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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본 아뻬띠! (Bon Appetit!)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본 아뻬띠! (Bon Appetit!)

박로제 2018. 4. 8. 03:17






밥에 밤이 들어갔어.

하얗고 윤기가 흐르는 쌀밥 안에 들어가 있는 노랗게 잘 익은 밤이 안즈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컨셉은 가을인가. 식탁 위의 꽃병에는 저 익은 밤의 색깔과 비슷한 국화꽃이 꽂혀있었고, 새로 사온 식탁보는 단풍의 색깔과 비슷한 색이었다. 혼자서 다녀오겠다며 상황과 맞지않게 비장한 얼굴로 나가는 걸 보면서 대체 무얼 사러가나 싶었는데 이런 걸 사왔구나. 자리에 앉으면서 확인한 오늘의 저녁 메뉴는 밤이 들어가 있는 밥, 모시조개가 들어간 된장국에 야채절임, 부드러운 달걀찜과 시금치 통깨 무침, 그리고 채 썬 양배추를 곁들인 전갱이 튀김이었다. 화려한 맛은 없는, 평범하고 소박한 느낌의 가정식이었지만 가을과 어울리는 식단이라 안즈는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잘 먹겠다고 인사를 하며 젓가락을 들어 아까부터 계속 눈길이 가던 밥 안의 밤을 집으니 물잔을 건네주며 맞은 편 자리에 앉던 레이가 엄한 목소리로 안즈에게 밤만 골라서 먹고 밥은 못먹겠다며 남기는 짓은 또 하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다. 저번에 딱 한 번,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뿐인데 그게 레이에게는 어지간히도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다 먹을게요. 눈을 가늘게 뜨고 저를 보는 그에게 그리 말하며 밤을 내려놓고 밥을 집어 올리니 그제야 표정을 풀고 레이도 젓가락을 들었다.

가을은 맛있는 게 많아서 살이 찌는 계절이라는데, 정말로 이렇게 먹다가는 살이 쪄서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나 맛있는 걸 안 먹을 수는 없잖아. 세상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안즈는 맛있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잡이로 먹는 사람은 아니었다. 잘 먹기는 했지만 먹는 양은 그리 많지도 않았고, 밥 보다는 간식을 더 좋아했으며, 하루에 두 끼를 챙겨먹으면 대단한 일이었던 자신이 이렇게 바뀐 것은 물론 아이를 가진 탓에 식욕이 왕성해진 탓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전적으로 레이의 요리 실력이 뛰어난 탓이었다. 제가 이대로 계속 밖에서 밥을 못 먹게 된다면 그건 전부 레이 씨 때문이에요. 푸딩같은 식감의 몽글몽글한 계란찜을 입에 넣으며 그리 말했더니 당연하다는 얼굴로 웃는 게 어찌나 얄미운지.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즈는 들고 있는 숟가락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밖에서도 잘 먹고 다녀야 좋은 거 아니에요? 안 그러면 예전이랑 다른 게 없잖아요."
"어차피 당분간은 밖으로 나갈 일도 없으니 그건 지금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 않은고?"
"그거야 그렇지만… 하여튼, 레이 씨가 나빠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억울하구먼."

