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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후궁견환전au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후궁견환전au

박로제 2018. 5. 19. 23:45


*드라마 후궁견환전 au이므로 비슷한 상황과 대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캐붕 주의해주세요.




자신이 어제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말을 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평소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들뜬 건 맞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여인들을 모아놓고 연모하는 이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아마 안즈와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자신만은 그래서는 안됐다. 자신이 살고있는 곳은 황궁이었고, 자신은 황제의 후궁이었으며, 안즈가 좋아하는 사람이 황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어제 안즈의 절절한 고백을 들은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의 동생이었고, 그걸 뒤늦게 깨달은 안즈는 다른 곳도 아닌 어화원에서 비명을 지르는 추태를 저지르고 말았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냥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만 해도 됐을 것을, 그때의 일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만 하면 됐을 것을! 그러나 후회해봤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내뱉은 말을 없던 걸로 할 수는 없었다. 내일도 분명히 오실텐데, 그 분 얼굴을 어떻게 봐야하는 거지. 그냥 가지않는 게 나으려나. 반드시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계속 만나고 있지만 딱히 약속을 하고 그분과 만나는 것도 아니기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내일은 어화원에 가지 않고 궁에 머무르는 게 나은 것 같았다.

그런 안즈의 마음을 하늘이 알아주기라도 한 건지, 밤동안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아침이 되니 산책은 커녕 우산을 쓰고 나가도 흠뻑 젖을 정도로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어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시녀들은 잘됐다면서 오늘은 궁에 있으라고 말했지만 안즈는 어제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이 신경쓰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좀 불편하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이야기한 건데 그렇게 부담이셨던 걸까. 아니, 당연히 부담이셨겠지. 이도저도 못하고 어제의 자신을 책망하던 안즈는 결심했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화병의 물을 갈고 있던 시녀를 불렀다. 나가야겠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요? 만나서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 시녀들은 제 주인을 말리고 싶었지만 저런 얼굴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는 그 누가 와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숨을 쉬면서도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렸지만,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그 어화원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소주. 이만 돌아갑시다. 이렇게 계속 있으시다가 풍한이라도 걸리면 어떡합니까. 멍하니 점점 시들어 가기 시작하는 자양화를 보고 있던 안즈는 우산을 들고 있던 시녀가 그렇게 말하자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이상하지. 자신이 연모하고 있는 이는 황제 폐하 뿐이고, 왕야는 알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은, 그저 같은 꽃을 좋아하고 비슷한 점이 많은 친우와도 같은 분일뿐인데. 게다가 날씨가 이리도 궂은데 굳이 시간을 내서 자신을 만나러 이곳까지 와줄 이유도 없는게 당연한 일인데도, 왜 이리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안 상재가 풍한에 걸렸다고?"

몇날며칠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안즈를 만나서 사실을 전부 이야기하자는 거였고, 때마침 경사방에서 패를 뒤집으라 올리기에 안즈의 이름이 적힌 패를 뒤집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그거였다. 안 상재는 풍한에 걸려 누워있다고 하니 오늘은 다른 패를 뒤집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신이 어화원에 가지 않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밀려오는 걱정에 이렇게 또 만나는 것이 미뤄지나 싶어서 한숨을 쉬다가 문득 며칠 전 밤낮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궁에만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궂은 날씨에 일부러 나가지 않은 것도 있지만 레이는 그녀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어서 그날 어화원으로 가지 않았고, 비가 이렇게 오니 안즈도 굳이 자신을 만나러 그곳으로 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애초에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본인도 그런 말을 하고 난 다음이니 부끄러워서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나가지 않았던 건데.

"안 상재를 만나러 가겠다."
"하오나 폐하. 그러다가 풍한이 옮기라도 한다면…"
"나에게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하게 할 셈이냐?"

목소리에 담긴 분노를 읽은 태감은 입을 다물었고, 그럼 안 상재에게 그것을 알리겠다는 말만 남긴 뒤 빠른 걸음으로 궁을 나갔다. 폐하. 그 모습을 평온한 얼굴로 조용히 보고만 있던 황후가 입을 열었다. 내의원에도 사람을 보낼까요? 그리하라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을 저으니 그럴줄 알았다는 듯,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옆에 서있던 시녀를 불렀다. 폐하께서 가시기 전에 먼저 어의가 진찰을 해보는 게 좋겠지.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알아 들었는지 시녀는 인사를 올린 뒤 궁을 나갔고, 황후는 연거푸 한숨을 쉬며 괴로워하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이게 전부 폐하께서 순친왕의 이름을 빌려 안 상재를 만났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닙니까."
"그 이야기는 어제부터 질리게 들었으니 그만하게나…"
"내일 태후께 문후를 드리면서 어제 폐하께 들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아주 좋아하시겠군요."

