까 가서 쉬시라며 레이를 쫓아냈다. 자신이 불편해하는 걸 저 사람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사람은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이었고, 자신은 그런 걸 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생각하는 게 또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라 어지간히도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레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안즈를 대했다. 사실은 나를 엄청나게 싫어해서 괴롭히려고 이러는 거 아닐까? 오죽하면 그런 의문이 들 정도였으나 아무리 자신이 그 남자를 불편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건 너무 억측이었다. , 회사 생활 편하게 하고 싶다. 아직도 퇴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내일 출근이 걱정되기 시작한 안즈는 남몰래 한숨을 쉬면서 레이가 사온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사쿠마 레이는 얌전히 앉아서 제가 사온 커피를 마시고 있는 안즈를 보면서 얼굴에 웃음을 지우고 못마땅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이 팀의 막내이자 신입사원인 안즈는 외모도 귀엽고, 일을 배우는 것도 빨랐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으며, 팀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내는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사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레이를 경계하고 불편해 했다. 첫 날에 자신과 인사를 할 때는 그저 처음 출근한 날이니까 긴장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안즈가 여기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지도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레이 자신은 이제 안즈가 익숙해지고 편해졌는데 정작 당사자인 안즈는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온 몸으로 자신이 긴장하고 있음을 티내며 레이를 피해 다녔다.
사쿠마 씨가 그 사이에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 아냐?’
사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회사에서도 둘이서 따로 남은 적도 없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나와 대화조차도 안 하려고 한단 말일세
그럼 옛날에 만났던 여자 아닌가?’
말이 되는 소릴 하게나.’
예전에 만났다면 처다 보지도 안 봤을 타입의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지. 카오루는 혹시 모른다며 웃었지만 레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취향이 바뀌었다지만 예전에, 한참 생각 없이 놀고 다닐 때는 지금의 취향과 정반대의 타입을 만나고 다녔었다. 아마 그때 안즈를 만났어도 자신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갔을 것이다. 게다가 회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전 애인도 아닌 한 때 같이 하룻밤을 보냈던 상대라니. 세상에 그런 촌극이 어디 있냐며 웃었더니 카오루도 진지하게 한 말이 아니라 웃자고 한 소리라며 대화의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결국 그 날의 대화는 어떤 해답도 찾지 못했고, 레이는 결국 무작정 저를 밀어내는 안즈에게 들이대며 하루 빨리 그녀가 자신에게 익숙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사실 이런 타입의 사람에게는 이렇게 들이대는 게 역효과임은 알고 있지만 사쿠마 레이는 예전의 성격을 아주 완전히는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좀 더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행동해도 될텐데 빨리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자신을 평범하게 대해주기를 바라서,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을 때려 치고 역효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아무 사이도 아니고 상사와 부하직원일 뿐인데 따로 불러서, 그것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왜 자신을 피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니 정말로 레이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일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큰 프로젝트 하나가 끝났고 지금은 다들 오랜만의 느긋한 일상을 즐기는 중이었기에 점심시간까지 버려가며 급하게 처리해야하는 일은 적어도 안즈에게는 없었다. 그런데도 별 말 없이 넘어갔던 건 이대로 데려가서 밥을 먹였다가는 체할까봐, 그게 걱정 되어서 일부러 모른 척하고 넘어갔던 거였다.
오늘도 차였어?’
팀장님 안즈 씨한테 또 차였어요?’
오늘로 몇 번째지? 스무 번 넘어가면서부터 나 세는 거 포기했잖아.’
혼자서 사무실을 빠져나오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한 마디씩 했고, 차였다는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레이는 그것들을 애써 참으며 얄미운 얼굴로 실실 웃고 있던 카오루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왜 나만?! 억울하다며 짜증을 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레이는 그것들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때, 그나저나 팀장님도 되게 끈질기시네요. 이쯤 되면 보통은 포기하지 않아요? 정말로 안즈 씨가 취향이라서 잘해보려는 거예요? 분하다는 얼굴로 씩씩 거리던 카오루를 보면서 웃던 사원 중 하나가 레이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뭐라고? 전혀 예상도 못했던 말을 들어 바보 같은 얼굴로 되물었더니 이제는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한 마디씩 덧붙이기 시작했다. , 그럴 려고 작업 중인 거 아니었어요? 팀장님 전 여자 친구도 이런 느낌 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저 그래서 안즈 씨 보자마자 팀장님 생각했는걸요. 저 사실 헤어졌다고 하셨을 때 안즈 씨 때문인 줄 알았어요. 이런 저런 대화들이 오가는데 정작 당사자인 레이는 멍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있기만 했다.
