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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Love Affair 中 2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Love Affair 中 2

박로제 2018. 6. 16. 13:28




관계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서 크게 바뀌는 건 없었다. 회식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해버린 덕분에 이렇게 숨겨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고 거기다가 어차피 모두 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가 됐는지 알고 있어서 별 소용이 없다는 걸 레이는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이가 바뀌었다는 걸 회사 사람들에게는 죽어도 비밀로 하고 싶어 하는 안즈 때문에 회사에서는 사귄다는 티조차 낼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바깥에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해본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퇴근 후에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간다거나 영화를 보러가는 일도 몇 번 있었지만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서 바깥으로 데이트를 간 적은 없었다. 안즈는 혹시라도 회사 사람을 만날까 걱정해서 바깥 데이트를 꺼려했고, 레이는 웬만하면 주말에 굳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했다. 그런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하여 데이트는 대부분 레이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레이는 그런 게 딱히 불만인 건 아니었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했으니까.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관계를 고치고 싶지도 않았고, 이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확신을 갖고 시작한 만남도 아니었고, 이렇게 마주 앉아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런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천천히 애정을 쌓아가는 이 관계가 레이는 싫지 않았다.

확신을 갖지 못하고 시작한 만남이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레이는 자신이 생각보다 더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즈를 좋아하냐고, 그녀와 어떤 사이가 되고 싶은 거냐고 물어본다면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확실하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었다. 정착한다면 이 사람 옆이었으면 좋겠다. 안즈는 레이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고, 사쿠마 레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이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텐데. 연애는 귀찮았고, 결혼은 자신과는 먼 이야기였다.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고 해도 결혼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다 보니 그간 연애를 하면서도 길게 가지 못하고 번번이 차이기만 했고, 먼저 사랑을 고백해왔던 사람들은 모두 지친 얼굴로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며 레이를 떠났다. 보답 받지도 못하는데 무슨 이유로 당신을 계속 만나.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억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과거의 연애가 이랬기 때문에 레이는 안즈가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으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 혹시라도 실수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사실은 어색해서, 이름으로 부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름은 무리고성은 안 될까요?’

안즈가, 자신에게 선을 그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에 대한 벌이라도 받는 건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가 밀려와서 죽을 맛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자주 부르는 건 직함인 팀장님. 그도 아니면 사쿠마 씨. 연애 초기야 이해할 수 있지만 벌써 이런 관계가 된지도 두 계절이 지났다.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도 아니고, 분명히 눈에 보일 정도로 관계가 진전됐는데 아직까지도 이름으로 부르지를 못한다니. 서럽다면 서러운 일인데, 난처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미안하다 사과하는 안즈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서 레이는 아직까지도 그녀에게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불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안타깝게도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안즈는 유난히도 이 관계를 누군가에게 들키는 걸 무서워했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내연애였으니까, 헤어졌을 때 소문이라도 잘못나면 피해를 보는 건 빌어먹게도 자신이 아니라 안즈였기 때문에 레이는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 팀 내에서는 안즈에게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소문이라는 건 본인이 원하는 지 않는 곳까지 퍼져나가니까, 안즈의 그런 걱정도 자신이 이해하고 배려해줘야 하는 게 맞았다. 아마 그녀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다면, 레이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해왔을 것이다.

오래 갈 거라고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처음에 그랬던 건 사실 팀장님이랑 이렇게 오랫동안 만날 거라는 예상을 못해서 그랬던 거예요.’

, 팀장님이 싫어서가 아니라그렇잖아요. 시작이 그랬으니까, 서로의 마음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거기서 끝인 거잖아요.’

거기다가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팀장님이니까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너는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지금까지 나한테 그렇게 선을 긋고 밀어냈던 거냐고.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역시나 이번에도 레이는 그녀에게 그 어떤 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정말로 안즈가 그런 말을 한다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워서 레이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안즈는 레이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었고, 그런 사람이 저와 만나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듣게 된다면 아마 그 누구라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게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우습다고 손가락질 할 일이다. 그 사쿠마 레이가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한다고? 상대가 그런 기색을 내비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치는 사람이 자신이었다. 시작부터 그런 끝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랑 계속 만나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뭐가 달라. 그렇게 말하면서 당연히 내쳤을 게 분명한데안즈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언제 헤어질지 몰라서 벌써부터 선을 긋고 있는 그녀에게 매달려서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설득하는 거였다. 진짜 많이 변했네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봐온 친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놀라운 변화라며 즐거워했고, 친구가 드디어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음을 축하했다. 이참에 당신과 만났던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느껴보는 건 어떤가요?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친구의 얼굴을 한 대만 때리고 싶었지만 정말로 이렇게 되니 지나간 연인들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이 생겨서, 얌전히 그 비꼼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 그렇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이보게, 히비키 군.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자네에게 고민을 털어놓겠는가?’