황후에게만은 이걸 말해서는 안되었는데. 마음이 급하여 어젯밤에 황후를 불러서 그녀와 있었던 일들을 전부 이야기한 건 자신의 잘못이었고, 이걸 빌미로 얼마나 놀림을 당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고마웠지만 이럴줄 알았다면 그냥 혼자서 고민할 것을.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해서 무엇하는가. 레이는 이번 일이 리츠의 귀에만 들어가지를 않길 바랐고, 황후는 그 약속만은 꼭 지키겠다며 웃었다.

***

부르지도 않았던 내의원의 어의가 오길래 이상하다 생각하여 무슨 일로 왔냐 물었더니 황제께서 보내셔서 왔다며 약을 건네주기에 시녀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폐하께서 말인가? 그래. 그러니 얼른 이 약부터 달여오게나. 전혀 예상도 못한 상황에 놀라서 약을 막내 시녀에게 떠넘기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려던 자신을 붙잡은 게 경사방의 태감이라 시녀는 또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폐하께서 오신다고 하니 일단 준비는 하고 있게나. 우리 소주는 풍한에 걸려 폐하를 모실 수 없는데 무슨 준비를 하란 말입니까? 낸들 알겠는가. 그리 말씀드렸는데도 안 상재를 봐야겠다고 하시니… 전할 말은 모두 전했으니 이만 가보겠다며 경사방의 태감은 궁을 나갔고, 시녀는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황제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홍복을…"
"인사는 됐으니 일어나라."

그 말이 진짜였다니. 시녀는 제 주인을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모시고 있었지만 그녀가 황제의 총애를 받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상냥하신 분이고 아랫 것들한테도 잘 해주시는 좋은 분이지만 이 후궁에서 살아 남기에는 아직 어렸고, 똑똑하기는 해도 대단한 가문의 여식도 아니었기에 한두 번 정도는 불려가겠지만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황제가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제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직접 궁으로 오시다니. 믿을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제 주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외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안 상재의 상태는 어떠한가?"
"첫 날에 왔을 때보다는 열도 많이 내리셨고, 이제 기침도 하지 않으시니 곧 나으실겁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어의가 물러가고, 때마침 막내 시녀가 달인 약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이리다오. 약을 보자마자 황제는 제게 그 약을 든 쟁반을 달라 말했고, 어린 시녀는 벌벌 떨면서 그 쟁반을 황제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안 상재의 옆에 있을테니 나가도 좋다. 부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들어와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이제 막 일어난 제 주인이 걱정되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황명을 거스를 수 없었기에 시녀는 나갈 수밖에 없었다.


"…왕야?"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던 안즈는 절대로 여기 있어서는 안되는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얼굴로 레이를 바라보았다. 왕야. 아파서 제 몸 하나 가누지도 못하는 이가 힘겹게 침상에서 일어나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여기에는 왜 온 것이냐며 그에게 화를 냈다. 이렇게 생각이 없으신 분이셨습니까. 이 시각에 후궁의 궁으로 오시다니, 대체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오신겁니까. 자신을 황제의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아직까지도 제 거짓말을 믿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 순진한 그녀를 보고 있으니 재밌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하여서 레이는 지금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말을 하는 구나."
"지금 여기서 제일 이상한 사람은 신첩이 아니라 왕야입니다."

