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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Love Affair 中 1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Love Affair 中 1

박로제 2018. 3. 12. 00:46




안즈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못 마신다거나(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알코올 특유의 쓴맛이 싫어서가 아니라 술을 과하게 마셨을 때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술에 잡아먹혀서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딱 질색이었고, 그건 안즈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술자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고, 적당히 가볍게 즐기는 정도라면 안즈도 별로 그런 자리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행히도 지금 자신이 일하고 있는 회사는 회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회식에 간다고 해도 술을 억지로 권하지는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회식이 있다는 말에 별 생각 없이 참여한다고 말했던 것인데,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빠졌을 것이다.
괜찮아, 안즈 씨?”
괜찮, , 아니요
물이라도 줄까?”
물이라도 마시면 괜찮아질까 하여서 컵을 받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마셨으나 괜찮아 지기는커녕 얼굴에 더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잔을 거기에 두면 어떡해요. 아니, 안즈 씨가 그걸 마실 줄 내가 알았나. 막내 얼른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케호시 씨가 알고 있다니까 나중에 좀 부탁하죠. 뭔지도 모르고 마신 자신이 잘못한 거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 이래서 술 마시는 걸 싫어했던 건데. 그렇지만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장난삼아 만들어 뒀던 독한 술을 마신 건 자신이었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었다. 원래도 조금 취한 상태였고, 그런 상태에서 독한 술을 물이라고 생각하고 급하게 들이켰으니 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가 얘한테 술 먹였어?”
온 몸에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도 아프고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속도 울렁거려서 술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겠다 싶어서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었는데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났다. 시원해. 기분 좋아. 그런데 이 목소리, 알 것 같은데. 누구더라.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화난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레이가 보였다. 아니 저희도 먹일 생각은 없었다고요. 잔이 섞여서 물인 줄 알고 마셨나 봐요. 저희도 안즈 씨 술 약한 거 뻔히 알고 있는데 그러겠어요? 다른 사람들 탓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라는 걸 말해줘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게 귀찮았다. 지금 제 옆에 레이가 앉았고, 그 남자가 열 좀 식히라며 제 뺨에 손을 대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니까 좀 더 있어주면 좋겠다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사람이 취하면 정말 별 생각을 다 하는구나. 그래서 이 사람도 그때 나를 데리고 나갔던 걸까.
.”
혹시라도 술에 취하면 이런 생각을 할까봐 여태까지 조심해왔던 건데. 하필이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들다니. 괜스레 짜증이 밀려와서 얼굴을 찌푸리니 머리가 아프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 건데. 그렇게 말하며 짜증이라도 내고 싶었으나 이제는 너무 졸려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안되겠구먼. 나 먼저 가볼 테니 적당히 즐기다가 들어가게나.”
팀장님이 데려다 주시게요?”
어쩔 수 없지 않나. 지금 운전이 가능한 사람은 나뿐이고, 이대로 여기에 둘 수도 없고.”
아케호시 씨는?”
아무래도 아케호시 씨한테 맡기는 건 무리인 것 같은데요.”
팀장님. 집은 어디인지 알아요?”
야근할 때 몇 번 데려다 준적이 있으니까 걱정 말게나.”
안즈 씨. 잠시만 일어나봐. 어휴,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리네.”
졸려서 자꾸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보니 일어날 수 있겠냐며 제게 손을 내미는 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술에 취한 상태라도 아무렇지 않게 그 손을 잡는 건 제게 무리였기에 셔츠의 소매만 잡았더니 안즈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더 뭐라 하지 못하고 그녀를 똑바로 앉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팀장님. 정신이 좀 드는가? 저 혼자 택시타고 갈게요. 몇 번 이 사람의 차를 타고 집에 같이 간 적은 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둘만 남게 되면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모르니까, 안즈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기에 되도록 레이와 둘만 남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술김에 왜 나를 기억 못하냐고 매달리면 어떡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혼자서 갈 수 있으니 괜찮다 거절한 것인데 레이는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혼자서 갈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또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래, 요즘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팀장님 차타고 가요. 저 사람 자기 옆자리에 절대 부하 직원 안 태우는 사람이라니까? 이런 기회 잘 없으니까 놓치지 마요. 주위에서 자꾸 그렇게 말하며 저와 레이를 자꾸 붙여두려고 하자 안즈도 슬슬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위험해서 그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 이 밤에 술 취한 여자 혼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있는데 왜 자꾸 그걸 레이에게 부탁하는지도 모르겠고, 레이 또한 왜 자신을 데려다준다고 나서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더는 못 참겠다. 안즈는 자신을 데려다 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뒀던 재킷을 다시 입는 레이를 보면서 결심한 얼굴로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팀장님.”