어라. 당신에게 가장 쉬운 일이 타인을 설득하는 일 아니었나요?’

……

어라라?’

대답 없이 시선만 피하는 레이를 보면서 그 친구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놀라운 일이군요. 당신이 그런 일을 실패하다니. 하긴,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지요. 꽤나 고생하겠네요, 레이. 친구는 그 말을 끝으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레이는 이제 이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아주 절실하게 느꼈다.

사실 시간을 두고 안즈가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녀가 생각을 바꿔서 자신의 옆에 있어주면 좋겠으니까.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선을 긋고 도망가던 안즈가 정말로 제게서 멀어진다면? 먼저 다가오지도 않고, 그 선에 서서 레이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거부하고 있는 그녀가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선 밖으로 가버린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레이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냐고 누군가가 자신을 비웃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레이는 겁을 내고 있었다. 이것은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느끼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기도 했다. 이런 감정소모가 싫어서 지금까지 그런 연애를 해왔고, 나중에는 그런 연애도 지쳐서 마구잡이로 사람을 만나왔던 건데. 뭐 어쩔 수 있나. 그냥 모른 척 넘길 수 있었던 안즈와의 관계에서 도망가지 않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며 거짓말을 하던 그녀에게 결국에는 좋아하는 것 같다는 고백을 받아내고 이런 사이가 된 것도 전부 자신의 선택이었고, 자신의 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탓하겠어. 누구를 탓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안즈를 놓고 싶지도 않은 레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그 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 그것뿐이었다.

***

회의가 끝나고 나가려던 자신을 붙잡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기에 따로 시킬 일이라도 있나 싶어서 안즈는 들고 있던 서류를 회의실 책상 위에 내려놓고 다른 사람이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셔츠 소매 걷었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와 걷은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 그리고 커다란 손. 그것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회의실 문을 닫고 잠근 레이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자 왜 사람을 강아지 부르는 것 마냥 부르냐고 투덜거리면서도 그쪽으로 걸어갔다.

따로 시키실 일이 있던 거 아니었어요?”

? 그런 건 없네만?”

정말자꾸 이러면 다른 분들이 의심 한다고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 . 이리 와보게나.”

아무도 그런 의심은 하지 않으니 그런 걱정하지 말고 와보라며 팔을 벌리는 레이를 이길 수 없었던 안즈는 못이기는 척 다가가서 그 품에 안겼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이정도의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누.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렇게 말하며 쪽쪽, 민망한 소리를 내며 뽀뽀를 하는 레이에게 여기는 회사라고 밀어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이러다가 누군가가 회의실 문이라도 벌컥 열고 들어오면 큰일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안아주는 품이 따뜻해서, 익숙한 향기가 너무 좋아서, 안즈는 여기가 회사라는 것을 잠시 잊고 레이에게 좀 더 안기는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먼.”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근무시간이기는 하지만, 보는 눈도 없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흐음그럼 이것도 괜찮은가?”

?”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살짝 겁이 나서 조금 밀어냈더니 레이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안즈가 도망가지 못하게 몸을 돌려 회의실 문에 등을 기대게 하고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팀장님! 근무시간에 파렴치하게 무슨 짓이냐며 안고 있던 팔을 풀어 등을 때렸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은 레이가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넣었고, 여기서 더 밀어내봤자 소용없음을 오랜 경험으로 깨달은 안즈는 말리는 걸 포기하고 그냥 이걸 받아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뭐, 싫은 건 아니었으니까. 다정한 키스도 좋았고, 깍지를 껴주는 손도 좋았으며, 키스가 끝났을 때 항상 부드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레이의 얼굴도 좋았기 때문에 안즈는 이번에도 이길 수 없는 척 레이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물론 장소를 망각하고 스커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거나 하면 잽싸게 쳐내서 더는 그러지 못하게 했지만, 키스 자체는 좋으면 좋았지 싫지는 않았다. 다만 장소가 회의실이고 근무시간이었던 게 문제였을 뿐이지.