하루에 한 끼만 먹고도 잘 살았는데,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건 레이 씨잖아요. 이것뿐이에요? 이제는 웬만큼 잘 만든 거 아니면 먹고 싶지도 않다구요. 장난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안즈가 말한 건 전부다 사실이었다. 바쁘게 일을 하다보면 제대로 된 밥을 챙겨 먹는게 사치라서 편의점에서 대충 사서 먹을 때가 많은데 레이와 같이 살게 되면서 안즈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야채는 다 시들고 빵은 눅눅하고 반찬은 짜고 밥에서는 냄새나. 시간에 맞춰서 밥을 먹다보니 배는 고픈데 바빠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러 갈 시간은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간편한 편의점 음식이라도 먹는 건데 그건 먹기만 해도 뱉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억지로 시간을 내서 회사 근처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편의점 음식보다 약간 나을 뿐 못먹겠는 건 똑같았다. 어떡해 진짜 맛없어…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는 없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시켜놓은 음식은 반도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으니 결국 억지로 뭘 먹기는 했지만 안즈는 밖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고생해야 했다. 레이 씨가 해주는 거 먹고 싶어… 집에 가면 제대로 먹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으니 식사 시간만 되면 안즈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다가 그런 맛없는 식사에도 익숙해질때쯤,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급하게 혼인신고를 한 뒤 단순한 동거가 아닌 부부로 같이 살게 되었다. 익숙해질때쯤에 다시 이런 거에 맛을 들이면 영영 못고치잖아. 아이를 낳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을 때를 생각하면 싱글벙글 웃고 있는 레이에게 책임지라며 따지고 싶었으나 어쩌겠는가. 그런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이 남자가 만드는 것들이 하나같이 맛있어서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레이 씨가 나빠요."
"그래, 그래. 이 몸이 나빴네. 사과의 뜻으로 아가씨가 원하는 걸 만들어 주고 싶은데… 따로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

저 봐. 다 알고 저러는 게 틀림 없다니까? 먹는 걸로 저 남자한테 길들여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역시나 어쩌겠는가. 이 모든 건 저런 남자를 좋아해버리고 결혼까지 해버린 안즈의 탓이었다.

"……유채꽃 마늘 볶음이요."

그러니까 이 정도의 심술은 부려도 괜찮겠지. 누가 들어도 심술임을 알 수 있는 그 말을 듣고 곤란한 얼굴로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를 무시하며 안즈는 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


