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하면 안된다는 거, 알고 있지만 네사람은 안즈가 마지막에는 자신을 선택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우리가 독점할 수는 없어. 안즈는 모두의 프로듀서인걸.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완전한 진심은 아니었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건 호쿠토였고, 의외로 마지막까지 반대한 사람은 스바루였다. 안즈가 다른 곳에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면, 우리 옆에 있는 것보다 더 빛날 수 있다면 그곳으로 보내줘야해. 내 욕심때문에 안즈가 더 빛날 수 있는 기회를 뺏어서는 안되는 걸. 항상 웃던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스바루에게, 그누구도 제 의견을 강요하지는 못했다.
그런 네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 안즈는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안즈였다. 나, 트릭스타와 함께 시작하고 싶어. 그래도 괜찮을까? 3학년이 되었을 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혹시라도 안즈가 자신들을 떠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다들 미래에 대한 것들을 두루뭉술하게 넘기려고 할 때 안즈가 먼저 트릭스타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은 네사람이었으니까, 앞으로 걸어나갈 미래도 네사람이랑 함께였으면 좋겠어. 수줍게 웃으면서 말하는 안즈의 모습을 보며 마코토는 더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마오는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걸로 괜찮아? 우리가 함께여도 괜찮은 거야? 어떤 대답을 할지 몰라 긴장한 네사람을 향해 안즈는 웃는 얼굴로 답해주었다.
당연한 거잖아? 네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꿈도 꿔보지 못할 반짝반짝 빛나는 길을 걷고 있는 걸.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리고 아직도 서투른, 이런 나라도 괜찮은 거야?
안즈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네사람은 안즈가 자신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너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혹시라도 자신이 미래에 방해가 될까봐, 그들의 미래에 자신이 없을까봐 겁을 먹고 있었구나. 스바루가 평소와 다름없는 웃는 얼굴로 안즈의 손을 잡았다. 마주잡은 두 손이, 그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안즈는 긴장을 멈출 수 있었다.
우리는 네가 필요해, 안즈. 아니, 안즈가 꿈꾸는 미래에 우리가 함께하게 해줘.
호쿠토의 말에, 안즈는 그제야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누님.
이름이 아니라 그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호칭을 입에 담고 내뱉었을 뿐인데. 그런 사소한 것들 하나에도 설레는게 처음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 한명만을 위한 호칭도 아니었다. 그러나 츠카사는 그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그녀가 떠올랐고, 스오우 츠카사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츠카사군. 안즈가 츠카사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뺨이 복숭아빛으로 물들어서, 예쁘게 웃고 있는 안즈를 보니 츠카사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츠카사는 안즈가 좋았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감정은 점차 발전해서 동경이 되어갔고, 그 동경은 결국 사랑이 되었다. 츠카사는 안즈를 지켜주고 싶었고, 그녀 앞에서는 언제나 멋진 기사이고 싶었다. 동생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즈가 이런 츠카사의 감정을 알게 되면 불편하게 여길까봐, 그래서 저를 어려워할까봐 자주 편한 남동생처럼 굴었고, 귀여운 후배인 척 연기를 했다.
그러나 안즈가 자신을 귀여운 동생으로만 보게 될까봐, 츠카사는 무서웠다. 츠카사는 안즈의 뒤를 따라가는게 아니라 그 옆에 함께 서고 싶었다. 돌봐줘야 할 동생이 아니라, 귀여운 후배가 아닌. 그녀를 지켜줄 수 있고, 힘들어할 때는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그런, 남자가 되고 싶었다. 츠카사는 안즈를 사랑했지만, 안즈와의 관계는 항상 어렵고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츠카사를 알고 있는지, 그의 손을 잡은 안즈는 상냥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누님, 저는.
목이 막혀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울어서도 안되고, 매달려서도 안되는데. 자꾸 이러면 누님은 나를 정말로 동생으로밖에 보지 않을텐데. 그러나 츠카사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안즈는 자신의 소매로 츠카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눈물에 젖은 보라색 눈동자를, 새빨개진 코를, 울상인 얼굴을 보면서 안즈는 난처한 얼굴로 웃으면서도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지 않고 츠카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괜찮아. 다 알고 있으니까.
츠카사군의 무서움도, 두려움도, 걱정도. 그 마음까지도, 모두 알고 있으니까. 전부 다 말해주지 않을래? 응, 모를 수가 없는 걸. 나도,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다정한 안즈의 목소리에, 츠카사는 더는 참지 않고 아이처럼 소리내 울었다.
