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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안즈레이 : 유리어항 外 3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이즈안즈레이 : 유리어항 外 3

박로제 2017. 9. 12. 00:00



*EXO-유리어항을 들으시면서 봐주세요.




돌이켜보면 하루의 시작부터 굉장히 이상한 날이었다. 매일밤마다 악몽때문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새벽 즈음에 눈을 떠서 울고 소리치고 괴로워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기이하게도 오늘은 꿈도 꾸지않고 푹 자고 일어났다. 아침이라는 게 이런 거였던가. 안즈는 멍한 얼굴로 제 옆에서 아직 잠들어있는 피곤한 얼굴의 이즈미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자신이 먼저 눈을 떠서 자고 있는 이즈미를 보고 있는 건 굉장히 오랜만...아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오늘 오프였고, 간만에 새벽에 깨는 일 없이 푹 자고 있는 이즈미를 안즈는 굳이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 마음도 없었다.

...아침 준비할까.

아주 오랜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온 뒤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기이하게도 오늘따라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간만에 꿈도 꾸지 않고 푹 잤기 때문일까, 안즈는 스스로가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변화가 나쁘지는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꺼내고, 도마와 칼을 꺼내고 프라이팬을 꺼내서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보았다.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왠지 오늘은 저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겨우 꿈 하나 꾸지 않았다고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 이대로 계속 꿈을 꾸지않는다면 안즈는, 레이를 완전히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즈미를 깨우러 갔을 때, 그는 평소와 조금 다른 얼굴로 웃고 있는 안즈를 보면서 처음에는 당황했고, 안즈에게 이끌려나와 아침식사가 차려진 식탁을 보면서 멍청한 얼굴로 꿈꾸고 있는 거 아니냐며 계속 안즈에게 물어보았으며, 마지막에는 일그러진 얼굴로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건가. 그렇게 말한 이즈미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고, 안즈는 거기서 묘한 벽을 느꼈다.

이즈미, 오빠.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왠지 모르게 자신에게 벽을 치며 대하는 이즈미의 행동에 불안함을 느낀 안즈가 그의 옷자락을 쥐며 어리광을 부리듯이 그렇게 말하자 이즈미는 익숙하지 않은, 안즈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악몽도 꾸지 않았고, 정말 몇년 만에 밤에 잠들지 못하고 새벽 내내 우는 일도 없어서 안즈는 정말로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이즈미의 행동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기분탓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나를 버리지 않아.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안즈는 이즈미를 믿었고, 그 묘한 위화감을 착각이라 여기며 잊으려고 애를 썼다.

안즈는 이즈미의 변화가 무서웠다. 자신이 지금 간신히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세나 이즈미 덕분이었다. 살고 싶지 않았던,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던 자신을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 있게 해준 건 이즈미의 선택과 그의 욕심 때문이었다. 아직도 레이를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안즈를 안아주고, 내가 너의 옆에 있으니 괜찮다며 몸과 마음이 지쳐도 내색없이 그걸 모두 받아 준 이즈미 때문에 안즈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었다. 힘들어서 그 애정에 의존했고, 받은만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를 못했다. 지금은 힘드니까, 나중에. 나중에 돌려주자. 영원이라는 게 없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안즈는 이즈미가 언제까지나 이런 모습으로 제 옆에 있어줄거라고 믿었다. 물론 받은 것을 그만큼 돌려주지 못한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즈미가 옆에 있으니까, 상처받고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과거에 머물러있는 자신의 고민같은 건 정말, 어찌되든 상관이 없었다.

"안즈."

혹시 말이야, 만약에... 거기까지 말한 이즈미는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고,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이 만든 아침을 하나도 남김 없이 해치워놓고 투덜거리는 이즈미를 보면서, 안즈는 그가 차마 꺼내지 못한 그 말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굴면서 평소처럼 그에게 웃어주었다.



이즈미는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다시 널 데리러 오겠다는데, 어떡할거야?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에, 네가 그 사람을 이제 잊었다면... 이미 전제부터 틀려먹은 상황을 가정하며 안즈에게 묻고 싶었지만 세나 이즈미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그는 알고 있다. 안즈가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이곳 뿐이라는 걸. 하지만 그것은 사쿠마 레이가 없는 상황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것이지, 그가 다시 안즈에게로 돌아온다면 자신이 만든 이 어항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더는 쓸모가 없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즈미는 안즈에게 그가 너를 찾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그런 상태로 말하는 것을 미루다 보니 결국 그가 찾아오겠다고 선포한 '오늘'이 되어버렸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던 걸까. 악몽도 꾸지 않고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는 안즈를 보면서 이즈미는 속이 뒤틀려서 먹은 걸 모조리 뱉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안즈가 만든 아침을 먹으면서도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망가진 존재에게 애정을 바라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고, 그걸 알면서도 안즈에게 손을 내민 것은 자신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머리로는 욕심인 걸 알면서도, 나는, 안즈, 나는...


