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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trap for you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trap for you

박로제 2018. 1. 21. 00:26



*애린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글인데 사쿠마 레이가 나쁜 놈이라서 이래도 괜찮은가 걱정이 많은 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그게 누구냐고, 우리의 프로듀서가 사랑을 한다며 눈을 반짝이던 사람들이 그 상대의 이름을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굳이 그 사람이어야 하냐고, 왜 하필 그 사람이냐며 진지한 표정으로 제게 그런 말을 해왔다.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저 혼자 짝사랑을 하고 있을 때도 그랬고, 짝사랑을 끝마치고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그러했다. 심지어 연애를 시작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같은 반의 사카사키 나츠메는 ‘이미 사귀는 거 아니었어?’ 라는 말을 해서 안즈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니,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었는데. 나츠메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하다가 안즈가 그렇게 말하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때의 반응이 조금 수상했지만 나츠메는 소녀에게 조금 이상하지만 좋은 친구였으니까, 별 말 않고 넘어가주었다. 어쨌든 주변인들의 반응이 전부 이렇다보니 안즈는 자신이 몹쓸 사람, 아니 굳이 순화하지 않고 표현하자면 어쩔 때는 상종도 못할 인간 말종을 좋아하고 있나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인데. 착하잖아. 상냥하고. 오토가리 아도니스는 그 사람이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안즈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덧붙였고, 궁금하다면 선배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안즈도 그 사람이 마냥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일단 생긴 것부터가 위험하게 생겼는걸. 그리고 간혹 학생회 일을 도우러 가면 에이치가 케이토의 흑역사라며 이야기해준 과거이야기 속에서도 그 사람은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제게도 심술 맞게 굴 때가 있었으니까, 선배 착하잖아. 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며 헛소리 하지 말라며 저를 바라보던 오오가미 코가의 반응도 안즈는 이해할 수 있었다. 좀 지난 일이지만, 그의 성격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사건을 겪은 적이 있었다. 갑자기 방송 쪽의 일이 생겼고, 학교의 일이 아니라 외부의 일이었기에 안즈는 프로듀서 자격으로 그를 따라 방송국으로 갔었다. 거기에서 유메노사키 출신인 선배를 만났는데,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별로 도움은 되지 않는, 이미 한물 간 연예인이었다. 그런 주제에 과거를 잊지 못해서 허세를 부리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고, 거기다가 안즈에게도 과한 관심을 보이더니 그날 내내 징그럽게 그녀를 따라다녔다.

‘제 여자 친구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그래도 눈치를 보긴 하는 건지 아무도 없을 때만 제게 달라붙어서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녹화 중간 쉬는 시간에 자신에게 와서 오늘 녹화 끝나고 시간 있냐고, 앞으로도 이 업계에서 일할 생각이면 자기가 좋은 인맥을 소개시켜주겠다면서 달라붙어 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은근슬쩍 만지 길래 밀어내려고 할 때, 대기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어깨 위의 손을 낚아채고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제 연예계 쪽으로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오늘 방송도 사정사정해서 겨우 나왔다는 분이 재밌는 말씀을 하시네요.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 말의 내용은 전혀 그러지를 못했고, 웃는 얼굴로 하는 말에 얼마 있지도 않은 자존심과 멘탈이 박살난 남자는 시뻘개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갔다.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었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안즈는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제 연인을 마냥 착하고 상냥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저런 인간이 달라붙는데 왜 제게 말도 하지 않았냐고 엄청 혼나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는 나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가끔 2학년 B반으로 가서 아라시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근처에 있던 코가가 질린다는 얼굴로 안즈를 바라볼 때가 있었다. 뒷자리에서 자고 있던 리츠는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개를 번쩍 들고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안즈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이해는 하겠는데… 코가 쨩이랑 리츠 쨩은 그런 얼굴로 안즈 쨩을 보는 거, 그만둬주지 않을래? 그럼 이럴 때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해, 낫 쨩? 자기는 아무 잘못도 없다며, 이 모든 건 여기 와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안즈 탓이라며 투덜거리는 리츠와 만나면 한소리 해주겠다며 이를 가는 코가를 보면서 아무리 이런 쪽으로는 조금 둔한 안즈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아, 나만 모르는 무언가가 있구나. 그리고 얘들은 그걸 가르쳐줄 생각이 전혀 없구나. 뭔가 자기들끼리만 알고 제게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서운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안즈도 그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만약 제게 숨기고 있는 게 연인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그 남자의 부족한 모습이라면 억지로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안즈는 그들의 대화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고,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