응, 나도 좋아해.
울어서 뭉개지는 발음이었지만, 안즈는 츠카사가 자신의 귀에 속삭인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러나 너무 멋진, 자신의 기사를 더 힘주어 안으며 안즈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그 말을, 좋아하고 있다는 그 말을 드디어 츠카사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안즈가 자고 있는 모습을, 리츠는 오늘 처음으로 보았다. 리츠가 안즈의 무릎을 베고 잠드는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었고, 자는 시간이 짧은 것도 아니었는데 안즈는 항상 자기 전과 변함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푹 자고 일어난 리츠를 반겨주었다. 리츠군, 잘잤어? 잡고있는 리츠의 손에 안즈가 입을 맞추며 그렇게 물어보는 것이 이제는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리츠는 오늘도 눈을 뜨면,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반겨줄 거라고 생각했다.
안즈. 자는 거야?
만들고 있던 의상을 옆에 내려두고, 안즈는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리츠가 이름을 부르고, 자는 거냐고 물어보아도 안즈는 답이 없었다. 정말 자는 구나. 안즈가 잠들어있는 걸 확인한 리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레슨도, 부활동도 없는 날이었고 일정이 없다는 걸 확인한 리츠는 나이츠의 스튜디오로 안즈를 데려왔다. 안즈는 여기서 일을 하고, 나는 안즈의 무릎을 베고 자는 거야. 괜찮지? 평소와 다름없는 일정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내가 자고 일어나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 그리고 안즈랑 손을 잡고 걸어다니고 싶어. 안즈는 리츠의 말을 듣고 수줍게 웃으며 자신의 무릎에 벌써 누워버린 사랑스러운 연인을 손을 잡았다. 응, 그러자. 나 리츠군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산책도 하고 싶어. 안즈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은 리츠는, 잡고있는 손의 온기를 느끼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니 이번에는 안즈가 자고 있었다. 최근 나이츠의 저지먼트에도 어울려주고, 그것외에도 이 학교의 유일한 프로듀서로써 신경 써야할 일이 많았으니 무리를 했을 거고, 지독한 워커홀릭인 리츠의 연인은 잠을 줄여서까지 일을 했을 것이다. 평소라면 무리하는 안즈에게 화를 냈어야 했지만 자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리츠는 그다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안즈는 이렇게 자는 구나.
불편하게 자고 있는 안즈를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잠자리로 끌고 가서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눕힌 뒤, 리츠는 그 옆에 누워 자고 있는 안즈의 얼굴을 관찰했다. 얌전한 얼굴로 자고 있는 안즈를 보고 있으니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안즈는 신기한 사람이네. 자고 있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이렇게 만드는 구나.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이었지만 리츠는 이 감정들이 싫지 않았다. 안즈가 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고, 어쩔 때는 무서울 정도지만 리츠는 자신이 느끼는 그 모든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어떤 감정이든 리츠가 그것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은 안즈였고, 리츠는 안즈가 주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안즈는 태양이니까, 흡혈귀인 내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걸. 나쁜 건 태양을 사랑해버린 나잖아. 처음 이 마음을 고백했을 때 걱정하던 안즈에게 리츠가 한 말이었다. 태양을 사랑해버렸으니까, 이것은 자신이 모조리 감당해야할 일이었다.
안즈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행복한 얼굴이었고, 뒤척거리면서 내뱉은 말은 리츠의 이름이었다. 꿈에서도 나와 함께 있는 거야? 그 사실이 너무 행복했지만 리츠는 꿈 속의 자신에게도 안즈를 뺏기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안즈.
잠자리로 옮길 때도 일어나지 않고 깊게 잠들어 있던 안즈는, 리츠가 귓가에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자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이렇게 바로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조금 놀란 얼굴로 안즈를 쳐다보던 리츠에게 안즈는 아직 잠에 젖을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더 자고 싶었는데...
응.
리츠군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어.
그랬어?
응. 그래서 깼어. 리츠군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걸.
웃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잡고 말하는 안즈가 리츠는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좋아도 울 수 있다는 걸, 리츠는 안즈를 좋아하게 되면서 배웠다.