레이가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일반인 여성과 결혼한다고 기사가 떴을 때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일본 전역이 사쿠마 레이의 결혼 소식으로 난리가 날 정도였다. 이제 막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탑아이돌. 그런 루머는 돌았지만 루머는 루머일뿐, 자기관리가 철저해서 연애 관련으로는 그 어떤 기사도 나본 적 없는 사람이 대뜸 결혼을 한다고 했으니 그런 난리가 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기자회견에서 예비 신부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까지 해버렸으니. 어차피 당분간은 단체 활동이 아니라 개인 활동 위주로 돌릴 생각이었기에 별 문제 없이 레이는 이 소동이 잠잠해질 때까지 쉬게 되었고, 안즈 또한 회사에 기자가 찾아오고 파파라치가 붙어서 일을 계속 할 수 없었기에 조금 이른 출산휴가를 내게 되었다. 가끔 가다가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는 했지만 안즈는 계속 집에 있었고, 레이 또한 괜히 나갔다가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봐 장을 보러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걸 제외하고는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옆에 있는 게 당연했고, 하루종일 붙어있는 게 당연했는데, 그런 레이가 오늘은 일이 있다며 아침 일찍 나가버려서 안즈는 지금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레이 씨 언제 오는 거지. 침대에 누워서 레이의 베개를 품에 안고 뒹굴거리던 안즈는 지금 제 남편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영화도 봤고, 읽다 만 책도 다 읽었다. 없는 틈을 타서 레이가 키스씬을 화려하게 찍었다던 드라마도 전부 보았지만 항상 옆에 있던 사람이 없어서일까, 그 무얼해도 재밌지가 않았다. 게다가 혼자 있다고 굶지 말라며 레이가 밥까지 차려주고 나갔는데, 항상 앞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던 사람이 없으니 있지도 않은 식욕마저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몇 숟가락 먹지도 못하고 식탁을 정리해야만 했다. 같이 밥을 먹을 때는 솔직히 너무 귀찮게 해서 제발 혼자서 조용히 먹는 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레이가 없으니 그 조용함에 적응할 수 없어 이대로 계속 먹다가는 체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적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집에 혼자 남겨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건 아니었다. 초기에는 여러가지 수습해야할 일이 많으니 레이는 자주 집을 비웠고, 안즈도 그때는 이렇게 혼자 있는 게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아니,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티를 낸 건 아니지만 안즈는 레이의 빈자리를 그가 생각한 것보다 크게 느꼈고,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듀서로서의 자신이 좀 더 컸기에 쓸쓸해도 일이라고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은 거면 다른 사람을 만나러 밖에 나가볼까 싶었지만 그건 또 싫었다. 안즈는 지금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레이가 보고 싶은 거였으니까. 아이를 가져서 일까.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들이 가끔 들 때가 있었고,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빨리 돌아오라고 떼라도 쓰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나간 사람에게 그런 철 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언데드의 프로듀서는 집에서 쉬는 동안 놀지만 말고, 시간이야 얼마든지 걸려도 좋으니 천천히 해보라는 말과 함께 다음 앨범 타이틀곡 작곡 작사를 레이에게 떠넘겼다. 메이저로 데뷔한 뒤 수록곡 정도는 해본 적 있지만 타이틀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부담된다는 이유로 거절했으나 다른 멤버들까지 어차피 최소 1년은 더 쉬어야 할텐데 뭐가 문제냐며 레이를 설득했다. 안즈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언데드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레이를 설득했었는데, 지금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 없지만 그것때문에 레이가 제 옆에 없고 저를 두고 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짜증을 내고 싶어졌다. 너무 집에만 있어서 그런가. 그래도 예전에는 프로듀서의 입장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어쩐지 그럴 수가 없게 됐다. 안즈는 이러다가 다시 복귀했을 때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니지 걱정이 많았지만 레이는 오히려 지금의 안즈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레이를 두고도 자신의 욕심보다는 아이돌인 그를 더 중요시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 안즈는 이런 일로 질투를 하고 짜증을 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생각만 그렇게 할 뿐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레이도 알아버렸지만, 그녀는 정말로 이런 일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니까 더 보고 싶어졌잖아."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저, 레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 아가씨가 또 굶었구먼.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온 레이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안즈가 있는 방이 아니라 놀랍게도 부엌이었다. 전혀 양이 줄어들지 않은 차갑게 식어버린 크림스튜와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 냉장고에 오랜 시간 들어가 있어서 싱싱함을 잃어버린 샐러드까지. 예전이었다면 그러려니 넘어갔겠지만 임신하고부터 식욕이 늘어서 예전과 달리 레이가 강제로 먹이지 않아도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게 된 안즈가 이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건 일부러 먹지 않았다는 걸 뜻했기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혼을 하고, 동거 생활이 신혼 생활로 바뀌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레이가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마다 안즈가 입맛이 없다며 아무것도 먹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전에는 그래도 한 끼 정도는 챙겨 먹었는데, 이제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아서 레이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처음에는 예전의 식습관이 돌아온건가 싶었지만 레이가 집에 있을 때는 안즈가 먼저 무언가가 먹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대체 왜? 이러면 예전에 억지로 먹일 때와 뭐가 다르냐고, 뭐가 문제라서 그러는 거냐고 물어봐도 안즈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저 고집을 어떻게 이기누. 저런 상태에서 물어봤자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결국 레이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듣는 것을 포기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집에 있으면 저렇게 굶는 일도 없는 것 같으니, 최대한 밖에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거겠지. 어차피 집 밖에서 자신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파파라치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기자들 때문에 나갈 생각도 없었고 레이 또한 밖에 나가는 것보다 안즈와 둘이서 집에 있는 게 좋았으므로, 이 해결책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안즈와 달리 레이는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때가 있었다. 안즈는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받아 쉬고 있는 것이지만 레이는 그런 게 없는 연예인이었으니까,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따져보면 폭풍같은 기자회견과 결혼소식으로 잠잠해질 때까지 무기한으로 활동을 쉬고 있으니 휴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가다 잡힌 인터뷰 때문에 나가야 할 때가 있었고, 곡 작업 때문에 작곡가를 만나러 가야 할 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안즈를 혼자 두고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나중을 생각하면 들어온 일을 이런 이유로 거절할 수도 없었고, 안즈도 그걸 알았기에 집에 있겠다는 레이를 설득해서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그거 혼자 먹기 싫어서 그런 거 아냐?'