벌써부터 숨이 막혀왔다. 너를 위해 만들었고, 네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준비해둔 어항이었다. 나는 그 밖에서 너를 지켜보고, 네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어항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즈미는, 자신이 그 어항 속의 물고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따져보면 안즈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제 옆에 있는 것, 오로지 저만을 바라보고 제가 주는 애정에 기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건 안즈를 위했다기 보다는 세나 이즈미를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피곤했다. 이즈미는, 지금 여기서 시간이 멈춰지길 바랐지만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는 그날따라 더욱 크게 제 귓가에 들려올 뿐이었다.





​​이즈안즈레이 : 유리어항 外 3





벨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집주인을 제외하고, 이 집을 방문하는 이들 중에 벨을 누르는 사람은 두 사람 뿐이었다. 이즈미의 매니저,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이즈미가 불렀던 그 의사만이 이 집에 들어올 수 있었고, 오늘은 쉬는 날인데다가 당분간은 스케쥴이 없다고 했으니 안즈는 그 벨소리의 주인공이 이즈미가 저를 위해 부른 의사인 줄 알았다. 여전히 자신은 몸이 좋지 않았고, 그는 그런 그녀를 위해서 일정한 기간마다 의사를 불러 간단한 검진을 받게 했다. 병원으로 가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안즈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했고, 본인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합의 하에 결정된 것이었다. 평소라면 자신이 아니라 이즈미가 나가서 문을 열어줬겠지만 지금 그는 잠시 밖에 나가있었고, 이 집에는 안즈 혼자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인형처럼 누워있다가 벨소리를 듣고는 느릿하게 일어나서 아무런 의심없이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안즈는 문을 열어주었다.

"...안즈."

내가 꿈을 꾸는 건가. 현관문을 여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눈에 익은 얼굴이 보였다. 직접 본 건 몇 년 만이었지만 매일 밤 꿈 속에 나타나 저를 괴롭혔던 그 얼굴을, 안즈는 싫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즈가 벨을 눌렀던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자마자 한 짓은 현관문을 닫지도 않고 집안으로 도망가는 일이었다. 급하게 방으로 들어온 안즈는 문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울 뒤집어 썼다. 잠에서 깼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모두 꿈이었던걸까?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고, 오늘도 그 사람이 나오는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온몸이 떨려왔고,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일어나서 그가 들어올 수 없도록 해야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즈야."

이 세상에서, 안즈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다. 꿈이 아니구나, 차라리 꿈이길 바랐는데. 집에 들인 이상 이대로 피하기만 할 수는 없어 안즈는 뒤집어 쓰고 있던 이불을 치우며 아주 천천히,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거기에는, 그때와는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사쿠마 레이가 서있었다.

"...레,이 씨?"

그가 여기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이름을 불러보았다. 예전에는 제 이름보다 더 많이 듣고 부른 이름일텐데, 지금은 그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레이는 혼란스러워하는 안즈를 보며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이즈미에게 뭐라 따지고 싶었다. 확실하게 답은 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올 시간에 맞춰서 일부러 자리를 비켜준 걸 보면 데려가는 것에 반대는 하지 않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왜 내가 온다는 걸 알려주지 않은 거지.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서 따지고 싶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지금 레이에게 중요한 건 안즈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고, 못 본 사이에 많이 마른 그녀를 보면서 안타까운 얼굴로 한숨를 내 쉰 레이는 천천히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나 군이 말하지 않았는가? 분명히 전하라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이즈미 씨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래."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레이...씨가 왜 이즈미 씨에게..."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모양이구만. 안즈. 예전에 했던 나와 했던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
"만약에, 내가 살아서 이 모든 일이 잘 해결 된다면 그때 널 데리러 올테니 다시 만나자고."

