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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본 아뻬띠! (Bon Appetit!)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본 아뻬띠! (Bon Appetit!)

박로제 2017. 4. 11. 12:03





토마토가 들어있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요.

잘 자고 있는데 자신을 깨우길래 레이는 짜증이 난 상태였다. 내가 어제 덜 죽여놨나. 안면을 방해받은 흡혈귀는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짜증이 났었다. 오늘은 스케쥴도 없고 둘이서 늘어지게 오후까지 늦잠을 자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이렇게 자신을 깨우는 안즈가 야속해 화를 내려던 레이는 잠이 묻어있는 안즈의 목소리로 내뱉은 말을 듣자마자 감고 있던 눈을 엄청나게 크게 뜨더니 아주 재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금 뭐라고 했나? 혹시라도 잘못들었나 싶어서 레이는 되물었고, 하품을 하던 안즈는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또박또박, 다시 해주었다. 토마토가 들어있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요. 양상추 넣어서. 햄이랑 오이도. 빵은 음, 그냥 우유식빵이 좋을 것 같아요. 토마토 두장 넣어주세요, 레이씨. 안즈의 리퀘스트를 두 귀로 똑똑히 들은 레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져있던 검은 티셔츠 하나를 대충 쑤셔넣고 혹시라도 연인의 마음이 변할까봐, 황급하게 부엌으로 달려갔다. 방금 전까지 잠투정을 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잽싸게 부엌에 가서 준비하는 레이를 안즈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신기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 나도 일어나야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서 이 얇은 여름용 이불을(세탁을 해야함) 둘둘 말고 나갈까, 아니면 바닥의 저 잠옷 상의를 입고 나갈까 고민하다가 레이가 따로 준비해둔 것 같은 원피스를 발견했다. 레이가 사온 옷치고는 완벽하게 안즈 취향이라, 조금 놀랐지만 안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원피스를 입고 부엌으로 가보았다.


이 집에서 레이와 살게된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반년동안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안즈는 위도 늘었고, 하루에 한끼만 먹던 식사가 두끼로 늘어났다. 레이가 없으면 평범하게 예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따지면 그다지 변한 것도 아니었지만 기대치가 낮아진 사쿠마 레이에게는 그것마저도 기쁨이었다. 그리고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예전보다는 더 자주 붙어있을 수 있게 됐으니 그렇게 안즈가 굶는 일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식탁에 앉아 얌전하게 만들어 준 것들을 먹고 있는 안즈를 볼 때마다 어떻게든 먹이기 위해 했던 수많은 행동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강제로 입을 벌려서 음식을 집어넣는다거나 입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벌린 입을 고정시키려고 했다거나, 부끄러워서 됐다는 안즈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직접 먹여주었던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자 사쿠마 레이는 조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게 바로 인간, 아니 흡혈귀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즈는 아침만은 절대 먹지 않았다. 강제로 먹이면 먹기야 했지만 레이가 없어도 이제 저녁은 챙겨먹게된 안즈가 아침만은 그러지를 못했다. 강제성을 동반하지 않으면 입에도 대지 않았다는 뜻이고, 사쿠마 레이는 진심으로 그것이 불만이었다. 하는 일을 생각하면 저녁보다는 아침을 먹어야 할텐데 그 중요한 걸 먹지 않는다니, 쫓아다니며 별짓을 다해봤지만 이것만은 고쳐지지 않았다. 반년에 이정도면 대단한 성과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아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는데, 대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잘 자다가 일어나서 먹고싶은 걸 말하는 안즈를 보고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였고, 이건 어떻게 봐도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그냥 배가 고프다고만 말했어도 좋다고 만들었을 텐데 구체적으로 먹고싶은 메뉴를 말하니 사쿠마 레이는 지금 아주 날아갈 것 같았다.

"아. 그거 까먹었다. 모짜렐라 치즈 넣어주세요."

제가 사준 분홍색의 원피스를 입고 부엌으로 온 안즈는 레이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리퀘스트에 치즈를 추가했다. 오늘따라 정말 왜 이러는지. 낯선 안즈의 모습에 답지않게 당황스러웠지만 레이는 이런 안즈가 싫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모습이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허리를 꽉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부비적 거리는 안즈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을 맞추면서 또 먹고싶은게 없냐고 물었더니 우유가 마시고 싶다는 답이 날라왔다. 어제 장을 보러갔는데 왠지 모르게 우유가 사고싶더라니. 허리에 매달려있는 사랑스러운 연인과 함께 뒤뚱 뒤뚱, 우스운 모양새로 걸으며 냉장고로 걸어 간 레이가 우유를 꺼내서 식탁 위에 두자 안즈도 잡고있던 레이의 허리를 놔주고 의자에 앉았다.

"내일 아침에는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만."
"또 이상한 소리한다."
"아가씨가 내 입장이 되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걸세. 아니지...이정도면 리츠가 웃으면서 형아~♡라고 부르면서 달려와 안기는 수준이구먼."
"내가 아침을 먹는 게 그렇게나 실현가능성이 없어보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거에요?"
"지난 반년을 좀 돌아보게나, 아가씨."

