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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you don't love me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you don't love me

박로제 2017. 12. 28. 21:46



*Caro Emerald - you don't love me를 들어주세요.
*캐붕 주의. 역시나 무엇이든지 괜찮으신 분만.





하루의 시작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영화 속의 좀비마냥 비척비척거리며 출근할 준비를 하고, 출근길 교통체증에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깜빡 졸기도 하는 등,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레이를 만나고나서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원래 아침에는 뭘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항상 출근 전엔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전부였지만 레이가 자고 간 다음 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우리 부모님도 하지 않는 일을 당신이 하냐고 뭐라해봤자 한 귀로 듣고 흘릴 뿐이었다. 아침에 잘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눈도 제대로 못뜨면서 제 아침을 차려주는 모습이 웃겨서 그대로 뒀더니 그게 결국은 당연한 것처럼 굳어져서, 안즈의 아침 출근길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이 씻으러 들어갈 때 쯤에 눈을 뜬 레이가 매우 졸린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대충 아무거나 주워입고 부엌으로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했고, 씻고 나오면 밥부터 먹으라며 안즈를 끌고가서 식탁에 앉혔다. 안졸려요?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게나. 가만히 놔두면 식탁에 얼굴을 박고 바로 잠들 것 같은 얼굴이면서도 괜찮다고 우기며 레이는 안즈가 먹는 걸 끝까지 지켜보았고, 그 뒤에도 출근준비 하는 걸 도와주었다.

'...뭔가 역할이 조금 바뀐 것 같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가?'
'아뇨. 그냥 기분이 조금 묘해서...'

마치 부부같잖아요.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지만 레이도 안즈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대충 눈치챈 것 같았다. 물론 그냥 신혼놀이쯤이라고 생각하게나. 가볍게, 노는 기분으로 있으면 충분하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레이 덕분에 안즈도 금방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까지 해주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물론 자신은 특별한 고객이니까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접대해준다고 레이는 말했었고, 안즈도 그 말만은 믿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나처럼 해줬던 사람이 있었다는 거 아냐. 우습지만 그녀는 그의 현재가 아닌 과거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질투하니? 친구는 그렇게 말했지만 안즈는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연애하는 것 같잖아. 연애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곳까지 와서 돈을 주고 사람을 샀는데 내가 굳이 그런 감정을 느껴야해? 친구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안즈 스스로도 알았다. 이건 질투라고. 그래서 절대로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그러죠? 항상 웃는 얼굴로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그건 전부 제 질투를 숨기기 위한 연기였다. 레이라면 금방 눈치챌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안즈는 최대한 그런 제 감정을 숨기려고 애를 썼다. 그럼 하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그의 그런 행동이 자꾸 그런 질투를 하게 만든다면 제 말을 아예 들어주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만두라고 하면 될텐데, 안즈는 그러지도 못했다. 남들은 다 받았는데 나만 그런 이유로 받지 못하면 억울하잖아요. 유치하지만 그런 이유때문에 그녀는 이 「신혼놀이」를 그만두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레이가 일어나지를 못했다. 씻고 나와서 아직도 침대 위에 누워있는 레이에게 많이 피곤해요? 라고 물어보니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평소보다 더 졸음이 묻어있는 얼굴로 안즈를 속일 수는 없었다. 혼자서 잘 차려먹을테니까 걱정말고 조금만 더 자요. 사실은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귀여운 얼굴로 잠투정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없던 식욕도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언제 잠에서 깼는지 레이가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안즈를 향해 좋은 아침이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더 안 자도 괜찮은 거에요?"
"지금은 괜찮은 것 같구먼."
"아침에 못일어난다는 거 다 거짓말이죠."
"아가씨에게 거짓말한 적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네."

거짓말쟁이 말을 어떻게 믿어요. 그렇게 말했더니 믿는 건 아가씨의 자유라며 레이는 큰소리로 웃었다.


아가씨. 잠시만 멈춰보게나.
왜요?
오늘은 내가 해주고 싶어서 말이야.
아, 잠시만. 레이 씨!