분명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넌 그러겠다고 답했지. 이제와서 그걸 잊었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단호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레이를 보면서 안즈는 이제 까마득한, 먼 과거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래, 헤어질 때 분명히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만 레이나 안즈 둘 다 그 가정이 현실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사쿠마 레이가 확신을 하지 못했고, 레이가 확신을 하지 못하니 안즈도 자연스레 그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기에 안즈는 그 약속을 잊었지만 레이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나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는 게 기뻐야 하는데, 안즈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돌아가자.

마주잡은 두 손이, 품안으로 끌어안는 손길이, 항상 맡던 익숙한 향수냄새가,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모두 안즈가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것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 안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은 이즈미였고, 그제야 안즈는 오늘 아침에 이즈미가 제게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이즈미를 만나야 했다.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했지만 레이는 안즈를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안즈 또한 안타깝게도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사쿠마 레이를 이해할 수 없어도, 이제야 자신을 찾아 온 그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안즈는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예전보다 마른 안즈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레이는 천천히, 자신이 여기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안즈가 사라진 걸 알고 있었고, 자신때문에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부러 찾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여 직접 찾아본 적은 있지만 이상하게도 찾을 수가 없어서 이제 포기하고 그만둘까 싶었던 찰나에 우연히 어떤 의사를 만났고, 안즈는 레이가 말하는 의사가 이 집에 자주 들르던 그 사람임을 알았다. 그게 1년 전의 일이고, 바로 데려올까 했지만 그 모든 게 너의 의지라고 생각해서 참았다는 레이의 말을 들으면서 안즈는 호흡을 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에 안즈는 할 수만 있다면 그를 밀어내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만하라고, 알고 싶지 않으니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처럼 안즈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늦었어요. 너무 늦었고, 이미 너무 많은 게 변해버렸어요. 그 말을 해줘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신은 확신할 수 없었던 그 희망을 믿고 기다렸죠.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나는 당신과 헤어지면서 모든 게 죽어버렸으니까. 당신이 내 옆에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런 꿈조차 꾸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레이 씨, 나는. 당신이, 나를.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 대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게 돌아온 그가 사랑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많아서 안즈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보처럼 그저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다. 레이는 그런 안즈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할 뿐이었고, 그녀는 그의 사과에 고개를 저으며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자신의 이런 행동을 그가 어떤식으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안즈는 레이가 제게 사과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이즈미가 보고 싶었다. 그가 돌아와서 레이에게 당장 꺼져달라고, 이 집에서 나가달라고 소리쳐주길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즈미는 안즈가 레이에게 안겨서 이 집을 빠져나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의 차에 타기 전에 숨어서 저를 보고 있는 이즈미를 발견했었지만 안즈는 저와 눈이 마주치고도 자신을 외면하는 그에게 차마 자신을 붙잡아달라 소리치지 못했다.



**



그와 함께 살게 되면서, 안즈에게 있어서 이즈미는 레이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즈미에게서 레이의 모습을 찾았고, 그걸 알면서도 그는 그것을 받아주었다.

그를 잊기 위해서 이즈미에게서 레이의 모습을 찾는 걸 관뒀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있어서 이 남자는 사쿠마 레이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슬프게도 안즈는 더 겁이 났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을 때, 이 모든 걸 잊고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다시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이번에 어디로 도망을 가야할까. 그를 잃었을 때, 나는 지금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래서 이즈미는 안즈에게 있어서 레이와 같은 사람이었다. 관계가 달랐고, 주고 받는 애정 또한 조금 다른 것이었지만 그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과 괴로움은 레이와 똑같았으니까.

그래서 안즈는 섣불리 제 마음을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비슷한 상대와 관계의 마지막을 이미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더 겁이 났고, 안즈의 그런 불안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당신이라면 괜찮다고, 그를 완전히 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라면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계속 내 옆에 있어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안즈는 결국 그렇게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사람도 기다려줄거야, 언젠가 확신이 생기면 그때 이야기하자. 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가, 그 세나 이즈미가 자신을 먼저 놓을 줄은 몰랐다. 겁먹고 전하지 못했던 그 애정은 가장 최악의 형태로 제게 돌아왔고, 점점 그와 멀어지는 차 안에서 안즈는 보는 사람이 안쓰럽다 여길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이렇게 울면서도 차를 멈추고 다시 그에게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은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저를 원했고 그 기형적인 관계에서도 행복을 느꼈던 그 남자가 자신을 포기할 정도로 지쳐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이즈미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안즈는 차마 그에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즈미 씨.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그 이름이 독이 되어 속에 퍼졌다. 차라리 그 독이 온 몸에 퍼져 이대로 죽어버리길, 안즈는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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