이제 막 정신을 차려서 안색도 파리한 것이 그런 주제에 잘도 말하는 구나 싶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설사 자신이 황제가 아니고 정말 동생인 리츠였다고 해도 안즈의 방금 말은 무례한 것이였지만 레이는 자신이 잘못한 게 있으니까 이정도는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정체를 말해주어야 겠지. 그녀의 몸상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다면 일단은 얌전히 재운 뒤 다음날 말해줄 생각이었지만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진실을 말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아비가 부인을 만나러 오는 게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무슨…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왕야."
"내가 이런 농담을 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아니, 애초에. 그리 사모하고 있다면서 다른 이도 아닌 황제의 동생에게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자세히도 제 마음을 말했으면서 제 지아비의 얼굴과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 물론 간택 이후로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이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심 그것이 서운하였기에 레이는 그리 말했고, 안즈는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멍한 얼굴로 레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안즈를 위해서 레이는 다시 한 번 더 말해주었다. 안 상재는 내 손으로 직접 고른 후궁이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만나러 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 말이 결정타였는지 안즈는 안그래도 핏기가 없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리더니 말도 안된다며 작게 비명을 내질렀다. 이러다 다시 쓰러질라. 그것이 걱정되어 다시 누워도 좋다 명하니 감히 어떻게 폐하 앞에서 그럴 수 있냐며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 나기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황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억지로 다시 침상 위에 눕혔다. 어떤 것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구나. 레이는 헛기침을 하며 그 말을 시작으로, 천천히 안즈가 모르고 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내 말투와 행동을 보고는 바로 이상함을 눈치 채고 순친왕이 확실하냐고 물어보았었지. 그때 이대로 정체를 들키는 건가 싶어서 조마조마 했는데 어수룩한 변명에도 더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 주어서 얼마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아느냐? 그렇지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던 너를 속인 게 되었으니…많이 늦었지만 사과하마. 사과는 괜찮으니 왜 굳이 허언을 말했는지 알려달라고? 나는 그때의 만남이 끝이라고 생각했고, 더 만날 일도 없는 이에게 굳이 정체를 알려 줄 필요성을 못느꼈지. 이만하면 설명이 되겠느냐.

나와 다시 만날 생각이 없었구나. 내가, 계속 그 꽃을 보러가지 않았다면 이런 만남이 이어지지 않았겠구나. 레이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고, 안즈는 지금 매일 같은 시간에 궁을 나서 어화원으로 산책을 간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고, 이런 우연을 만들어준 이에게 감사하다며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했는데, 더는 만날 생각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내 몸은 어화원으로 가고 있더구나. 참으로 이상하지 않으냐.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꽃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뿐인데도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나오다니. 어디 그뿐이냐. 별 것 아닌 대화와 가벼운 농담에도 편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는 너를 붙잡고 조금만 더 있다 가라 말하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래서 이런 만남을 이어가봤자 너에게도 좋을 것이 없으니 이제 가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자양화가 지기 전까지만, 그 꽃이 지면 너도 이 어화원에 더는 오지 않을테니 그때까지만 너를 만나러 이곳에 오자. 그정도는 괜찮을 테니까, …말하자니 꼴이 매우 우습지만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는 것만 알아다오.

이것이 꿈이면 어쩌지. 안즈는 거기까지 들으니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게 꿈일까 두려웠다. 어화원에서 이 사람을 만난 것도 전부 외사랑을 하고 있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신이 보여주는 형편좋은 꿈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것을 눈치챈 레이는 손톱으로 인해 손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안즈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때만 해도 너를 이렇게 만나러 와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편안한 것과 연모의 감정은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것이고, 착각해서도 아니되는 것이며, 내 감정은 연모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 그런데… 그때는 잘도 말해놓고 이제와서 부끄러워 하는 게 우습구나. 그래. 네가 그리도 환하게 웃으면서 절절하게 고백을 하는데, 대체 어떤 이가 멀쩡히 그것을 듣고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하늘 위에 떠있는 태양보다도 밝게 빛나며 차분하게 네가 이야기하는 외사랑의 상대는 분명히 나인데, 의심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네 감정은 모두 나에 대한 것인데도 이야기 속의 남자가, 네가 연모하고 있다고 말하는 남자를 질투할 정도였지.

자신의 들뜬 고백이, 제대로 숨기지 못해서 타인에게 철없이 내보이고만 제 마음에 대한 보답이 이런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기에, 안즈는 지금 할 수만 있다면 어린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질투. 질투를 하셨다구요. 대체 왜 질투를 하셨나요? 그리 묻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안즈는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그게 신경 쓰여서 그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나를 만나러 어화원까지 와주었지. 그때 나가지 못해서, 너를 그 빗속에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사실은 바로 만나고 싶었다만…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기에 너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단다.