다 벗고 있는 걸 알아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제 말은 듣지도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레이 때문에 안즈는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무것도 안 입고 그렇게 당당하게 일어나지 말아요! 아침부터 부끄럽게 뭐하는 짓이냐고, 빨리 아무거나 주워 입으라고 새빨개진 얼굴로 화를 냈더니 레이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이정도는 자주 봤으면서 왜 이제와서 부끄러운 척을 하냐며 안즈를 놀렸다. 물론 레이의 말대로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니고, 익숙하다면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 빨리 옷 입어요. 차마 제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는 안즈를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이제 곧 출근시간이기에 레이는 그걸 꾹 꾹 눌러 담으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옷을 주워입었다.

오늘 일정은?
별 다른 건 없어요. 어제랑 비슷할 걸요?
그럼 이 색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구만.

이렇게 남의 손에 제 얼굴을 맡기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어쩐지 레이가 만져줄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손끝에 다른 감정을 담았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묘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안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들은 적 없으나 레이는 제 손으로 안즈를 꾸며주는 걸 좋아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고, 사실은 별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레이가 좋아하니까, 그런 이유로 안즈는 얌전히 그것들을 받아주었다. 물론 그런 이유보다는 다른 이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는 저를 잘 알고 있는 레이에게 맡기는 게 오히려 더 나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다. 이 얼굴에 어울리는 건 다른 색이지만, 일을 하는데도, 그리고 오늘의 일정과도 맞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마지막으로 립스틱까지 발라준 뒤 그렇게 말하며 웃는 레이의 얼굴이 좀, 귀엽다고 해야하나, 그도 아니면 멋지다고 해야하나. 어찌됐든 안즈의 무언가를 건드렸던 것인지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얼굴을 붙잡고 그대로 키스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입술만 닿으려고 했던 안즈와 달리 잠시 입술이 떨어졌을 때, 곤란한 얼굴로 안되겠구먼. 이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키스해온 쪽은 안즈가 아니라 레이였다.

화장 지워지는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소용없었다. 이른 아침에 하기에는 너무 진한 키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맞닿은 입술이 너무 좋아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는 그 손길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제 허벅지 위로 올라온 손이 좋아서, 안즈는 그 키스를 받아주었다.

"...출근을 하라는 거에요, 말라는 거에요..."
"마음같아서는 하지말라고 하고 싶지만... 아가씨가 출근을 해서 돈을 벌어와야 이 몸이 기둥서방 놀이를 계속 할 수 있지 않겠나?"
"우와 말하는 것 좀 봐... 그래요, 기둥서방님. 나는 출근해서 돈 많이 벌어올테니까 어디가지 말고 여기 있어요. 알았죠? 저 오늘은 집에서 저녁 먹을 거니까요."

내 침대에서 푹 자고 있어요. 나 퇴근 시간 언제인지 알죠? 그럼 다녀올게요.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온 레이에게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한 안즈는 문을 나섰고,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현관에 기대서있던 레이는 그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자 크게 하품을 하며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겠지만 오늘은 안즈가 어디 가지말고 여기에 있으라고 했으니까, 레이는 조금 더 잘 생각이었다.





**





집에 가고 싶다.

옆자리에서 호탕한 얼굴로 웃는 제 아버지도 꼴보기 싫었고, 자신의 앞에 앉아서 제게 자꾸 요상한 시선을 보내는 남자도 보기 싫었다. 나는 저렇게 생기다 만 남자는 분명히 싫으니까, 데려올거면 그래도 좀 봐줄만한 얼굴로 데려오라고 했는데 저게 잘생긴 얼굴이라고? 물론 매일 보고 사는 얼굴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웬만한 연예인보다 잘생긴 얼굴이니 제 눈이 높아진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늘 이 자리에 나온 남자는 안즈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어이없는 식사자리같은 거, 바로 거절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못보낸다면서 안즈를 붙잡아서 이곳으로 끌고왔다. 레이에게 따로 연락이라도 해야했는데 어머니까지 따라와서 감시를 하는 바람에 안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여기로 와야만 했다. 집에 갔겠지. 벌써 9시가 넘었는데 그 사람이 아직까지 있을리가 없었다.