왜 그러나?”
진짜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어쨌단 말인가?”
저는 팀장님이 불편해 죽겠는데에저한테, 왜 자꾸 그러냐고요……
하아?”
, 결국은 저질러버렸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안즈는 자신의 입을 때리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쏟아진 물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레이는 술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술자리 또한 제법 좋아하는 편이었고, 그다지 술에 약하지도 않았다. 저 인간 취하는 걸 보는 게 내 소원이야. 카오루는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그런 말을 했었고, 레이는 그럴 때마다 가소롭다는 얼굴로 비웃어주었다. 매번 나한테 업혀서 집에 돌아갔던 사람이 누구더라. 업히긴 누가 업혀! 사람을 짐짝처럼 들고 다녔으면서! 대학 시절에 레이를 이겨보겠다고 무리하다가 매번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걸 집까지 데려다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저렇게 구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레이는 항상 카오루의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술을 마시고 다니는 일이 질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려서 자연스럽게 술을 끊게 되었다. 지금이야 간단하게 몇 잔 마시는 것 정도는 괜찮아졌지만 그 이상은 어쩐지 무리라 회식자리에서도 많이 마셔봤자 한두 잔, 심지어 아예 마시지 않을 때도 있어서 혼자 멀쩡한 상태로 뒷정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게 팀에서는 팀장님이 술이 약해서 마시지 않는 거다, 로 소문이 나버려서 그걸 카오루에게 전해들은 옆 부서의 팀장이자 자신의 오랜 친구는 그 사람들한테 레이가 대학시절에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줄 수가 없어 유감이라며 보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웃었다. 어쨌든 사쿠마 레이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그다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잠깐 전화를 받고 온 사이에 방금 전까지 떠들썩하고 즐거웠던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해있어서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안즈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술에 만취된 상태로 의자에 앉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술은 가볍게 즐기기만 하고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다고 첫회식 자리에서 거절했던 것이 생각났고,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그리 말하고 말았다. 누가 얘한테 술먹였어? 왠지 모르지만 빨개진 얼굴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있는 꼴이 보기 싫어 어떤 녀석이 억지로 술을 먹였냐고 물어봤더니(사실은 물어봤다기 보다는 화를 내는 것에 가까웠지만) 다들 그런 거 아니라며 황급히 변명을 하는게 아닌가. 다행히도 억지로 마신 게 아니라 실수로 마신 거였고, 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빨갛게 달아오른 안즈의 뺨에 손을 갖다댔다.
시원해…
작게 그리 중얼거리며 눈을 뜬 안즈가 기분이 좋다면서 제 손에 뺨을 부비는 것을 봤을 때, 레이는 이상하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매번 날을 세우고 불편해하던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듯 이렇게 행동하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안즈의 이런 행동이 싫지는 않았다. 계속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볼 한 번만 꼬집어봐도 될려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그 맹하지만 귀여운 얼굴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술기운 때문에 이제는 머리가 아픈지 안즈가 인상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조금 더 이러고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슬슬 1차도 끝날 분위기고, 이대로 집에 보내야겠다 싶어서 안즈의 집을 알고 있다는 스바루를 찾으니 얼마나 마신 건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죽은듯이 자고 있는게 보였다. 이대로 혼자 보낼 수는 없느니 내가 데려다줘야 겠구먼. 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은 거 저 혼자 뿐이었고, 안즈의 집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아무래도 자신이 데려다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리 말하며 쓰러지기 직전인 그녀를 깨워서 똑바로 앉혔더니 전혀 예상도 못했던 말이 들려왔다. 저 택시타고 갈게요.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들었나 싶어서 다시 되물었으나 이번에도 똑같이 대답이 날라왔다.