안즈 씨. 잠시 시간 괜찮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스기야마 군. 반가운 마음에 웃으면서 인사했더니 소년은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자신도 반갑다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잠시 시간 괜찮으면 제게 조금만 내어달라는 그의 정중한 부탁에 안즈는 자신의 스케쥴을 생각해보았고, 오늘은 더 특별한 일도 없으니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일반과의 학생으로, 예전에 한 번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제법 마음이 맞아 연락처를 주고받아 몇 번 따로 만나기도 했었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장소를 옮겼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아, 그러면 카페로 갈까요? 안즈도 여기에서 대화하다가는 혹시라도 레이가 볼 가능성이 있었기에 소년의 말에 동의했다. 학교 근처 카페에 오늘의 추천 메뉴가 몽블랑이니 그쪽으로 가자며 안즈는 그의 손을 잡았고, 앞만 보고 걸어가던 소녀는 제가 잡은 손의 주인의 얼굴이 새빨개진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런 걸 물어보는 게 정말 없어 보이고 실례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너무 궁금해서, 이렇게 찾아왔어.”
“저에게요?”
“응. 그, 어... 안즈 씨. 그 날 왜 거기에 나오지 않았어? 내가, 내가 그렇게 싫었던 거야?”

마주보고 앉아서, 오늘의 추천메뉴인 몽블랑과 그에 어울리는 차를 시켜서 한참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뜸 소년이 꺼낸 말이 그것이었다.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라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안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 안즈 씨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아이돌과 친구에게 부탁해서 직접 쓴 편지를 책상 안에 넣어두었어. 그 녀석 말로는 편지가 없어졌다 길래 안즈 씨가 읽었다고 생각해서 그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몇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더라고. 차인 건가, 그래도 거절의 말을 전하러 나와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마음을 접으려고 했는데 며칠 뒤에 만난 안즈 씨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하더라고. 아, 내 마음을 알고도 모른 척 친구로 있어주겠다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너무 혼란스러워서 무례하다는 걸 알면서도 교문 앞에서 안즈 씨를 기다리고 있었어. 새빨개진 얼굴로, 누가 봐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얼굴로 저를 보며 그리 말하는 소년을 보면서 안타깝게도 안즈는 두근거림보다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편지라니,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는데?

“저, 스기야마 군. 죄송한데 저는 그런 편지를 받은 적이 없어요. 그 친구 분이 무언가 착각하신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는 걸. 그 녀석은 안즈 씨랑 같은 반이니까, 모를 수가 없어.”
“하지만 저는 정말 그런 편지를 본 기억이 없어요. 그리고 만약 그걸 읽었다면 저는 그 장소로 나갔을 거구요.”
“그렇지만… 이걸 봐봐. 그때 녀석이 성공했다며 보내 준 사진인데, 틀림없이 안즈 씨의 책상이었어.”

소년은 사진을 보여주었고, 사진 속의 책상은 틀림없이 안즈의 책상이었다. 스바루가 해놓은 낙서와 아도니스가 누나에게 받았다며 붙여놓은 귀여운 스티커들, 그리고 토리와 츠카사가 자기가 더 크게 적을 거라면서 해놓은 싸인까지, 분명히 자신의 책상이 맞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안즈는 그런 편지를 본 적이 없었고, 조금 억울한 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책임도 있었기에 소년에게 사과를 했다.

“안즈 씨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니야. 직접 전해주지 못한 내 탓도 있으니까. 오히려 내가 미안해.”
“그래도….”
“그, 저기. 그렇다면 거절해도 좋으니 내 마음을 들어주지 않을래? 안즈 씨에게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고… 그냥 전하고 싶어서 그래. 나도 정리할 수 있게.”
“그런 걸로도 괜찮으시다면….”