저 이만 가볼게요.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제게 관심을 끌려고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워서 더 볼 수 없어진 안즈는 그냥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례하게 무슨 짓이니. 그런 눈빛으로 어머니가 저를 바라보았지만 더는 여기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예정에도 없던 일이고, 저는 내일 또 일을 해야하고, 그런데 관심도 없는 남자랑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네요. 어차피 아버지랑 더 말이 통하는 것 같은데 그냥 두분이서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는게 어떠세요? 자신이 한 말이 어떤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 대충 예상은 갔지만 지금 제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더 중요했기에, 안즈는 뒷일을 생각치도 않고 그 말을 끝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퇴근하려던 저를 붙잡고 갑자기 저녁이라도 하자길래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됐다고 했더니 억지로 저를 끌고갔다.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하니 네 의사를 존중해주겠다며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약혼녀가 있는 아들과 다르게 결혼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 딸을 보고 있으니 불안했는지 그녀의 부모님은 기회가 될 때마다 안즈를 이런 자리로 데려왔다. 결국 전부 본인들 마음대로다. 안즈는 결혼할 마음이 없었고, 설사 한다고 해도 이런 남자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라도 해볼까."

집에 도착하면 10시가 넘을텐데 이 시간까지 레이가 제 집에서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을까. 그렇다고 확신을 하지 못해 안즈는 지금 그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무서웠다. 이렇게 전화를 했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면? 물론 여태까지의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제 전화를 받고 자신을 만나러 와주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자신이면서, 안즈는 그 사람이 저와의 약속을 지켜주길 바랐다. 그 남자는 그럴 필요조차도 없는데. 내가 결혼 못하면 전부다 그 사람 때문이야.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그런 이유로 원망해봤자 자괴감만 들뿐이었지만 안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집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었나. 집에 불이 꺼져있고 아무도 없을까봐 두려워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쩌지, 어떡하면 좋아. 그 앞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제 집에서 나왔다.

"그 앞에서 날 밤이라도 샐 셈인가?"

그 익숙한 얼굴은 ㅡ 다름아닌 레이였다. 레이 씨가 왜 여기에 있어요? 너무 놀란 마음에 그렇게 말했더니 오히려 인상을 찡그리며 한 입으로 지금 두 말을 하는 거냐며 레이는 화를 냈다. 모습을 보아하니 지금 돌아가기 위해서 나온 것 같지는 않았고, 아마도 현관에 서서 안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자신의 퇴근 시간은 6시였고, 집으로 오는 시간을 생각해도 한 3시간은 그를 기다리게 한 셈이다. 이 세상에서 사쿠마 레이를 그렇게 기다리게 한 여자가 있었을까. 아마 안즈가 유일할테지만, 이런 걸로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레이 씨가 집으로 간 줄 알았어요."
"손님과의 약속인데 어길리가 없지 않은가."
"아..."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게 안즈 너인데."

내가 어떻게 말도 없이 갈 수 있겠어. 우습지만 그가 하는 말이 전부 맞았다. 자신은 이 남자의 고객이었다. 그것도 그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인, 제일 첫번째인 가장 중요한 고객. 그래서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저를 기다려준 것이지만 안즈는 기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았다. 사쿠마 레이는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었고, 거기에 화를 내거나 칭찬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관에서 이러고 서있지말라며 멍하니 서있던 안즈의 손을 잡고 오늘 하루동안 수고했다며 침실로 데려갔다. 잠시만요 레이 씨. 응? 저녁 안 먹었죠. 제 물음에 답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먹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으로 들어오는 길에 부엌을 보니 식탁 위에 무언가가 있어서 혹시나 하며 물어본건데 맞았을 줄이야.

"차라리 먹었다고 거짓말이라도 하지."
"아가씨에게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일세..."
"그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에요..."

저건 어떻게 할 셈이었어요? 아가씨가 씻으러 간 사이에 치울 생각이었다네. 들켰으니 어쩔 수 없구먼. 금방 치울테니 잠시만 기다리게나. 저걸 왜 치워요? 저녁은 먹고 오지 않았나? 네. 먹었는데, 또 먹을래요. 레이 씨랑. 생각도 못한 말을 들은 것 마냥 멍청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길래, 안즈는 벗은 자켓을 침대 위에 집어던지고 레이에게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같이 밥 먹어요.

"...분명히 방금 전에 아가씨에게서 먹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먹긴 했는데...자리가 불편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요."