…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지금도 그대로 쓰러져서 잠들 것 같은 사람이, 말은 잘 한다. 의자에 똑바로 앉힐 때도 손은 잡지 못하고 소매 끝만 잡는 것이 못마땅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는데, 이제는 저런 말까지 하니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안즈가 자신을 불편하게 여긴다고 해도 지금 이런 상황에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주위에서도 그건 아니라며 안즈를 설득해보았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싫다며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기만 했다. 술에 취했더니 평소보다 더 고집쟁이가 됐구먼. 일을 할 때도 어느정도 이런 면이 있었기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저런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골치가 아팠다. 지금 집에 들어갈 사람은 안즈와 마찬가지로 취한 사람이니 별로 도움도 되지 않을 거고, 그렇다고 모처럼의 회식을 즐기겠다는 사람 중 한 명을 붙잡고 데려다주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아닌 남자 사원을 안즈와 함께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데려다줄테니 슬슬 정리하게나.
술 취한 사람의 고집같은 건 들어줄 필요도 없지. 결국 레이는 안즈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하든 무시해야겠다 싶어서 그쪽에 신경을 끄고 벗어둔 재킷을 다시 입을 때, 안즈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고집을 부릴 때와 목소리가 다르길래 뭔가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안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어쨌단 말인가?”
저는 팀장님이 불편해 죽겠는데에저한테, 왜 자꾸 그러냐고요……
하아?”
저건 또 무슨 소리야. 막연히 그렇지 않을까 싶었던 그 감정들을 필터없이 들어버린 레이는 얼이 빠진 얼굴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안즈를 바라보았다.

“저는 팀장님 보고 있으며언… 자꾸 민망하고, 너무 부끄러운데 왜 자꾸 저한테 다가오세요……
막내가 술에 취해서 드디어 미쳤나. 다들 경악을 하며 쟤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팀장님 안즈 씨가 너무 취했나 봐요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세요! 그냥 막내 재워라! 같은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하고 있을 때 전혀 예상도 못했던 말이 안즈의 입에서 나왔다. 어디 네가 나를 불편해 죽겠어하는 이유나 한 번 들어보자, 의 마음으로 팔짱을 끼고 안즈를 내려다보던 레이 또한 생각도 못했던 말이 들려오자 방금 전보다 더 얼이 빠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혼자서 속앓이를 하다가 술의 힘을 빌려서 겨우 토해낸 말은 자세한 사정을 듣지 않으면 오해하기 쉬운 말이었고, 역시나 불행하게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으나 안즈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혹시라도 둘 사이에 있었던 옛날 이야기를 저도 모르게 꺼내게 될까봐 어떻게든 돌려서 말한 건데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그만둬야 하는데, 이러다가 레이가 쓸데없는 오해라도 하게 되면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해진다. 아니, 어느정도는 오해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이런 마음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안즈는 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었고, 레이의 밑에서 계속 일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어떻게든 변명을 생각해서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통제력을 잃은 입은 이제 제멋대로 안즈의 속마음을 꺼내놓고 있었다. 진짜 망했다.  
“저는…저는, 팀장님이 옆에 있으면 너무 부끄러운데……왜 자꾸 저한테 친한 척 하시는 거에요…
팀장님 얼굴만 보면 부끄러워서 민망하단 말이에요. 특히나 제 이름 부르실 때 제일 심하니까 제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마세요… 이제는 아예 눈물까지 쏟아내며 그렇게 말하는 안즈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걸 취중고백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레이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하는 안즈는 레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때가 생각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면 장난을 치면서 귓가에 제 이름을 속삭여주던 그 밤이 떠올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고백에 가까운 말이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이유였고, 그때 흡연실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진짜로 나를 좋아하는 건가. 확실하게 들어보고 싶은데, 여기서 속마음을 전부 말하게끔 유도하는 건… 여기서 이러지말고 둘이서 마저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그걸 조용히 보고 있던 카오루가 레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리 말했고, 멍하니 안즈를 보면서 생각에 빠져있던 레이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이만 가보겠다며 이제는 왜 나를 늦게까지 남겨서 일을 가르쳐주냐 얼굴 가까이 들이밀지 마라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안즈를 어르고 달랜 뒤 재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방금 우리가 뭘 보고 뭘 들은 거야. 두 사람이 나가고도 한참동안 말 없이 침묵만을 유지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곧 연애 시작한다에 만엔.