팀장님- 물어볼 게 있는데 회의실 정리 아직 안 끝나셨어요?”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깬 건,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와 아직 안 끝났냐는 다른 직원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란 안즈는 다급하게 레이를 밀어냈고, 좋은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얼굴로 인상을 쓴 레이는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고르는 안즈와 달리 멀쩡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직 정리가 덜 끝났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내뱉었다. 진짜 내가 못살아. 그 직원은 알았다며 자리를 떴고, 레이는 인상을 풀고 웃는 얼굴로 안즈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던 거, 마저 할까? 됐거든요! 정리는 팀장님이 하고 나오세요! 새빨개진 얼굴을 어떻게든 진정 시키며 안즈는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다른 사람들도 회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얼굴로 안즈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그 시선들을 모두 무시하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역시 회의실에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자신이 한심했지만 아마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때도 자신은 레이를 밀어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레이는 안즈가 너무 매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이것도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그때는 일 때문에 레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부르지 말라고 할 정도로 주위 시선을 신경 쓰던 때였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레이와 자신의 관계를 눈치챌까봐 무서워서 출근조차 하기 싫을 정도였다. 내가 역시 이 고백을 받아줘서는 안됐던 거 아닐까. 할 필요도 없는 그런 걱정을 하며 괴로워했지만 지금의 안즈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서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여전히 이 관계를 회사 사람들이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라도 잘못 소문이 나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때와 달리 레이를 조금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불안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맘껏 즐기지도 못하고 후회하느니 레이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어떤 감정인지 제대로 확신도 못하고 시작한 연애였기에, 안즈는 연애 초기부터 이 사람이 자신을 떠나도 상처 받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선을 긋고 레이가 제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더 깊게 관여하지 못하도록 벽을 쌓았다. 오래 못갈 테니까. 이렇게 시작한 관계가 길게 이어질 리가 없잖아. 얼마 못가서 깨지고 말 거야. 그래서 안즈는 레이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극도로 꺼리기 시작했다. 금방 끝나버릴 텐데 헤어졌다가 괜히 팀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왜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겁을 먹고 도망가는 거냐고 그녀를 비난하겠지만 안즈에게 있어서 이건 당연한 방어였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고, 분하게도 안즈는 그때의 일을 잊지도 못했고, 그때 레이에게 가졌던 감정을 버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즈가 이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나와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을 테고, 오직 나만 그때의 일을 안고 살아갔을 거 아냐.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았지만 안즈는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레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로 선을 넘는 행위였고, 자신이 이 남자를 이름으로 부른다면 이렇게 선을 긋고 도망가는 것도, 벽을 쌓아서 그를 밀어내는 것도 전부다 소용없어지는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다.

안즈.’

확실히 이렇게 이름만 떼서 부르니까 조금 낯간지럽긴 하구먼.’

안즈. . 좋은 이름이야. 이미지와도 잘 맞는 이름이고.’

부끄러우니까 자꾸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그게 무슨 소린가. 앞으로는 여기에도 익숙해져야지. 둘만 있을 때는 계속 이름으로 부를 건데, 언제까지고 그렇게 부끄러워 할 수는 없지 않은고.’

자신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분위기를 깨면서까지 팀장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이건 당연하지만) 저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레이 때문에, 안즈는 이대로 심장이 빨리 뛰어서 터져버리는 게 아닐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회사에서는 안즈 씨. 우리 막내. 둘만 있을 때는 안즈. 내 사랑스러운 안즈.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짓는 표정이, 아무리 둔한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것이었기에 안즈는 레이가 자신을 그렇게 불러줄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더 겁을 내고 선 안으로 도망쳤다.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어차피 까먹을 테니까, 이름 따위 얼마든지 말해줘도 괜찮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내 이름을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왜 그렇게 상냥하게 내 이름을 불러줘요? 원망을 담아서 그렇게 따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이제 그만 과거의 일은 이대로 묻어두는 게 좋겠다고 다짐했었기에, 안즈는 필사적으로 그때의 일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제는 잊어버려야 할 과거였고, 분하지만 레이 또한 기억을 못하고 있는 과거니 더는 구질구질하게 그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묻어버리는 게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자. 안즈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과거에 만났던 사쿠마 레이가 아니고 현재의 사쿠마 레이였으니까, 두 사람은 그 하룻밤만을 위해서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 레이는 안즈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자신이 굳이 만나러 가서 그를 찾지 않아도 레이가 먼저 안즈를 발견하고 다가와 주었다. 그래서 안즈는 조금씩 그어놓은 선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고, 레이가 오지 못하도록 높게 쌓아두었던 벽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 바로 바뀌는 건 어렵겠지만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되겠지.