안즈와 만나면서 리츠는 많은 걸 배웠고,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짝사랑이었다. 안즈가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리츠는 너무 서러웠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렇게 너만 보고 있는데 왜 이쪽을 보지 않아? 처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슬퍼졌다. 그럼에도 안즈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언제 그랬냐는듯 리츠는 웃었다. 그 푸른 호수를 담고있는 그 눈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잠시뿐이지만 그 작고 푸른 호수를 리츠가 독점할 수 있었고, 그 순간 동안은 리츠가 느꼈던 서러움과 슬픔, 두려움을 묻어버릴 수 있었다.
리츠는 안즈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을 때 차오르는 눈물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흘렸었다. 멋지게 보여야 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나 몸은 리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안즈가 좋아한다고 말을 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눈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즈는 난처한 얼굴로 울정도로 내 고백이 싫었어? 라고 물었고 리츠는 고개를 저었다. 안즈가 싫은 게 아니야. 좋아서, 좋아서 그런거니까... 눈물에 발음이 뭉개지고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안즈는 리츠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안즈의 따스한 손이 차가운 리츠의 손을 잡았다. 잡은 두 손이 정말 따뜻해서, 웃고있는 그 얼굴이 너무 반짝거려서 이대로는 재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리츠는 차라리 재가 되어도 좋으니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길 바랐다. 물론 안즈의 고백은 꿈이 아니었고, 다음 날 자신의 집 앞으로 찾아온 안즈 덕분에 리츠는 집 앞에서 그녀의 품에 안겨 울어버리고 말았다.
리츠는 감정의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잘 울지도 않았다. 선을 그어서 자신이 허락한 사람에게만 친절했고, 그들에게만 진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우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안즈는 달랐다. 리츠는 부끄럽지만 안즈와 함께 할 때면 자꾸 눈물이 나왔다.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하는 일은 슬픈 일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꾸 눈물이 났다. 행복해서 눈물이 나왔고,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게 기뻐서 눈물이 나왔다.
리츠군, 그렇게 내가 좋아?
울보가 되어버린 리츠 때문에 티슈와 손수건이 필수가 되어버린 안즈가 눈물을 닦아주며 그렇게 묻자 리츠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해. 좋아하는데...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설명을 못하겠어. 이 세상의 그 어떤 걸로도 지금 리츠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리츠는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눈앞에 있는 안즈를 끌어안기만 했다. 하지만 리츠의 태양은 대답을 원했는지 말이 없는 그를 재촉했다. 어쩔 수 없네. 작게 한숨을 쉰 리츠는 자신과 반대되는 그 푸른 눈을 바라보며 그나마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대답을 생각해냈다.
있잖아, 안즈. 나는 우는 게 싫어. 빌어먹을 형님때문에 많이 울었거든. 그래서 더는 울기 싫었고, 날 울게 하는 모든 것들이 싫었어. 그치만 안즈때문에 우는 건, 싫지가 않아. 안즈가 주는 감정의 모두가 사랑스러워. 이렇게 우는 것도 안즈가 내게 준 것들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리츠가 나른한 목소리로 내뱉은 고백의 말을 들은 안즈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너무 울어서 안즈한테도 전염되어버린 걸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리츠는 어느새 울고 있는 안즈를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안즈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뒤 리츠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를 지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안즈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대답이었다.
리츠의 태양은 오늘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대로 재가 되어도 좋을 것 같지만, 그래도 리츠는 계속 살아서 안즈와 함께 하고 싶었다.
좀 당황스러웠고, 나중에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말에 새빨개진 얼굴이 자꾸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나츠메는 해야할 일이 있었고, 해야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을 방해하는 그 상대가 조금은 원망스러워야 할텐데, 놀랍게도 나츠메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싫지도 않았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당황스러웠고, 조금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츠메는 그 소녀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호감에 가까웠지만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꾸 그 소녀가 떠오를까.
사실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그 소녀가 매일 눈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안즈는 자주 나츠메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아무도 없고 조용하기 때문에, 나츠메는 자신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편하다고 말을 했다. 레이형이 있는 경음부실도 그렇잖아? 사쿠마선배가 나를 가만 두질 않아서.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안즈를 보며 나츠메는 결국 그녀가 여기에 찾아오는 것을 허락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든 좋아, 하지만 날 방해해서는 안돼. 알겠어? 나츠메의 요구사항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안즈는 자주 이곳을 찾아와 의상을 만들기도 했고, 밀린 숙제를 하기도 했으며,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도 했다. 지금의 안즈는 나츠메의 백의를 덮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나츠메는 안즈가 이 공간에서 무얼하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이 해야할 일에 집중했고, 정신을 차리면 안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관계였을 뿐인데, 언제부턴가 두 사람의 관계는 바뀌었다. 아니, 바뀐 건 나츠메의 감정이었다. 할로윈이었나, 그래 할로윈이다. 그날 이후로 나츠메의 감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츠메의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며 그를 괴롭히는 안즈의 모습은 평소에 볼 수 있는 평범한 안즈가 아니라 할로윈 때 볼 수 있었던 특별한 안즈였다. 빨간모자의 모습을 한 그녀가 귀여워서 귀엽다는 말을 했었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왜 유독 그날의 안즈만 자꾸 떠오를까. 들고있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나츠메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즈를 향해 걸어갔다.