외모나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이 자신의 취향인 건 맞았다. 허나 거기서 끝이었지 그녀와 다른 관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사내연애는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고, 거기다가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인지라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왜 저 말에 부정을 못하겠는 거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데 그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부하직원이 그렇게 상사를 불편해한다면 너도 그냥 일 이외에는 대화를 안 하면 되는 거잖아. 뭣 하러 불편해 하는 애한테 붙어서 귀찮게 해? 점심을 먹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그녀에게 줄 커피와 샌드위치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단순히 거절 당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자신이 거절당하는 게 기분 나빠도 그것 때문에 오기가 생겨서 이런 행동을 하기에는 묘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그걸 자각을 못하고 있는 건가? 사무실로 올라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감사합니다.’
받으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얼마나 못마땅하던지. 그래서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면서도 일이 남았다면 도와주겠다고 한건 데 너무 대놓고 거절하는 바람에 기분만 더 나빠졌다. 성격 좀 죽이라는 소리를 그렇게 들었는데 아직도 이래서야.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고 저를 경계하며 피해 다니는 안즈가 잘못한 거지, 영문도 모른 채로 부하 직원에게 외면당하는 자신이 나쁜 게 아니었다. 이게 정확하게 어떤 감정인지는 스스로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연애감정이라고 하기에는 두근거림이 없었고, 게다가 이 감정을 단순히 무시당해서 기분이 나쁘다고 하기엔 무언가가 모자라고 어긋난 느낌이었다. 어떻든 간에 안즈와 대화라도 해보면 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답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당사자가 단 둘이 있으려고 하지를 않으니 아무리 사쿠마 레이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방법만은 안 쓰려고 했는데. , 어쩔 수 없나.”
정말 이 방법을 썼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불편해 하는 안즈가 더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대화가 안 된다면 뭐 어쩔 수 있나, 이 자리를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굴어야지.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한테 보여준 적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안즈를 보면서, 화를 참지 못하고 기어이 들고 있던 펜을 부러뜨린 레이는 반드시 이유를 듣고 말겠다며 조금 무서운 얼굴로 웃었다.

***

그런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 이름을 물어봐요?’
하룻밤인데, 이름을 기억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부끄럽다며 제 가슴을 가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재밌는 질문을 한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저런 질문을 하나? 여태까지 만나온 여자들은 이름을 말해달라고 하면 네 이름부터 먼저 말하는 게 예의 아니냐는 사람과 신이 나서 기억해달라며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으로 나누어졌었다. 어울리지 않는 짓을 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데려온 그녀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사람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간에 색다른 반응에 레이는 흥미를 느꼈고,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로 해주지 않았을 그 질문의 답을 해주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까먹을 테니까.’
아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네 얼굴도 까먹을 걸. 그녀는 제 답에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않았지만, 사쿠마 레이 본인도 딱히 답을 원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

이 사람은 사실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거 아닐까? 얼마 전이라면 저렇게 좋은 상사를 상대로 무슨 생각이냐며 자신을 탓했을 테지만 최근의 안즈는 도저히 이걸 피해망상이라고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이럴 리가 없어. 최근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종합해보면 사쿠마 레이는 안즈를 싫어하는 게 맞았고, 자신은 찍혀도 아주 제대로 찍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즈 씨 오늘도 야근이야?”
. 선배는 지금 퇴근하시는 거예요?”
