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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노사키 백물어百物語 본문

안산블루스따즈/유메노사키 백물어

유메노사키 백물어百物語

박로제 2017. 4. 12. 22:55





*백물어百物語 : 백가지 괴담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촛불을 백 개 켜놓고, 사람마다 돌아가면서 괴담을 하나씩 하며 괴담이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끄는 것.


*노래와 함께 읽어주세요






세나 이즈미는 장마를 싫어했다.

습기때문에 무얼 만져도 끈적했고, 머리는 아무리 정리를 해도 삐치거나 붕 떴으며 빨래는 마르지 않았고, 신발과 교복 바지 밑단이 젖었으며, 우산을 항상 들고 다녀야하는 장마기간을 이즈미가 좋아할리가 없었다. 게으르게 침대에 누워있는 걸 제일 혐오하는 사람이 자신이었지만 오늘은 정말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아, 꾀병이라도 부릴까. 입에 칫솔을 물고 붕 떠있는 자신의 머리를 보며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렇다고 학교를 빠질 수는 없었다. 양말이 젖었을 때를 대비해서 예비용을 챙기고 신발과 바지 밑단을 더럽힐 빗물이나 흙을 닦아낼 티슈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작은 3단 우산, 머리를 정리한 것들과 화장을 고칠 것들을 이것저것 파우치에 챙긴 뒤 한숨을 쉬며 이즈미는 집을 나섰다. 몸에서 버섯이 자라는 것 같아. 집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후덥지근한 공기에 마치 몸에 버섯이나 곰팡이라도 자란 것 같아 급격하게 기분이 나빠졌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이었으므로, 이즈미는 조금 빠르게 걸어갔다.

완전 짜증나.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을 중얼거리면서 학교로 가는 길은 예상보다 더 최악이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지나가던 차가 뿌리던 물에 교복바지가 전부 젖어버려 축축해졌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우산이 뒤집힐 뻔 해 얼굴에도 비를 그대로 맞아버렸다. 이대로 그냥 집에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하루의 시작이 최악이었던 적은 또 처음이라, 이즈미는 지금 이 상황자체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비에 젖은 머리의 물기를 대충 털어내며 다 젖었으니 이제는 신경쓰지 않겠다며 물 웅덩이를 아주 힘차게 밟으며 걸어가던 이즈미는 신사 하나를 발견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신사로, 관리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끔 참배를 올리러 가는 사람도 있는 신사였다. 이즈미도, 한 번은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알기로는 신사가 있는 곳이 꽤 멀다고 알고 있는데 오늘따라 저 신사가 매우 가까워보였다. 착각인가.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할 게 분명했지만 이즈미는 그 신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학교 가기 싫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늘 일어나자마자 했던 생각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한 이즈미였기에 그 생각들이 길게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저 신사를 보고 있으니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조종하고 있는 기분이라, 신사에서 눈을 떼고 다시 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차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났었는데 그런 소음들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느끼며 우산을 접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학생들도, 자동차도, 그리고 질척하게 내리고 있던 장맛비도 사라지고 없었다. 주의의 건물이나 풍경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과 똑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즈미는 자신이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누군가의 장난인가 싶었으나 그러기엔 이 공간에서 흐르는 분위기가 수상했다. 혹시 자신이 아직 잠에서 덜 깬게 아닐까, 눈을 뜨면 침대 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움직여도 되는걸까. 낯선 공간에서 계획없이 움직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방금 지나쳤던 신사의 토리이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와 스산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토오랸세(*일본의 횡단보도 보행자 교통신호음의 원전. 에도 막부 시대부터 구전되어 왔다는 동요.)였다.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ここはどこの 細通じゃ
여기는 어디로 가는 샛길인가요?

天神さまの 細道じゃ
천신님에게 가는 샛길입니다.

ちょっと通して 下しゃんせ
지나가게 해주세요.

御用のないもの 通しゃせぬ
용건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この子の七つの お祝いに
이 아이의 7살 생일을 기념해

お札を納めに まいります
부적을 봉납하러 가는 겁니다.

行きはよいよい 帰りはこわい
가도 좋아요 좋아요, 돌아가는 건 두렵죠.

こわいながらも
두렵더라도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ここは冥府の細道じゃ
여기는 명부의 샛길

鬼神様の細道じゃ
귀신님에게 가는 샛길입니다.

ちょっと通して 下しゃんせ
지나가게 해주세요.

贄のないもの通しゃせぬ
제물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この子の七つの弔いに
이 아이의 7세 기제일로

供養を頼みに参ります
공양하러 가는 겁니다

生きはよいよい 還りはこわい
삶은 좋아요 좋아요. 세상으로 돌아가는 건 두렵죠.

こわいながらも
두렵더라도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꺼림칙한 노래였다. 멜로디 자체도 어둡고 음침한데다가 노래를 보르는 사람이 어린 여자아이인데 그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게 스산한 느낌을 가득 안고 있었고, 가사는 웃고 넘길 수 없을 정도로 기분 나쁜 내용이었다. 거기다가 그 노래를 듣고 있으니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 아침에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내고 싶을 정도였다. 온몸에 한기가 돌아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오빠.