“전부 기억난 안즈 씨가 사표 쓴다에 나도 만엔.
“그 사표 팀장님이 절대 안 받아준다에 이만엔!
“내기하는 의미가 있긴 해요 이거?
어차피 다들 연애 시작한다로 몰아갈 거 잖아요. 그래서 너는 참가안할거야?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해야죠. 저도 곧 연애 시작한다에 오천엔 걸어야지. 

**
오늘은 원래 이렇게까지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다. 안그래도 카오루 때문에 평소에도 질리게 마시고 있는 터라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마시지 않는 편이었는데 어쩐지 오늘따라 자꾸 이상하게도 손이 가서 쉴새 없이 마시다보니 기분 좋게 취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기분 좋게 취했고, 자주 가던 클럽에서 우연히도 괜찮은 여자를 만났다. 모든 게 작고 또 작아서 상냥하게 배려해주고 싶다가도 우는 얼굴만 보면 더 심술궂게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게했다. 사실 그 클럽에서도 키스만 하고 바로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고,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그 장소에서 거기까지 괴롭힐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거기서 그렇게 행동했던 건 소녀의 우는 얼굴이, 그만하라 밀어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조심스레 제 옷자락을 쥐는 작은 손이 끌렸기에 저지른 짓이었고 그런 행동에 마음이 동한 적은 살아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역시 우는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이 괜찮았지.
얼마나 일찍 나가버린건지, 이제는 사람이 누워있었다는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 침대에 다시 누우면서, 레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안즈는 주말동안 많은 고민을 했고,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단 하나 뿐이었다. 사표 쓰자. 여기가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은 술에 취해서 레이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고, 그 취중고백을 한 장소는 둘만 있는 곳이 아니라 계속 보고 지내야할 회사 사람들이 있는 회식자리였다. 진짜 미쳤지. 어떻게 거기서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해. 적어도 둘만 있던 그 차에서 고백을 했다면 나았을 텐데 안즈는 집으로 오는 내내 정신을 잃고 잠들어 있었으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의 방이었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허공에 발차기도 해보고 옷장에 머리를 박고 타임머신을 찾아보았지만 그건 현실도피일 뿐, 제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사표를 쓰고 이 회사에서 얼른 도망가자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렸고, 인터넷에 사표 쓰는 법까지 작성해서 열심히 썼으나 출근하기 하루 전날에 안즈는 깨닫고 말았다. 이 사표를 제출할려면 레이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상사였고, 사표를 제출할려면 먼저 팀장인 그 남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안즈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1순위는 다름아닌 사쿠마 레이였다. 
‘그냥 기억나지 않는 척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나 연기 못하는 거 알잖아…
‘아니, 애초에 그런 술자리를 왜 나간 거야 너는?!
‘이즈미 쨩, 이 상황에서 안즈 쨩을 탓하면 어떡해!
안되겠다 싶어서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상황을 알고 있는 이즈미와 아라시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그런 회식자리를 가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터무니 없은 말과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 회사로 왔으면 이런 일도 없고 좋지 않냐, 왜 유우 군이나 너나 하나같이 오빠의 말을 듣지 않는 거냐며 이즈미의 잔소리만 실컷 들었고, 결국 그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했다. 그 자식이 혹시라도 수작 부리면 나한테 말해야 해, 안즈 쨩? 헤어질 때 아라시가 제 손을 잡아주며 걱정된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주먹은 그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안즈는 그 마음만 고맙게 받기로 했다. 