도와주고 싶지만 오늘 약속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해. 그럼 먼저 갈게, 수고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선배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으나 그 선배는 웃는 얼굴로 안즈의 시선을 쳐내며 수고하라는 말만 남긴 채 사무실을 떠났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하라고 했으면서! 막내를 예뻐하고 아껴주던 그 어떤 선배도 안즈를 이 야근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 얼른 퇴근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이 빌어먹을 회사가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니, 정정한다. 빌어먹을 회사가 아니라 빌어먹을 안즈의 상사이자 이 팀의 팀장인 사쿠마 레이가 안즈를 붙잡고 놔주지를 않아서 그녀는 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퇴근을 할 수가 없었다.
레이는 야근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밤에는 쉬어야지. 일은 낮에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이 하기는 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사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안즈의 퇴근을 막고 일이 있으니 남으라고 하더니 늦게까지 붙잡고 일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입사한지 이제 반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안즈 씨는 일을 빨리 배우고 재밌어 하니 더 많은 걸 가르쳐 주고 싶다고, 퇴근 후에 붙잡아 두는 건 미안하지만 안즈 씨는 항상 남아서 일을 더 하고 가던 사람이니까, 몇 시간 정도는 괜찮지 않으냐고 웃는 얼굴로 동의를 구하던 레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를 잘생기고 상냥한 팀장님이라고 알고 있는 다른 부서의 제 동기에게 네가 알고 있는 건 전부 환상이라며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더 절망적인 건, 레이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저희 둘만 남는 건가요?’
나로도 충분하지 않나?’
아니, 그러니까, 그렇죠. 충분하기는 하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사쿠마 레이가 직접 일을 가르쳐 주는 건데 어떻게 뭐라 할 수가 있겠는가. 안즈는 반년 간 함께 일을 하면서 제 상사가 얼마나 유능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이런 불편한 관계만 아니었다면 아마 이 상황을 두 팔 벌려서 환영했을 것이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남아서 그에게서 배운 것들은 전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 남자와 단 둘이 사무실에서 남아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불편했고, 제발 다른 누군가가 남아서 자신을 도와주길 바랐으나 이 사무실에 안즈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안즈도 알고 있다.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누가 싫어하는 사람을 괴롭히려고 이렇게 시간까지 버려가면서 일을 가르쳐주겠는가. 레이는 자신을 그렇게 오래 붙잡아두지도 않았고, 항상 안즈가 돌아가던 그 시간에 집에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아껴서, 잘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도 말로는 너무 하다, 막내 너무 잡지마라, 같은 말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 상황에서 괴롭고 힘든 사람은 안즈 뿐이었다.
그냥 이야기할까. 옆 부서의 팀장과 저녁 먹고 올 테니 어디가지 말고(사실 없는 사이에 몰래 집으러 갈려던 안즈는 이 말을 듣자마자 흠칫하며 어색한 얼굴로 그런 짓은 안 한다며 웃었다.)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레이가 주고 간 유명한 일식집의 초밥의 포장을 뜯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으나 아무리 힘들어도 그건 아니었다. 말하면 당장이야 편하겠지. 그런데 그 다음은? 아니, 애초에 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믿어줄 거란 확신도 없는데 과거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불편하게 계속 붙어 다닐 수는 없었다. 반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래도 레이를 대하는 게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부담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변태라고 욕해도 좋았다. 레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그 날 밤이 생각났다. 빌어먹게도 그 남자는 그날 내내 자신의 이름을 불러댔었다. 오늘이 지나면 까먹을 거라면서, 내일 아침에는 얼굴도 까먹을 거라고 웃던 주제에 그 목소리로 계속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건데, 레이가 안즈 씨라고 자신을 부를 때마다 그날 밤이 생각나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날 아침, 레이가 일어나기 전에 그 방을 나가면서 안즈는 오늘 있었던 일을 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날 사쿠마 레이와 나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친구는 굳이 잊을 필요가 있냐며 웃었지만 안즈는 쓸데없는 감정이 생기기 전에 그날 밤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삭제하고 싶었다. 그 하룻밤으로 그런 감정이 생길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겠지만 바보 같게도 안즈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냥 평범하게 대할 수 있음에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밀어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그 사람을 다른 감정으로 보게 될까봐. 얼마나 웃기냐고. 단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그걸 잊지 못해 연애를 해도 길게 하지를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모자라서 그 사람을 회사에서 상사로 만나고, 그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이제는 두근거림까지 느낀다니. 그래서 더 깊어지기 전에, 레이가 더는 자신과 가까워지기 전에 선을 긋고 도망가려고 한건 데 사람이 얼마나 필사적인지도 모르고 그 남자는 자꾸 안즈가 그어 놓은 선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라도 만나면 좋겠는데. 듣기로는 레이는 얼마 전까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고, 헤어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람의 옆에 연인이라도 있었다면 이 감정을 쉽게 정리했을 텐데 자꾸 주위에서는 안즈가 레이의 이상형에 가깝다고 부추기지, 당사자인 레이도 그걸 부정하지 않지, 장난이라며 다들 웃고 넘어가지만 안즈는 도저히 그걸 장난이라고 넘길 수가 없었다. 내가 좀 더 단호하게 밀어내야 하는 건가. 아니, 자신은 이미 충분히 그러고 있으니 모든 건 사쿠마 레이 탓이었다.