정말이었다. 대충 입에 무언가를 넣기는 했지만 안즈는 오늘 저녁에 자신이 무얼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자신을 위해서 먹지도 않고 저를 기다려준 레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실 뭘 먹었다고 해도 그와 함께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다지 무리할 필요 없다고 레이가 안즈를 말렸지만, 이 시간까지 저를 기다려준 레이에게 이정도는 해줄 수 있었고,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 할 이야기 많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침대 위에서 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레이 씨 목소리만 들으면 잠드는 거 뻔히 알면서.
그야 그렇지만... 알겠네. 다시 준비할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게나.

다시 준비하겠다며 레이가 방을 나갔고, 안즈는 한숨을 쉬면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안즈는 저 남자를, 사쿠마 레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현관문이 열리고 레이의 얼굴이 보였을 때, 안즈는 제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어떤 감정인지를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레이가 오늘처럼 행동한 건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였다. 자신의 직업이 그러하니까, 안즈와 자신의 관계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까 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에 이런 감정을 깨닫다니. 연애하고 싶지 않아서, 타인을 좋아하는 것이 힘이 들어서 이런 곳에 와놓고 돈으로 사람을 샀다. 그랬으면서, 하필이면 좋아하면 안 될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품어버린 스스로가 미웠다.

"진짜 최악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혐오해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안즈는 그 남자에게 이런 감정을 가진 자신을 원망했다.



연락도 없이 늦길래 또 아버지에게 붙잡혀서 끌려간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맞았던 모양이다. 포크로 샐러드에 들어있던 방울 토마토를 사정없이 찔러대며 상대방 남자와 아버지를 욕하는 안즈를 보고 있으니 저를 이 집에 두고 말 없이 늦게 들어온 안즈에게 가졌던 서운함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서운함이나 섭섭함은 저와 같이 밥을 먹자며 안즈가 저를 보고 웃어주었을 때 전부 풀렸었고, 애초에 자신과 그녀는 이런 일로 서운함을 느낄 관계도 아니었다. 그녀가 늦은 이유도 어느정도 예상을 했으나 그래도 레이는 제게 늦는다고 연락조차 없었던 안즈에게 조금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서 전화라도 줄 수 있지 않은가. 그도 아니면 메일이라도 보낼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러지 않은 건 안즈였으니까. 그럼에도 떠나지 않고 이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는 안즈가 자신을 거짓말만 하는,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건 안즈가 자신의 고객이어서가 아니었고, 애초에 사쿠마 레이는 그런 걸 신경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안즈가, 제 소중한 그녀가 자신을 믿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주길 바라서였다.

"그렇게 그 남자가 좋으면 둘이서 맞선이나 보지, 왜 나를 거기로 데려간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그렇게 말해주고 오지 그랬나?"
"...따로 약속 잡아서 둘이서 만나는 건 어떻냐고 말해주긴 했어요."

진짜로 안즈가 그렇게 말했을 줄은 몰랐던 레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큰 소리로, 조금 경박스럽게 웃었다. 역시 재밌는 아가씨구먼. 그러면 큰일 날 것 같은데. 괜찮은가? 뭐 어쩌겠어요. 이런 일로 쫓아냈다면 저는 몇 십번은 쫓겨났을 걸요. 사실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레이도 안즈의 아버지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딸의 의사를 존중해준다면서 왜 자꾸 이런 만남을 주선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남자를 만날 때마다 안즈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풀어야 겠다는 이유를 대며 레이를 찾아왔으니까, 사실 그다지 제게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자고 가요."
"오늘도?"
"나 이대로 혼자서는 못자요."

너무 지쳤어요 진짜로. 오늘은 평소보다 더 힘이 들었는지 안즈는 다른 때와 다르게 더 지친 얼굴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아두는 거 아니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며 그렇게 물어보는 안즈에게 레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하나 뿐이었다. 내 시간은 전부 아가씨를 위한 거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가볍게 말하기는 했지만 진심이었다. 레이의 시간은 전부 안즈를 위한 것이었고,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만 독차지할 수 없잖아요."

레이 씨는 나만의 사람이 아닌데. 웃으면서 그리 말하는 안즈에게 나는 얼마든지 너만의 사람으로 있어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 아가씨는 아마 도망가버릴게 분명했다. 그래, 사실 사쿠마 레이 스스로도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녀가 제 앞에서만이라도 많이 웃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관계라도 좋았으니까, 그다지 욕심내고 싶지도 않았고, 자신은 그럴 자격도 없었다. 그래서 레이는 더 뭐라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차마 말하지 못한 애정을 담아서 안즈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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