잘 자는 구나.
편안한 얼굴로 자고 있는 안즈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묘했다. 복잡한 나츠메의 마음을 알리가 없는 안즈는 기분 좋은 얼굴로 자고 있었다. 평소에는 마법이 통하지 않지만 자고 있는 지금은 통하지 않을까. 이런 복잡한 마음도 모르고 천사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는 안즈가 미웠지만 마법을 쓰는 건 조금 참기로 했다.
Good night.
나츠메는 안즈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렇게 속삭였다. 이정도의 마법이라면 괜찮겠지.
왜 자꾸 머릿속에 안즈가 떠오르는지, 사실 나츠메는 알고 있다.
이 마음이 비정상임을 세나 이즈미는 알고 있다.
그렇게 모질게 굴었음에도 안즈는 이즈미를 좋아했다. 울면서 좋다고 고백했던 그 날을 이즈미는 잊을 수가 없었다. 좋아해요, 세나 선배. 사랑스러운 안즈는 이즈미의 품에 안겨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세나 선배가 좋아서 아무 생각도 나지않을 정도로, 제 일상이 선배가 될 정도로 당신을 좋아해요. 안즈가 내뱉는 고백의 말들은 전부 달콤한 내용이었고, 우습게도 이즈미가 그때 느꼈던 감정은 두근거림이나 기쁨, 행복과 환희가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아, 내가 나쁜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거기서 오는 안도감. 이즈미는 안즈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억지로라도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는 건 사랑스러운 안즈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이니 이즈미는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고백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안즈를 이즈미가 온전히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프로듀서, 학원을 바꾼 혁명의 주축. 세나 이즈미의 연인이라는 이름표는 안즈를 설명할 수 있는 많고 많은 것들 중 하나일뿐이었다. 이즈미는 안즈가 그만의 소녀이길 바랐다.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욕심이 났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탐이 났다. 그 웃는 얼굴을 독점하고 싶었고, 반짝거리며 빛나는 그 푸른 호수에 비치는 건 자신뿐이었으면 했다.
세나. 그러면 도망갈거야.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갈 때 가장 빛난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이즈미의 그런 마음을 눈치챈 건 가까운 곳에서 그를 가장 오랜 시간 봐왔던 레오였다. 레오는 진지한 얼굴로 그 감정을 묻어버리라고 말했다. 그 음습하고 무거운 감정이 언젠가는 너를 망칠 거라고 경고했지만 이즈미는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사실로 경고를 해봤자 그에게 별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즈가 고백을 한 것이 과연 정말로 자신에게 기쁜 일인가, 하는 생각. 그렇게 고백해서 연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즈미는 온전하게 안즈를 소유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말라며 화를 내겠지만 이즈미는 정말로, 안즈가 자신에게 먼저 고백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세나 이즈미는 사랑하는 그녀를 어항 안에 가두고, 자신이 허락한 세상에서만 헤엄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안즈는 이즈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본인이 어떻게 느끼든 이즈미는 그들 사이에서 승리자가 되었고, 그녀의 옆에 있을 자격과 동시에 사랑하고 집착하는 그녀를 구속할 권리를 잃었다.
안즈가 자신의 의지로 이즈미가 만들어 둔 어항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면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일텐데 아쉽게도 그건 헛된 망상일 뿐이다. 긴 시간 동안 그녀를 봐 온 이즈미는 이미 알고 있다. 결국 이즈미와 안즈가 함께 행복해지는 해피엔딩따위, 두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결말이다.
너는 왜 하필 나를 사랑하게 된 걸까.
안즈는 이즈미 앞에서 사랑스럽게 웃었다. 눈 앞의 남자가 자신을 보고 어떤 상상을 하는지,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