사표를 낼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뻔뻔하게 기억나지 않는 척 연기를 하며 이 회사에 다닐 용기 또한 안즈에게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녀가 택한 것은 레이를 외면하는 일이었고, 다행히도 그는 예전처럼 자신을 피해서 도망가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안즈의 취중고백을 들었던 사람들 또한 아무 말 하지 않고 모른 척 해주었으며, 이상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지만 대놓고 물어보는 것보다는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게 나았기에 안즈는 얼마든지 그 시선을 받아줄 수 있었다. 
물론, 물어보지 않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안즈는 팀장님이 그렇게 좋아?
둘 밖에 없는 휴게실에서 돌려말하지 않고 직구로 그렇게 물어본 것은 평소 자신과 친했던 여자 선배였고, 안즈는 놀라서 들고 있던 콜라캔을 떨어 뜨리고 말았다. 네 꺼 아니라고 그렇게 막 다루지 마라. 그녀는 바닥을 구르고 있는 폭발 직전의 콜라 캔을 주워서 이걸 어떻게 마시냐며 투덜거렸고, 안즈는 멍청한 얼굴로 방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냐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제가 팀장님을 좋아한다구요?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대체 뭘 봐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번 술자리에서 고백했잖아.
“그건 누가 봐도 실수잖아요!
“뭐…하긴, 따지면 실수기는 하지. 술에 취해서 속마음을 전부 말해버렸으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두근 거린다며? 팀장님 얼굴은 좋아하지 않아도 두근거릴만한 얼굴이잖아요. 그건 맞는데 보통 사람들은 너무 잘생겨서,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너처럼 불편해 하고 도망가지는 않거든? 아니, 애초에 말이야… 정말 아무 감정이 없다면 굳이 이렇게 도망다니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런 감정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거잖아. 이렇게 도망다니고 피하는 거야말로 나는 당신한테 그런 감정이 조금이라도 있었다고 광고하는 거랑 뭐가 달라. 
평소에도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이런 일에도 그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기에 안즈는 상처 받았다는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았지만 그녀는 그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자판기에서 새로 콜라를 뽑아 캔을 땄다.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도 아니잖아, 팀장님이. 그런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아니라고 해. 휴게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며 답답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으나 안즈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우리는 몇 년 전에 하룻밤을 보냈고, 나는 그 사람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다가 이 회사에서 다시 만났고, 사실은 그 남자에게 호감이 있어서 여태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도 눈물이 날 지경인데 그 호감이 기어이 사랑으로 바뀌었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요. 이걸 전부 말해주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기에 안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오늘은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그녀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제 시선을 피하고 있는 안즈를 보면서 이번에도 듣기는 글렀구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자기 감정을 외면하는 건 도망가는 것밖에 안돼. 어떻게든 결판은 지어야 할 거 아냐. 계속 이렇게 지낼 거야?
“……아니요.
“대답은 잘한다. 아무튼, 잘 생각 해봐. 사실 생각할 것도 없고 누가 봐도 확실한 감정이지만 본인 생각이 중요하니까 나는 더 말은 안 할게.
그 말만을 남기고 그녀는 휴게실을 나갔고, 안즈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여 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나만 좋아한다고 인정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그 사람 마음은 어떤지 하나도 모르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그런 남자를 짝사랑하는 건 죽어도 사양이었다. 나를 기억도 못하는 그 나쁜 남자를, 왜 내가 혼자서 좋아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만 말마따나 이렇게 계속 레이를 피해다닐 수는 없었다. 진실을 이야기해줄 수는 없어도 어떻게든 결판을 짓기는 해야겠지. 사실은 이대로 계속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여길 그만두고 이즈미의 회사로 가는 것만은 죽어도 싫었기에 안즈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죽어도 싫다는데 둘이서 대화를 해야 되지 않겠냐며 웃는 얼굴로 일을 떠맡기고 간 사람은 카오루였다. 세상에 부하직원이 상사한테 야근하라고 일을 떠맡기고 가는 게 어디 있어. 그렇지만 이런 거 아니면 안즈 씨랑 언제 이야기 해보겠어. 답답해 죽겠으니까 내일 아침는 차이든, 사귀는 사이가 되든 뭐가 됐든 좋으니까 둘 중 하나인 상태로 출근해. 알겠어, 사쿠마 씨? 그 말만을 남기고 카오루는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이제 사무실에는 안즈와 자신 둘밖에 남게 되었다. 