이번 주에는 밖으로 데이트 가자고 할까.

연인이 된지는 제법 오래 되었지만 밖으로 나가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적은 몇 번 없었다. 같이 퇴근해서 밥을 먹으러 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건 연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말 밤에 드라이브 간 적도 있었지. 별을 보러가자며 늦은 밤에 전화해서 나오라 하기에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아냐며 따지려다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그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레이와 함께 별을 보러갔었다. 처음에는 이 추운 날에 왜 별을 보러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거냐는 생각이 들어서 불퉁한 얼굴로 투덜거렸지만 막상 밤하늘을 보고 있으니 그런 투정을 부린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맘에 들은 것 같아 다행이구먼.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신을 보면서 레이는 그렇게 말했었고, 제게 장갑을 준다고 차게 식어버린 손을 잡으며 안즈는 심술을 부려서 미안하다고 레이에게 사과했었다.

안 추워요 팀장님?’

이런 곳으로 올 줄 몰라서 얇게 입고 온 안즈 때문에 코트며 장갑, 목도리까지 다 건네준 레이가 너무나도 추워 보여서 괜찮다고 코트를 돌려주었더니 자신은 추위를 타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은 괜한 허세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즈는 코트를 레이에게 돌려주었고, 그는 난처한 얼굴로 웃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그럼 이러자며 받은 코트를 다시 입고는 두 팔을 벌렸다.

이러면 되겠지?’

정말 이러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안아주는 그 품이 따뜻해서, 안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레이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바람은 차갑고, 사실은 그렇게 안고 있어봤자 금방 체온이 식어버려서 별 소용은 없었지만, 그래도 안즈는 한참동안 그렇게 레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안즈가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내가 지나치게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했고,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많이 했던 거 아닐까. 내가 이 사람을 너무 믿지 못했던 걸까? 과거에 얽매여서 지금의 그 사람이 어떤지, 레이가 어떤 마음으로 저를 보고 있는지, 선을 긋고 도망가는 자신을 기다려주며 겁먹지 않게 다가와주는 사쿠마 레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도망갔던 건 바로 자신이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안즈는 지금도 늦었지만, 이대로 꾸물대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선을 긋던 걸 멈추었다. 지금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매 순간이 이렇게 행복하고 기쁜데, 나는 너무 과거에 매달리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반성하고 자책하니 과거의 모습만 보고 레이를 평가하고 밀어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물론 레이와 자신이 이런 사이가 된 것도 과거의 그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 자신에게 있어서 과거의 일이 가지는 의미는 그것뿐이었다.

또 별 보러 가자고 할까.

곧 두 사람이 만난 지도 1년이 되어간다. 자신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별을 보러갔던 그날부터였으니까, 안즈는 다시 한 번 그때 보았던 별을 레이와 함께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람을 팀장님이나 사쿠마 씨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주자. 아직까지는 그 사람을 이름으로 부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부끄러웠지만, 사실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때가 생각나서 엄청나게 부끄러웠지만, 안즈는 이제 자신이 먼저 레이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

팀장님, 잠시만요.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요. ?”

안즈는 그렇게 급하게 하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는다고 레이를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지금 마음이 급해서, 당장 저 목덜미를 깨물어서 제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레이에게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가 않았다. 여기 차 안인데. 그렇게도 말해보았지만 레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주차장에 있는 사람은 둘 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직원도 있고, 누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무모한 짓을 할 필요가 있냐고 말을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말들은 다시 부딪혀 오는 입술 안으로 삼켜질뿐이었다.