자신의 앞에 놓아지는 샌드위치를 보며, 안즈는 지난 반년을 돌아보았다. 음. 내가 너무하기는 했구나. 한 손에 들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져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안즈는 잠시 지난 반년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도 토마토가 맛있었다. 양상추도 맛있었고 적당히 녹아 늘어나는 치즈는 당연히 맛있었다. 들어간 재료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어쨌든 안즈는 맛있었고, 아침이었지만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다.

"맛있는가?"
"레이씨."
"응?"
"더 먹고 싶어요."
"...이상하구먼. 볼을 꼬집었는데도 꿈에서 깨지 않는다니..."
"그런 거 안해도 현실이에요 레이씨..."
"이런 형편 좋은 꿈이라면 그다지 깨고싶지 않구만."
"아니 이거 현실이라니까요."

두개나 먹어치웠는데도 모자랐다. 자신이 이렇게나 식탐이 많았던가. 레이의 안즈 "확대" 계획에 동거를 시작하면서 확실히 살이 찌긴 했지만(이것도 동거 초반에는 엄청 신경쓰이고 그랬지만 옆에서 지금이 딱 보기 좋다고 안겨드는 레이를 보고있으니 이 남자는 자기가 얼마나 살이 쪄도 좋아해줄 것 같아서 안즈는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을 고이 접어버렸다.) 먹는 양만큼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치만 너무 배가 고팠고, 지금 당장 저 놈의 샌드위치를 씹어서 삼키고 싶었다.

"점심에는 뭐 할 거에요?"
"흐음...뭐 따로 먹고싶은 거라도 있는고?"
"가지밥이요. 그리고 돼지고기감자조림."
"다른 건?"
"으응...설탕 들어간 계란말이랑 우메보시?"
"아가씨."
"네?"
"지난 반년을 다 합쳐도 오늘만큼 행복한 날은 없을 것 같구만..."
"레이씨 지금 울 것 같아요..."

멍한 얼굴로 점심 메뉴를 말하는 안즈를 계속 바라보던 레이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오늘은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했던 안즈가 처음으로 먹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한 날이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아무렇지 않게 해치우며 아침부터 점심으로도 모자라 저녁메뉴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레이는 자신이 울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꿈이라면 정말 깨지않았으면 좋겠다고 빌 정도로, 레이는 지금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다.

먹이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걸 먹는 사람의 먹는 모습을 좋아한다. 이건 레이도 마찬가지였다. 학창시절부터 사탕 하나를 줘도 맛있게 먹는 안즈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귀여워했던가. 안즈는 커다란 사탕을 주면 눈을 반짝 거리며 그걸 입에 넣고 이리저리 굴렸는데 그럴 때마다 사탕 모양대로 변하는 양쪽 볼이 먹이를 물고 있는 햄스터처럼 보여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었다. 연애감정을 갖기 전부터 레이는, 안즈가 먹는 모습을 좋아했다.

연애 기간은 길었지만 식습관에 대해서 알게 된 건 고작 반년이고, 그마저도 억지로 먹이던 게 반이다 보니 예전처럼 먹는 모습을 보지 못해 레이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학생 때처럼 자신의 의지로 식사를 하고 있는 안즈의 모습을 보니 어울리지 않게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가씨. 사탕 먹겠는가?"
"당연히 좋죠. 딸기맛으로 주세요."

통 안에서 딸기맛 사탕을 꺼내 봉지를 뜯어 꺼낸 뒤 입안에 넣어주자 안즈는 행복한 얼굴로 웃으며 사탕을 입안에서 굴려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옛 생각이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가 들으면 팔불출이라고 하겠지만 정말 사쿠마 레이는, 자신의 연인인 안즈가 너무 좋았다.

"레이씨."
"응?"
"제가 많이 좋아해요."

갑작스러운 안즈의 고백에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레이는 조금 당황했다가 이내 다시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많이 좋아한다네. 그나저나 오늘도 아가씨한테 선수를 뺏겨버렸구만. 애정이 넘쳐서 어쩔 줄 모를 때, 그 넘치는 애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고민할 때 안즈는 그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레이의 붉은 두 눈동자를 마주하고 제 마음을 고백했다. 아마 오늘도 마찬가지겠지. 레이는 안즈의 그런 모습까지 좋아했고, 안즈는 넘치는 애정을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의 그 붉은 눈동자를 좋아했다.


저렇게까지 좋아하니 이제 말해도 되지않을까? 흘러내린 양상추를 손으로 집어 먹으면서 안즈는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고 레이와 자신의 관계때문에 숨기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 남자가, 반대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말하자. 그렇게 결심한 안즈는 들고있던 우유잔을 내려놓고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은 뒤, 입을 열었다.

"레이씨."
"뭐 더 필요한가, 아가씨?"
"나 임신했어요."

아 저 놀라서 크게 뜬 눈, 정말 귀엽네. 오늘도 새롭게 알아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안즈만이 알고 있는 레이의 그런 모습들을 하나둘씩 알아가며 안즈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아 배고프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아이는, 엄마와 다르게 먹는 걸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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