들어줄 수 있다는 뜻으로 안즈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는지 안절부절, 고민하다가 목이 탔는지 아직도 뜨거운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당연히 입천장이고 혀고 전부 데여서 괴로워했고, 안즈는 당황하며 찬물을 건네주었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요. 어설프게 웃으며 소녀가 건네 준 물컵을 받아서 들이키던 소년은 갑자기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더니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을 제 무릎 위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스기야마 군? 엄청나게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입을 다물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가 이상해서 안즈가 왜 그러냐며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래도 소년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오. 그때 안즈의 어깨 위로 커다란 손이 올라왔고,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여기서 뭐하는가, 아가씨?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저를 보면서 상냥하게 웃고 있는 레이가 보였다. 아, 들켰다. 일부러 학생들이 자주 찾지 않는 카페로 왔는데 아무래도 헛수고였던 모양이다. 당황한 안즈는 그의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고 한 번만 넘어가달라는 듯 시선을 보냈고, 레이는 그것들을 못 본 척하며 어깨에 있던 손을 움직여 마치 보란 듯이 여기저기 쓰다듬고 만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심이 들어간 손길로 제 귀와 뺨, 입술과 목덜미를 쓸어내리고 만지면서 머리카락으로 장난을 치는 레이 때문에 당황한 안즈가 왜 그러냐며 그 손을 잡고 말려보았지만 소용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귓속말을 할 것처럼 다가와 귓바퀴를 깨물기까지 했다. 앞에 사람이 있는데 무슨 짓이냐며 한 소리를 해야 하는데, 지금 입을 열면 이상한 소리를 낼 것 같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를 노려보았더니 이 남자는 그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안즈의 앞에 앉아있는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차갑게 식어있는 게, 예전에 방송국에서 안즈가 봤던 그 표정과 매우 비슷한 얼굴로 레이는 눈앞의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랑 무슨 대화 중이었나?”
“네? 아, 그. 저, 별 거 아니었어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즈 씨, 오늘 미안했어. 소년은 급하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붙잡기도 전에 카페를 떠났다. 왜 사람을 겁주고 그래요. 제 옆에 앉아서 이제는 당당하게 뺨에 키스를 하며 장난치는 레이에게 타박을 주며 여기서 그러지 말라고 등을 때렸더니 그는 뭘 잘했다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내가 거기서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냐고 받아쳤다.

“아가씨가 다른 남자랑 대화 중인 걸 보니 질투가 나서 어쩔 수가 없었구먼.”
“…레이 씨가 질투도 해요?”
“이 늙은이는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질투가 심한 아주아주 유치한 흡혈귀네만?”
“세상에….”

사쿠마 레이라는 남자는 질투와는 거리가 먼 남자라서 연애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즈가 조금 충격 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레이는 자기가 아가씨 때문에 어떤 걸 질투하고 있는지 알면 징그럽다고 이 몸을 뻥 차버릴 거라며 소리 내어 웃었고, 오늘 그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서 기쁜 안즈는 자기가 레이 씨를 차버리는 일 같은 건 없다며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그 대답에 레이는 조금 묘한 표정으로 웃었지만 금방 그것을 얼굴에서 지웠고, 안즈 또한 그것을 알지 못했다.

책상에 넣어두었다는 편지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고, 발이 달린 것도 아니니 분명히 그것을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소리인데 제 주위에는 그런 걸 굳이 꺼내가서 버릴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넘길 일도 아니었고, 많이 찝찝했지만 안즈는 이 일을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편지를 전해 준 당사자도 그 뒤에 연락이 와서 그때는 미안했다고, 앞으로도 평소처럼 친구로 지내 달라 부탁했고 안즈도 이걸 단순한 헤프닝이라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묻어두었다. 아, 레이가 질투를 했다는 것만 빼고.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 알고 있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마오를 쳐다보니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너스레를 떨며 내가 본 것만 한두 명이 아닌데, 라는 말을 해서 안즈를 웃게 만들었다. 진짠데. 너랑 사쿠마 선배가 사귀기 전에 고백하겠다고 하던 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마오는 계속 그렇게 말해주었지만 도무지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자신이 이 학교로 전학 온 지도 오래 되었고,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제게 그런 고백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한 명이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결국은 불발로 끝났으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즈는 레이가 제 고백을 받아준 것도 가끔 신기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서, 마오가 하는 말은 전부 저와 상관없는 소설 속의 이야기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반에 너한테 고백하겠다고 꽃까지 사온 녀석도 있었는데 그 녀석한테 아무 말도 들은 적 없어? 가끔 반에 놀러올 때마다 너한테 간식 같은 거 자주 주던 녀석 있잖아. 그렇게까지 티를 냈는데 몰랐다니 안즈 너도 참. 그러고 보니 2학년 B반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프로듀서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서 사탕이나 초콜렛같은 걸 선물로 주던 학생이 있었다. 부담스러울만한 선물 같은 것도 아니어서 별 생각 없이 매번 받아서 먹곤 했는데 그게 전부 자신을 좋아해서 한 행동이었다니. 자신이 이렇게 둔한 사람이었던가?