처음에 안즈가 레이에게 그때 봤던 별을 또 보러가고 싶다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레이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대뜸 뺨을 꼬집어보라고 했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현실이거든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서 그렇게 투덜거렸더니 얼마든지 데려가줄 수 있다며 웃는 얼굴이 다른 때와 다르게 보여서, 안즈는 먼저 말을 꺼내기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반딧불이,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 더운 공기와 그걸 식혀주는 차가운 바람, 벌레가 우는 소리. 그리고 제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이 사람. 안즈는 너무나도 행복해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행복해서, 이 사람과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워서 안즈는 의도치 않게 이제 그만 가자며 제 손을 잡아주는 레이를 이름으로 부르고 말았다.

레이 씨.’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이름인지라 놀라서 안즈도 놀랐고, 레이도 자신이 지금 뭘 들었나 싶어서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그게요, 팀장님.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것이 느껴졌고, 안즈는 말까지 더듬으며 굳이 할 필요 없는 변명을 했으나 전부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레이는 잡고 일는 손을 놓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안즈를 데리고 차로 돌아갔고, 안즈는 새빨개진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레이를 뒤따라갔다. 차에 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키스해왔고, 평소와 다르게 그 행동에서 여유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자 안즈도 긴장하며 그 키스를 받아주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키스한 적은 없었는데. 코로 숨을 쉬는 것마저 잊을 정도로 밀어붙이는 레이 때문에 안즈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전혀 없음에도 천연덕스럽게 스커트 안으로 들어와서 제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손길을 느끼면서 안즈는 드디어 때가 왔구나,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나 지났지만 놀랍게도 매번 키스까지만 할 뿐, 그 이상으로 넘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자러 가면서 정말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들은 이즈미는 말도 안 된다며 이상한 소리를 냈었지만 정말로 레이와는 그 무엇도 없었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나름대로 배려를 해왔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도 제대로 열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그랬다가는 괜히 더 멀어질 수 있으니까, 안즈를 위해서 지금까지 참아왔던 거라고 직접 그에게 듣지는 않았지만 그런 이유일 거라고 안즈도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의 이성이라는 게 생각만큼 대단한 건 또 아니라서 실수를 저지를 뻔 했었지만 어쨌든 레이는 지금까지 참아왔고, 안즈는 관계가 진전되면 아마 그 참고 있던 게 더는 버티지 못하고 풍선처럼 터져버릴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니까, 안즈는 이렇게 빨리 터져버릴 거라고 예측하지 못한 것뿐이지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맞닿아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안즈는 숨을 고르고 있었고, 레이는 입술을 움직여 턱 밑, 목덜미, 쇄골, 그리고 어깨의 순서대로 입을 맞추더니 기어이 잘 보이는 곳에 잇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거기 남겼다가 누가 보면 어떡해요. 걱정 되서 그렇게 말했더니 이정도면 주말 동안 금방 사라질 거라면서 웃는데 어쩐지 그 흔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저기다가 또 보란 듯이 자국을 남길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말았다.

그 말 저언혀 믿음이 안 가거든요. 팀장님이라면 믿겠어요, 그걸?”

믿고 안 믿고는 일단 제쳐두고, 자꾸 그렇게 부를 건가?”

우으정말. 그냥 모른 척 좀 해주면 안 돼요?”

안 돼.”

단호하게 말하며 다시 제 이름을 부르라 요구하는 레이의 시선을 피해서 작은 목소리로 팀장님, 이라고 했더니 기필코 오늘은 그 이름을 듣고 말겠다며 빠른 손길로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나갔다. 정말 여기서 할 거냐고 안즈가 다시 한 번 물어보아도 레이는 막무가내였다. , 정말, 그때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러더니 또 이래! 이제는 그만 떠올리고 싶은 예전의 기억이 또 하나둘씩 떠올라 부끄러운데 그걸 모르는 레이는 절대로 봐주지 않겠다는 얼굴로 뺨에 입을 맞추고 브래지어의 훅을 풀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앞으로 이어질 행위에 대한 기대감이나 긴장보다는 묘한 기분과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모르게 그만 두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이것부터 벗겼었지.’