아니지, 여기에는 내 탓도 없지는 않지…
사실 요즘은 그 사람이 제게 다가오는 게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런 자신이 바보같았지만 마음대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그 남자에 대한 기억도, 그때 느꼈던 두근거림도 전부 지웠을 것이다. 진짜 이대로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다. 매번 저녁 식사 시간 때마다 레이가 자리를 비우는 틈을 타서 몰래 도망가고 싶었으나 안즈는 매번 말만 할 뿐, 정말로 그렇게 한 적은 없었다. 레이가 무서워서라고 어줍잖게 변명은 하지만 사실은 집으로 갈 용기따위는 안즈에게 없다는 게 맞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싫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레이와 둘만 있는 이 시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을 가르쳐 준다는 핑계로 안즈와 둘만의 시간을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서 레이는 난감해하던 중이었다. 일 하다가 대뜸 왜 자신을 불편해 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고, 자신이 물어본다고 해서 안즈가 솔직하게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단순히 선후배 사이여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텐데 두 사람의 관계는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그냥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는 게 더 좋지 않을려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모두가 퇴근하고 난 후 단 둘이서만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즈는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자신이 교사였다면 아마 애제자로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려는 의지도 높았고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둘만 남아있기 위해서 핑계 삼아 댔던 이유인데, 이제는 그녀에게 무엇이든지 가르쳐 주고 싶어서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진짜 그런 이유로만 남으라고 하시는 거 아니죠?
‘솔직히 말하세요. 저희 간 사이에 둘이서 몰래 연애하죠?
‘다들 지나치게 상상력이 좋은 거 아닌가? 미안하지만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 그런 지나친 억측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먼.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나중에는 특별한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레이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팀원들은 다들 장난끼가 많았고, 짓궂은 말로 사람을 놀려먹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고, 그 시간 동안 사적인 대화없이 일만 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봤자 아마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할 게 분명했다.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어도 알게 된 시간이 오래되었다보니 어지간한 말로는 멈추지 않을 걸 알기에 레이는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말도 되지 않는 그들의 추측들을 얌전히 들어주었다. 안즈는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사무실에서 가장 핫한 대화 주제는 바로 레이와 안즈의 관계변화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다쳐도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데리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지 마라. 게다가 내가 뭘 하고 싶어도 날 그렇게 불편해 하는데 그런 사람을 데리고 어떻게 관계를 변화시키냐고 한소리를 했더니 안즈와 가장 친한 여사원 중 하나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안즈 팀장님 좋아하잖아요. 적어도 관심은 있는 것 같던데요? 흡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냐며 그 여사원을 쳐다보았고,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불편해 하는 게 팀장님을 싫어해서 그런다기 보다는… 왜 있잖아요. 관심도 있고 상대에 대한 호감도 있는데 그 이상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는 경우. 그런 것 같았어요.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는데 그때 말하던 표정이나 그런 게 싫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아 그런 거 있지. 좋아하는 건 맞는데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오히려 피하는 경우. 뭔지 알 것 같아. 그런데 팀장님의 뭐가 걸린다는 건데? 저 외모가 걸리는 거 아닐까? 그럴수도 있겠네. 솔직히 말해서 남자 친구로 두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게 잘생긴 얼굴이긴 해. 남자 친구로 두기 보다는… 아이돌로 두고 멀리 떨어져서 구경하고 싶은 사람이지, 우리 팀장님은. 어쨌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만 해결하면 둘이 연애할 수 있다는 거 아냐? 축하해요 팀장님. 드디어 해결책이 나타났네요.