“아무튼 그 녀석이 꽃까지 사들고 와서 고백한다고 한다길래 우리는 안즈 네가 사쿠마 선배랑 사귀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차여서 오겠거니, 했거든.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방과 후에 우연히 만났는데 보기 좋게 차였다면서 풀이 죽어서 가더라고. 손에는 너한테 주겠다는 꽃다발까지 들고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렇지만 나는 고백을 받은 기억이 없는 걸. 애초에 아이돌이 평범한 나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닌데다가, 그 애들한테 특별하게 잘해준 적도 없잖아.”

자신이 이 학교에서 어떤 존재인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하는 안즈에게 그렇지 않다고, 다른 녀석들이 너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아냐며 말해줄까 하다가 마오는 입을 다물었다. 스바루나 호쿠토, 마코토에게 들은 이야기만 해도 이미 두 손가락을 전부 다 써야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런 것들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마오는 그 사람을 떠올렸다. 사쿠마 선배도 리츠 녀석과 비슷하다면, 안즈가 저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그래서 마오는 더 이야기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고, 안즈도 금방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 바뀐 화제에 맞춰주었다.



요즘 유우토 군이 연락이 안 돼.

안즈가 다른 후배들보다 조금 더 아끼는 아이돌과 1학년 후배가 있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 하는 짓은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순하고 귀여워서 동생처럼 챙겨주며 잘해줬던 후배였다. ‘누님, 어떻게 이 츠카사를 두고 그런 녀석을 예뻐하실 수 있어요!’ ‘안즈는 나보다 저런 녀석이 더 귀여운 거야?!’ 츠카사나 토리가 질투를 해서 괴롭혀도 아무 말도 못하고 그걸 받아주기만 할 정도로 착하고 순해서 사귀는 사이가 아니냐는 소문이 잠깐 돈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후배였는데, 최근 들어서 티가 날 정도로 제 연락을 피하고 어쩌다가 만나도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피해서 안즈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2학년 교실로 자주 찾아왔었는데 요즘은 그러지도 않고, 직접 1학년 교실로 찾아가도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없다며 거짓말을 해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한테 화난 거라도 있는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안즈는 이 후배와 이런 사이로 있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은 저를 만나고 도망가는 걸 끝까지 따라가서 붙잡았고, 이야기 좀 하자며 풀이 죽은 얼굴로 얌전히 제게 잡힌 후배를 가든 테라스로 끌고 갔다. 그쪽을 가는 내내 겁을 먹은 얼굴로 주위 눈치를 보면서 두리번거리더니 안도의 얼굴로 한숨을 쉬는 것이 이상했지만 안즈는 후배를 붙잡고 몇 주 동안 혼자서 궁금해 하며 고민했던 것을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어보았다. 아뇨, 저 누나한테 화난 거 없어요. 그럼 내가 싫어지기라도 했어? 친누나도 아닌데, 너한테 친누나처럼 굴어서 싫어졌어? 그런 거 아니에요. 저 누나 좋아해요. 누나가 정말 제 친누나였음 좋겠고,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런데 왜 내 연락 피했어? 만나면 인사도 하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잖아. 그게….

“누가 너 괴롭히는 거니?”