붉은 토리이에서 나온 것은 아주 작은 여자아이였다. 까맣고 긴 머리에 인형처럼 하얀 피부, 보라색의 눈이 아주 예쁜 아이는 붉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시치고산 때 입었던 옷인지 옷에는 복숭아꽃이 화려하게 새겨져있었다. 아이는 예쁘게 웃으며 천천히 이즈미를 향해 걸어왔다. 오지마. 오지말라고. 얼굴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어떻게 된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빠. 학교가기 싫다고 했지? 내가 오빠 소원 들어줬으니 나랑 놀아줘. 응?
숨바꼭질할까? 오빠가 숨고, 내가 찾는거야. 내가 눈감고 아주 천천히 열을 셀 동안 어디에 숨어도 좋아. 대신에 어디 있는지 찾아내면 오빠는 나랑 같이 가줘야해. 알았지?
예쁜 오빠. 나는 오빠가 나랑 같이 갔으면 좋겠어.

아이는 손뼉을 마주하고 꺄르르, 그렇게 소리내어 웃었다. 자, 지금부터 놀이 시작이야! 아이는 작은 손으로 제 눈을 가리고 하나부터 세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이즈미는 그때부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도망가야 한다. 어디로 같이 가자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 번 끌려가면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서 꽤나 멀어졌음에도 아이가 숫자를 세는 목소리만큼은 제대로 들려왔다.

신사로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그 아이는 토리이에서 나타났다. ​9....8....7... 감이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니었고 그걸 믿는 편도 아니었지만 신사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것 같아서 이즈미는 학교로 달려갔다. 도착한 학교는 역시나 자신이 지나 온 거리처럼 아무도 없었고 한창 시끄러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용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6...5....4.... 나이츠의 스튜디오로 가자.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가 그곳이었고,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이즈미는 문을 잠궜다. ​3....2... 여기면 괜찮을 거야. 바닥에 주저앉으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1. 이제 찾는다? 아이가 마지막 숫자를 내뱉었다.

오빠. 어디있어?
아하하. 학교에 숨었구나.
으음, 어딨는지 모르겠는걸. 학교는 너무 넓어.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즈미는 황급히 제 입을 막았다. 지나갈 때까지만 참자. 아이는 스튜디오의 문고리를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여 기 있 어 ? 방금전까지 평범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지더니 한음절씩 끊어 말하며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제발. 안돼. 열리지마. 속으로 그렇게 빌며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문이 안열리자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이는 문을 열려던 걸 멈추고 다른쪽으로 뛰어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들리지 않게 되자 그제야 안심한 이즈미가 크게 숨을 들이 쉬며 고개를 들었다.



















다.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보인 것은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자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있던 아이는 스튜디오 안이 울릴 정도로 아주 크게 웃었다.


​히히히.하하하하.깔깔깔깔깔.낄낄.히히히.하하하하.깔깔깔깔깔.낄낄.히히히.하하하하.깔깔깔깔깔.낄낄.
히히히.하하하하.깔깔깔깔깔.낄낄.히히히.하하하하.
깔깔깔깔깔.낄낄.히히히.하하하하.깔깔깔깔깔.낄낄.히히히.
하하하하.깔깔깔깔깔.낄낄.히히히.하하하하.깔깔깔깔깔.
낄낄.히히히.하하하하.깔깔깔깔깔.낄낄.



고장난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웃던 아이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즈미를 바라보았다. 오빠. 이제 가자. 예쁜 오빠. 나한테 잡혔으니까 계속 놀아줘야지. 오빠는 학교에 가기 싫어했잖아? 왜 그렇게 무서워해? ​왜? 왜? 왜? 왜? 왜? 왜?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계속 왜라는 말을 반복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점점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무섭게 변해서 도저히 앞을 볼 수가 없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이즈미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하냐는 분노와 공포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지만 진짜 가기 싫어서 그런게 아니야. 나는 학교에 가야해. 너랑 놀아 줄 시간따위 없어. 나는, 오늘, 봐야할, 사람이,

봐야할, 사람이, 있어. 나는 그녀석한테 이 말을 해줘야해.

갑자기 아이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웃음소리도, 턱이 부딪히는 소리도, 반복되는 같은 말소리도 들리지 않아 조심스레 고개를 드니 천장에 매달려서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괴상하게 웃고있던 얼굴은 사라지고 땅으로 내려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예쁜 얼굴로, 아이는 이즈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며 겁에 질린 이즈미의 얼굴을 계속 말없이 보던 아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서는 스산함도, 음침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밝고, 아주 경쾌한 목소리였다.

미안해. 너무 심심해서 그랬어.
오빠를 무섭게 할 생각은 없었어.
자, 이제 가도 좋아.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을 찾아볼게.
대신에 그 언니한테, 꼭 그 말 전해줘야해?
그럼 잘가, 예쁜 오빠.

아이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놀아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깨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나갔다.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학교가 아니라 등교길이었다. 우중충한 하늘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 그리고 시끄러운 차소리와 말소리까지. 이즈미가 방금 전까지 지나가던 그 거리가 맞았다. 뒤에서 걸어오던 아라시가 이즈미를 발견했는지 인사를 해왔으나, 그 인사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이즈미는 멍한 얼굴로 붉은 토리이를 바라보았다.

귓가에 다시 토오랸세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즈미는 뒤늦게 아라시의 인사를 받아주며, 빠른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학교의 유일한 프로듀서이자 여학생인 그 소녀를 빨리 만나서, 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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