신고 있던 샌들을 벗기고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서 차 밑에 굴러다니고, 반쯤 벗겨진 블라우스와 그대로 노출된 가슴. 피부에 느껴지는 차가운 입술의 감촉과 깨무는 느낌까지. 이 모든 게 처음이면서도 처음이 아니었기에, 안즈는 그것들을 받아주면서 혼란스러워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다음에는 뭘 했더라. 원피스 안에 손을 넣어서 속옷을 벗겨내고, 그게 발목에 걸려있자 웃으면서 마저 벗겨 그걸 바닥에 집어던졌었다. 레이의 손이 스커트 안으로 들어왔고, 역시나 바로 속옷을 벗겨서 그건 그때와 똑같이 안즈의 오른쪽 발목에 걸려있게 되었다. 익숙한 손길이고, 전부 다 겪어본 적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때, 레이가,

안즈.”

이름을, 불렀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안즈는 더는 참지 못하고 레이를 밀어냈다. 못하겠어요, 레이 씨. 확실하게 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안즈는 그를 이름으로 부르며 거부를 했고, 장난으로 꺼낸 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챈 레이도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안즈를 바라보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자꾸 과거의 레이의 모습이 겹쳐져서 버틸 수가 없었다. 지금의 레이와 그때의 레이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안즈는 오늘 이렇게 그에게 안기게 되면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니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즈가 무서워한다는 걸 알았는지 레이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내 고집대로 밀어붙여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더는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달래주었다.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다정해서, 자신이 직접 풀었던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주는 레이를 보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차고 올라왔지만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 그에게 안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레이를 보면서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지, 안즈도 방법을 알지 못했다.

 

 

역시 너무 빨랐나. 사실 사귄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고작 키스 밖에 못했다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자신을 아는 이가 들으면 죽을 때가 된 게 아니냐며 배를 잡고 웃을 일이었지만 레이는 그런 욕심 때문에 아직 제게 마음을 확실하게 열지 않은 안즈를 안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있고, 안즈도 천천히 그어놓은 선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 관계에 있어서 섹스가 전부인 것도 아니고 굳이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사고를 칠 뻔 하기는 했어도 정말 눈이 돌아간 적은 없었는데, 오늘 안즈가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자마자 여태까지 참아왔던 게 무색할 정도로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두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을 부른다는 건 특별한 의미였고, 그 이름 하나에 자신이 이렇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즈 또한 여기는 차라는 둥, 누가 보면 어떡하느냐는 둥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팔을 두르고 제가 하는 키스를 열정적으로 받아주었기 때문에 오늘이야말로 숨겨왔던, 그리고 참아왔던 걸 모두 터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대로 무리였던 모양이다. 성적인 접촉에 의한 긴장이 아닌 말 그대로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져서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아쉽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고 해도 우선적으로 둬야할 건 안즈의 기분이지 자신의 기분이 아니었기에 레이는 다음을 기약하자며 제가 벗겼던 옷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다시 입혀주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이제 그만 가자며 차에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대화의 주제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긴장하고 무서워했던 이유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혹시 처음이라 그렇게 긴장했던 거냐고 조금 떠볼 생각이었는데, 전혀 예상도 못한 답이 들려왔다.

아뇨, 처음은 아닌데예전에 만났던 사람 때문에 조금 무섭더라구요. 오래 지난 일이만 아직까지 좀 그래서

. 오해하실까봐 말하는데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니었어요. 그냥, 그냥제가 그걸 못 잊어서 그래요.”

사쿠마 레이는 그 말을 듣고도 사고를 내지 않고 끝까지 안전운전으로 집까지 차를 몰고 간 자신을 정말로 칭찬하고 싶었다. 보통 이런 때에 다른 남자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나? 현 애인이랑 그렇고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 졌는데 전에 만났던 남자 때문에 더는 못할 것 같아서 자신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장이라도 차를 세우고 어떤 새끼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헤어졌다고 하니 자신이 간섭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말을 끝으로 안즈는 긴장이 풀려서 졸립다며 그대로 잠 들어버렸고, 레이는 운전을 하면서 쉬지 않고 안즈가 말한 그 남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어떤 놈이길래, 헤어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만큼 좋아했던 건가? 아니면 다른 의미로 엄청나게 최악이어서 그렇게 잊지 못하는 건가? 하지만 당사자가 말을 해주지 않는 이상 이 궁금증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었고, 레이는 안즈에게 그걸 물어볼 용기 따위는 없었다.

 

 

주말 동안 안즈는 레이의 집에 머물렀고, 레이도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대했지만 닿고 싶어서 손을 뻗을 때마다 그때 차안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나, 결국은 그 손을 거두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안즈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며, 웃어주는 일밖에 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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