움찔. 정곡을 찔렀는지 후배는 더 말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맞네, 누가 너 괴롭히는 구나. 마오가 말한 것처럼 정말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면, 저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던 이 순하고 착한 후배를 가만 둘 리가 없었다. 사람을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그중에서 분명히 성질이 나쁜 사람이 있을 테니까. 누가 그래? 나한테만 말해봐, 응? 내가 도와줄 게. 학생회에도 말하면 되니까, 겁먹지 말고 편하게 말해봐. 등을 토닥여주면서 그렇게 말해봤지만 그래도 후배는 겁먹은 얼굴로, 정말로 무서운지 이제는 훌쩍거리기까지 하며 자기는 말 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누나. 근데 저 정말로 누나 싫어하는 거 아니니까, 그것만 알아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후배는 잡은 손을 놓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고, 안즈는 아끼는 후배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누군가가 제 책상을 뒤져서 편지를 가져갔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자신은 한 번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유난히 아끼는 동생이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하며 저를 피한다. 이쯤 되니 그냥 모른 척하고 넘길 수가 없었다. 안즈는 제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될 수 있으면 이런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은 아는 것이 너무나도 적었고,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당연히 거기에서 트릭스타와 레이는 제외되었다. 트릭스타의 네 사람은 분명히 좋은 사람이지만 객관적으로 안즈를 볼 수 없었고, 레이는… 이런 문제를 레이한테 말 할 용기 따위, 안즈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날 찾아왔다고?”

그래서 찾은 게 세나 이즈미였다.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 바쁜데 붙잡아서 허튼 소리나 한다며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정말로 싫은 것 같지는 않았고, 이즈미는 안즈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전부 들어주었다. 듣는 내내 얼굴 표정이 인기 탑모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기는 했지만 중간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일은 전혀 없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조금은 후련한 표정이던 안즈와 다르게 이즈미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너 정말 둔하네.

“항상 옆에 붙어 다니면서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어이없는 걸 떠나서 신기할 지경인데.”
“누군지 알고 있어요?”
“하아? 당연하지! 아니, 애초에 생각을 조금만 하면 나오는 답 아냐?”
“누구 길래 그래요?”
“…안즈. 너한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누가 제일 예민하게 굴지 생각해봐.”

누가 너를 좋아해서, 그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고백하려고 할 때 지금 네 주위 사람 중 누가 제일 그걸 거슬려할까? 너무 붙어 다녀서 다른 사람이 사귄다고 오해를 한다면, 지금 네 주위에 있는 사람 중 누가 제일 그걸 싫어할까. 답은 간단하잖아. 나루 군이나 카사 군이 예민하게 굴 때도 있지만 그 녀석들 보다 더 예민하게 행동할 사람이 있잖아?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이즈미가 말한 대로라면, 그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서, 안즈는 쉽사리 인정을 할 수가 없었다. 부럽네. 그런 짓을 하고도 이렇게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네가 못 믿겠다면 방법은 단 하나 뿐이라고,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 인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이즈미는 더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레이는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질투, 질투를 분명히 하기는 했지만 이건 그런 귀여운 단어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원래부터 제 연애를 반대했으니 모함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세나 이즈미는 입이 험하기는 했지만 안즈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에 레이의 웃는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웃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고 믿고 싶은데, 이즈미가 했던 말이 떠나지를 않았다. 기분이 복잡했고,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알아버렸기에 듣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인 건가 싶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안즈는 이 문제에 대해서 레이와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 진실에 대해서 알아야만 했다. 그런데 또 막상 이 사건에 대해서 진실을 듣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안즈가 레이에게 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미루고 있을 때, 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전에 일어났던 일과의 차이점은 안즈가 편지를 읽었다는 것뿐이었고, 그 편지의 내용은 할 말이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서 저와 만나달라는 내용이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거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장소와 시간을 확인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상에 넣어두었는데 다음 날 확인하니 그 편지는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이런 식으로 매번 내게 온 편지를 가져갔던 걸까. 미리 뜯어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날 점심시간에 편지의 주인공을 만나러 나갔는데, 그 자리에 저를 부른 3학년 선배는 없었고 마침 타이밍 좋게 나타난 레이가 제게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여기에 온 거냐며 말을 걸 뿐이었다.

“어…레이 씨는 여기에 무슨 일이에요?”
“뭐, 늘 그렇듯이 산책하러 나온 것이라네.”
“이 시간에요?”
“하늘을 보게나, 아가씨. 태양도 구름 뒤에 숨어서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구먼. 이 늙은이가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이지 않은고.”
“…그건 그렇네요.”