그동안 레이는 계속 고민해왔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가? 단순히 보여지는 외모와 내가 아는 성격이 취향이라서 좋은 것인가, 그게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정말로 마음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꽤나 오래 고민해왔지만 정답을 찾을 수가 없어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귀엽고, 하는 행동이 예뻐서 계속 옆에 두고 싶기는 했다. 먹는 걸 잘 먹어서 뭐라도 하나 더 사서 먹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다른 사람과는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제 앞에서만 긴장하는 게 못마땅할 때도 있었고, 그 옆에 모르는 남자가 있으면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이거 좋아하는 건가. 여태까지 이런 경우를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레이는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둘만 이 사무실에 남으니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안즈 또한 긴장되는지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계속 딴 짓을 하거나 손톱을 깨물기도 하고, 불안한 듯 손으로 계속 책상을 정신 산만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 날 이후로 처음이었던가, 이렇게 둘만 남은 거. 돌아가는 차안에서 대화를 할 생각이었으나 안즈는 그대로 쓰러져 조용히 숨소리만 내면서 자고 있었고, 레이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 자는 얼굴을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굳이 서로를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해야해? 사쿠마 씨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그렇기야…하다만…그래도 내 감정에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시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보고 일해야 하는 사이인데.
‘어울리지 않게 왜 그래. 여태까지 짧게 연애해도 자기 마음에는 확신이 있었잖아. 이번에는 아니야?
카오루의 말대로 그랬다. 지금까지 적게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었고, 그중에는 일주일만 만나고 헤어진 사람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레이는 확신을 가지고 그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 짧은 시간동안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안즈만은 그러지를 못했다. 좀 더 확신을 갖고 그녀와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이런 어중간한 마음으로 안즈에게 다가가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고, 그게 확실해질 때까지 참아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자리가 만들어지니 버리지 못한 옛성격 탓인지, 자꾸 조바심이 났다. 안즈라도 조금 확실하게 그때의 말은 자신의 실수고 자기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새빨개진 얼굴로 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재빠르게 돌리고 부산스럽게 구는 것이 자꾸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아, 성격에 안 맞아. 다섯 번째로 눈이 마주쳤을 때 이번에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안즈를 보고 더는 참을 수 없어진 레이는 민망함을 참고, 마음을 굳게 먹고, 결심했다는 얼굴로 그리 물어보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네, 네?
“혹시, 나俺를 좋아하나?
아, 급한 마음에 말실수를 해버렸구먼. 실수로 지금은 쓰지 않는, 예전에 사용하던 말투를 써버려서 다시 한 번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안즈가 의자를 박차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바람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 아, 아니요! 아니에요! 안 좋아해요! 의자가 힘에 밀려서 쓰러지고, 자기도 모르게 허둥지둥하다보니 책상 위의 서류는 전부 바닥에 떨어지고, 새빨개진 얼굴로 말까지 더듬으며 부정을 하는 게 아무리 봐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긍정하는 것 같았으나 너무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외치기에 이대로 모르는 척 하고 안즈의 말을 믿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렇게까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가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어 이대로 다시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해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아, 안 좋아해요……
제가 팀장님을 좋아할리가 없잖아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얼굴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그리 말해봤자 아무 소용 없는데도 안즈는 계속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서라도 모르는 척 넘어가주어야 하는데, 그 우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 우는 사람을 붙잡고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내가 이런 악취미였던가. 자괴감이 들기는 했지만 이건 운나쁘게도 안즈의 우는 얼굴이 꽤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다만… 한 번도 사람의 우는 얼굴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어서 신선하기도 했고, 스스로가 정말 성격이 나쁘다는 걸 확인 받아서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심이 섰으니 이제는 행동할 차례였다. 아직도 우왕좌왕하며 제 시선을 피하고 있는 안즈에게 다가가 그 턱을 잡고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인 것 같구만. 저와 반대되는 색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꽤나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안 좋아한다고?