그 말은,

그러니 오늘 이렇게 너를 만나러 온 것은 확실하게 결정을 지었다는 뜻이지.

그 말을 들은 안즈는 잡고 있던 손을 놓으려 했다. 그의 마음을 듣고 싶었으나 듣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꿈꿔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안즈는 그것이 항상 꿈이기를 바랐다. 황제는 모든 후궁을 공평하게 아끼신다. 하지만 안즈는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고, 모두와 똑같은 사람이고 싶지가 않았다. 바라서도 안되는 일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으나 이 후궁에서 그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저 혼자만의 외사랑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차라리 보답 받지 않는 것이 나았다. 이 관계에서 설마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하게 되면 실망하는 사람은 자신이니까, 힘든 사람은 저뿐이니까 그 마음을 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레이에게는 정체를 숨기고 자신을 만난 것에 대해서 괜찮다 말했지만 지금은 괜찮지가 않았다. 왜 정체를 숨기고 저를 만나셨어요. 왜, 왜. 왜 제가 저 깊숙히 숨겨두었던 마음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셨어요. 온전히 그의 책임도 아니었고, 숨기지 못한 자신의 탓도 있었지만 안즈는 지금 모든 걸 레이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말하지마세요. 아니, 말해주세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 저에 대해서 잊어주세요.

"참으로 생각이 많구나."

듣지 않아도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레이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레이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은 그녀가 좋았다. 그 웃는 얼굴이 좋았고, 어떻게든 제 옆에 두고 웃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이 그런 사람을 만든다면 조용하던 후궁이 다시 시끄러워질테고, 그러면 필시 안즈가 위험해질 게 뻔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은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상처 받은 그녀를 모른 척 해야할 때도 있을 것이고, 위험에서 그녀를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그리 좋으시면, 놓치고 싶지 않으시면 그녀를 대할 때만이라도 자신의 지위를 잊고 행동하시는 것도 신첩은 나쁘지 않다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저의 오랜 친우이자 상담가인 황후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내 위치를 잊을 수 없지 않나. 그렇지만 폐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궁은 나중의 일입니다. 지금은 오로지 본인의 감정만 신경쓰도록 하세요. 터무니 없는 조언이었지만 그것만큼 제게 맞는 조언은 없었다. 그래서 레이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제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기로 결정하였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있느냐? 폐하께서는 생각을 하실 필요가 없지만 신첩은 해야만 합니다. 내가 그 고백을 듣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그래도 저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리 당당하게 마음을 고백하더니. 그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하오나 폐하, 신첩은ー

"안즈."

그 이름이 불리자, 안즈는 말하던 것을 멈추고 레이를 바라보았다.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아주 잘 알고 있지. 나는 어떤 상황에서 너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고, 네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거다. 너 하나만을 특별하게 생각할 수도 없겠지. 아시면서, 알고 계시면서! 하지만 어쩌겠느냐. 그래도 내 옆에 두고 싶은 것을. 결국은 울음을 터뜨린 안즈를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쉰 레이는 그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이어갔다. 욕심인 것을 안다. 그렇지만… 네가 내 옆에서만 웃었으면 좋겠구나. 그때처럼, 나를 보면서 한 번만이라도 웃어주길 바라니까, 이번 한 번만 네가 나에게 져다오. 응? 안즈야. 받아주어서는 안됐지만 안타깝게도 상냥하지만 간절히 원하는, 열망이 담긴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레이를 안즈가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너무하십니다."

그러면 신첩이 어떻게 거절을 합니까. 뭐 하나 확실하게 그렇다, 아니다. 이런 식의 답을 해준 것도 아니었고, 안즈가 가진 불안은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레이가 대답을 회피하지 않았고, 결코 지켜지지 않을, 괜히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고 지켜지지 않으면 실망을 하게 만드는 그런 허울뿐인 약속을 하지 않았다. 안즈는 '지금의 관계'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외사랑이 드디어 보답을 받는다는, 오랜 시간 동안 깊이 간직하고 있던 소중하디 소중한 첫사랑이 드디어 이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안즈는 그런 불안과 두려움따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레이는 안즈를 옆에 두고 싶다 하였고, 안즈는 그에 대한 답으로 언제까지고 옆에 있겠다 약속했다. 연모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안즈는 레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숨김없이 전달하였다. 그 고백을 말하면서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레이가 반했던 그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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