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저를 볼 때마다 긴장하고 어색하게 웃는 얼굴이 자신을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니. 솔직히 말하자면 레이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여자를 한 두명 만나본 것도 아니고, 워낙 눈치가 빨라 타인의 감정변화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는 자신이 그런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자신은 안즈와 연애를 할 생각이 없는데 자꾸 그쪽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할 지경이었다. 저렇게 어린 애랑 무슨 연애를 해. 한숨을 쉬면서 그리 말했더니 카오루가 얄밉게 웃으면서 돌직구를 날렸다. 전 여자 친구는 안즈 씨보다 더 어리지 않았어? 맞아요. 아직 대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팀장님 여태까지 만난 여자 친구 다 어렸잖아요 이 양심 없는 사람아! 역시 자신의 연애사정을 모조리 알고 있는 팀원들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고, 레이는 방금 전에 불을 붙인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황급히 흡연실을 빠져나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때부터 좀 더 유심히 안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자신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피하는 것에만 눈이 가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이 들어왔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안즈의 작은 귀가 빨개진다는 것이었다. 어쩔 때는 고개도 들지 못할 때도 있었고, 시선을 피할 때도 있었지만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지는 그 귀만은 숨기지를 못했고, 레이는 그걸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뜨거울 것 같은데 만지면 안되겠지. 부끄러워 하는 게 작은 소동물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일 뻔 했으나 부하직원에게 그러는 건 파렴치한 짓이라며 가까스로 참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안즈. 귀가 왜 그렇게 새빨개?
‘…뭐라구?
‘하하. 지금 안즈 귀 잘 익은 사과같은 걸?
그 말을 듣자마자 마치 들켜서는 안되는 것을 들킨 사람마냥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가리는 안즈를 보면서, 레이는 처음으로 그때 들었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고…
레이는 항상 약속이 없는데도 거짓말까지 해가며 굳이 저녁은 안즈 혼자서 먹게 했다. 자신과 같이 먹으면 혹시라도 체할까봐 걱정되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쯤은 안즈가 자신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퇴근해도 괜찮다는 뜻이기도 했다. 별로 혼을 낼 생각도 없었고, 얼마든지 이해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불편해하면서도 안즈는 단 한 번도 그 시간에 몰래 사무실을 빠져나간 적이 없었고, 오히려 레이가 평소에 오던 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 오면 초조한 얼굴로 시계를 확인하고는 했다. 오늘은 좀 늦으시네. 그 말 한 마디 뿐이었지만 레이는 거기서 안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건가. 자신을 불편하게 생각하니 관심두지 말자고, 갖은 애를 쓰며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저런 반응을 보이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앞에 서서 레이는 피곤한 얼굴로 제 머리를 헝클어 뜨렸다.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

그녀가 제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게 서운하여서 괘씸한 마음에 일부러 귓가에 대고 그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하지 말라며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젓는 게 사랑스러웠다. 안즈. 새빨갛게 익은 작은 귀를 깨물면서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더니 그녀가 어차피 잊을 이름을 뭘 그렇게 자꾸 부르냐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았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서 자꾸 부르고 싶다고 대답했더니 왜 쓸데 없는 말을 하냐며 고개를 숙이는 게, 한 번도 보지 못한 반응이어서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진짜 한 번 더 만났으면 좋겠는데. 
오늘따라 이 그녀를 보면서 이 생각만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레이는 진심이었다.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한 번만 더 만났으면 좋겠다는, 자신답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술김에 하는 생각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이었다. 
물론 자신이 일어나기도 전에 급하게 사라진 그녀 때문에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레이는 한동안 그 이름을 외우고 다녔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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