가까운 동료 중에서 결혼을 한 건 같이 곡 작업을 하는 작곡가 뿐이라서 신세한탄하듯이 안즈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그녀는 레이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일 때문에 바쁠 때를 제외하면 계속 같이 밥 먹었다며. 하루 종일 붙어서 밥 좀 잘 챙겨 먹으라고 잔소리하고 먹여주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혼자서 밥이 넘어가겠어? 임신까지 했으니까 더 할 걸. 나도 첫째 가졌을 때 남편이 나랑 같이 밥 안 먹는다고 화나서 밥상 엎은 적 있거든. 안즈가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해서 레이는 누가 자기 머리를 세게 때리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솔직하게 이유를 말하기엔 부끄럽고, 그렇다고 가지말라고 붙잡기엔 철 없어 보일테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직접 말은 못하니까 그렇게 행동으로 시위하는 거겠지.'
'……'
'그러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 운 좋게 입덧도 안 한다며. 이 시기에 잘 먹어야 하는 거 알지? 그리고 곡은 다시 써 와.'

보고 있던 악보를 레이에게 건네준 그녀는 얼른 가라며 얼굴도 보지 않고 손만 흔들었고, 레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한 뒤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좋아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늘 자기 일보다는 아이돌인 사쿠마 레이를 우선시해서 도리어 레이를 서운하게 만들었던 안즈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안즈가 좋아하는 파이며 케이크같은 것들을 잔뜩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레이는 그날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레이의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안즈를 보면서 작업실에 들었던 그 말이 정답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레이가 알게 됐다고 해서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안즈는 자신이 꽁꽁 숨겨왔던 것을 레이가 눈치 채자 엄청나게 부끄러워 했지만 레이는 지금의 안즈가 더 좋다고 말했다. 저는 싫단 말이에요. 프로듀서 실격이잖아요. 아가씨는 이 몸의 프로듀서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레이 씨는 저한테 아이돌인걸요. 그렇게 생각해주는 건 기쁘지만 이 몸은 아가씨가 자기자신을 위해서 행동해주었으면 좋겠구먼. 적어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말이야. 대화는 거기서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레이와 안즈는 서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물론, 안즈는 여전히 그런 감정이 싫다고 부정하고 있지만 레이는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먹는 건 뭐 어쩔 수 없지. 자신이 없어서 먹기 싫다는 데 억지로 먹일 수는 없으니까. 임산부가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레이는 그냥 별 말 없이 조용히 지켜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레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는 사람 깨워서 억지로 밥 먹이는 거 언제쯤 그만 둘 거예요…"
"흐음… 이게 싫으면 아가씨가 혼자서도 잘 챙겨 먹으면 되는 일 아닌가?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고."
"…다 알면서 그렇게 물어보는 거죠, 레이 씨."

진짜 성격 나쁘다니까… 안즈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침대에 앉아 레이가 가져온 걸 먹으면서 그렇게 투덜거렸다. 물론 사쿠마 레이는 그 말을 듣고도 부정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성격이 나쁜 건 맞았으니까. 레이는 나갔다가 올 때마다 시간에 상관 없이 안즈를 깨워서 침대 위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식사를 했다. 처음에는 자는 사람 깨워서 이게 무슨 짓이냐며 뭐라하던 안즈도 나중에는 이게 익숙해졌는지 별 말 하지 않고 얌전히 주는 것을 받아먹었다. 그러면서도 기다리고 있다는 걸 티내기는 싫었는지 늘 입으로는 언제 그만둘거냐며 투덜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서운해 할 행동이었지만 안즈의 숨겨진 속마음을 알고 있는 레이에게는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가야, 너는 아빠 얼굴만 닮아야 해, 성격은 닮으면 안되는 거야. 알겠지? 배를 만지며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는 안즈 때문에 레이도 오늘도, 즐겁게 큰소리로 웃을 수 있었다.

이왕이면 얼굴도 안즈를 닮았으면 좋겠구먼.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입 안으로 삼키며, 레이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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