이런 얼굴로 나俺를 보고 있으면서?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니 안즈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안 좋아한다고 다시 한 번 말했지만 이만큼 믿음이 가지 않는 말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할 거면 적어도 제 옷은 잡고있지를 말던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레이는 지금 이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예전 말투로 말을 하는데, 순간 옛날 일이 생각나서 안즈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쓰러질 뻔 했다. 왜 예전 말투로 사람을 유혹하는 거야. 그렇게 따지고 싶었으나 그의 품에 안겨있는 지금, 안즈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오늘 야근이라길래 불안한 마음으로 남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레이라는 답이 날라왔고, 제발 오늘만 바꿔달라고 선배들에게 매달렸으나 다들 웃기만 할 뿐 안즈의 부탁은 들어주지를 않았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왜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거야. 그렇게 원망해봤자 사무실에 남은 인원은 저와 레이뿐이었고, 상사가 저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부하 직원인 자신이 일을 버리고 도망치듯이 퇴근을 할 수는 없었기에 안즈도 얌전히 자리에 앉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게 레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자기 일만 했기에, 안즈도 그에 대해서는 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집중은 하나도 못했지만. 
그런데 갑자기 왜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 질문에 놀라서 다급하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기는 했으나 누가봐도 어색하고 믿음을 주지 않는 답이었다. 조금만 차분하고 침착하게 답했으면 그래도 속일 수는 있었을 텐데, 지금 상태로는 무리였다. 그냥 이대로 묻어버리고 싶은데 왜 당신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나를 좋아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가 턱이 잡히고, 고개가 들려졌다. 저와 반대되는, 붉게 타오르지만 뜨겁다는 느낌보다는 서늘하다는 느낌을 주는 그 붉은 눈동자와 마주보고 있으니 여태까지 말도 안 된다며 외면해왔던 제 감정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안 좋아한다고?
레이가 그 목소리로 제 귓가에 속삭였을 때, 안즈는 저도 모르게 레이의 옷자락을 손에 쥐었다. 안 좋아해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안즈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제 이렇게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레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정말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냐고. 나를 좋아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꾸 그렇게 물어보냐며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안즈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 뿐이었다.
“……좋아하는 거, 같아요…
좋아한다는 확신에 찬 대답도 아니었고,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말이었지만 이건 안즈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답이었고, 레이도 이 대답이 제법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어쨌든 자신에게 기회는 있다는 거니까. 내가 그걸 확신으로 바꿔주겠네. 그는 자신감에 찬 말투로 그리 말했고, 안즈는 전혀 예상도 못했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레이를 바라보았다. 저를 좋아하세요? 그러면 내가 마음에도 없는 여자한테 이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나? 언짢은 얼굴로 그렇게 물어보는 레이에게 과거에는 그랬잖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과거의 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도 이 마음이 어떤지 확신은 못하겠구먼. 그러니까 나에게도 그 확신을 주지 않겠나? 확실하지 않은 마음의 무엇을 믿고 그래야 하냐며 거절해야 했지만 레이 또한 그것을 믿고 제게 그리 말해주었기에, 안즈도 조용히 아무말도 하지 않고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하는 연애는 처음일세.
저도 처음이에요…
따지자면 나는 그 날 이후로 당신 때문에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안즈는 다가오는 입술을 받아주었다.  

**
사실은 그 일이 있고난 후에 안즈는 그 클럽으로 찾아가서 바텐더에게 레이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자신을 기억해주었고, 다소 무례할 수 있는 질문에도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어딘가에 정착하는 걸 못하는 사람일뿐이죠. 그러니까 아가씨도 미련 갖지 마세요. 저 사람도 금방 잊어버릴 거니까, 아가씨도 잊어버리세요.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안즈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맞았기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이 아가씨가 왔다는 걸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남자는 레이가 자신을 찾아와서 어제 같이 나갔던 여자가 혹시 또 왔냐고 물어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그냥, 짧게라도 좋으니 만나보고 싶어서. 어색한 얼굴로 웃으면서 혹시라도 그 여자가 또 이곳을 찾아온다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말만 남기고 다른 사람과 나갔던 레이를 떠올리면서 남자는 역시 그녀가 왔다는 걸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이게 좋은 거겠지.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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