정말 날이 흐려서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지만, 오늘따라 제게 웃어주는 저 얼굴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안즈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



최근 안즈는 레이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레이와 있을 때 누군가가 제게 말을 걸어오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니 그때가 레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볼 일이 잘 없었는데, 우연히 그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싸늘하고 무서운 얼굴로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를 노려보는 모습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안즈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선을 느꼈는지 레이의 얼굴이 평소와 똑같이 바뀌었고, 안즈는 그에게 화가 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차마 그렇게 물어보지를 못했다. 질투하는 건가. 저와 함께 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제게 말을 거니까 같이 있는 시간을 방해 당했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는 건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좀 더 무거운 감정으로 느껴져서, 그걸 단순하게 질투라고 결론지을 수도 없었다.

둘이 있을 때 대화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며칠 전에 쿠누키 선생님을 따라서 방송국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여러 가지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곳에서 만났던 제게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었던 PD에 대한 것도 말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제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안즈는 레이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그날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고 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고 있는 확인했었다. 물론 안즈는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곧 바로 눈을 돌렸고, 제 무모함을 후회했었다. 그 따뜻하던 진홍빛 눈이 차갑게 식어서 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는데, 그 PD에 대해서 물어볼 때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레이 씨가 알아야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했더니 묘한 얼굴로 웃으며 그렇다면 더 물어볼 필요는 없겠다며 말을 돌렸다.

이제는 정말로 레이에게 물어봐야만 했다. 그거 전부, 레이 씨가 한 거예요? 그러나 소녀는 여전히 용기가 없었고, 혹시라도 그가 말을 돌렸을 때 어떻게 추궁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고, 안즈는 그래서 아라시와 함께 계획을 짰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할 말이 있으니 이 장소에서 이 시간에 만나자는 편지를 제 책상에 넣어두고, 그게 또 거기서 사라진다면 편지에 적힌 시간과 장소에 자신이 나가는,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간단한 계획이었다. 만약에 이 편지를 레이가 가져간 거라면 그는 반드시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이고, 거기에 안즈가 가게 된다면 현장에서 범인을(이 표현은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라시는 그게 어울린다며 짜증을 냈었다.) 잡게 되는 거니까, 안즈에게는 별 손해가 없는 계획이었다. 만약 정말 레이가 범인이라면 충격은 받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그러다가 큰 일이라도 나면 어떡하느냐고 말렸음에도 안즈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분명히 후회할 걸.’

리츠는 그렇게 말했었다. 후회할 거라고. 무엇을 후회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안즈는 진실을 알고 싶었고, 이제 더는 모른 척 넘길 수가 없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리츠가 말한 후회가 이런 거였던 걸까. 안즈는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레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아니길 바랐는데. 조금 일찍 도착한 그곳에서 안즈를 기다리고 있는 건 자신의 남자친구이자 이 자리에 없어야 할 사람인 사쿠마 레이였고,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놀란 얼굴을 숨기지도 않은 채 저를 보는 안즈에게 레이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어설픈 계획에 내가 속을 것 같았나? 레이 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으면서 그리 말했더니 그는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레이 씨 그런 사람도 아니고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어요. 말까지 더듬으면서 현실을 부정하는 안즈에게 레이가 해줄 말은 단 하나 뿐이었다.

“나는 아가씨가 생각하는 만큼 착한 사람은 아니라네.”

그 말을 들으니까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망치로 세게 내려치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 맞는 걸까? 나는 정말로, 진짜 사쿠마 레이라는 사람을 좋아했던 게 맞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마냥 그는 상냥한 얼굴로, 안즈가 알고 있던 그 차갑지만 제게만은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손으로 덜덜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 모습도 아가씨가 사랑한 사쿠마 레이라는 사람의 일부분이라네.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지 이것 또한 내 모습이고, 내가 그동안 아가씨에게 보여준 모습도 나라는 사람의 일부분이지. 안즈. 나는 너에게 거짓말만은 하지 않았단다. 그것만은 믿어주지 않겠는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그리 말하는 사람은 분명히 안즈가 알고 있는 레이였고, 그는 조금 풀이 죽은 얼굴로 그렇게 물어보았다. 자신이 무섭냐고, 그래서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다른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헤어지겠다고 말할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만은 들지 않았다.

“…저는 아직 레이 씨가 좋아요.”
“…”
“그리고…헤어지고 싶지도 않고, 옆에 있고 싶어요. 사실은, 레이 씨가 아니라는 선택지 밖에 없어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요. 저는 레이 씨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냥… 저는 이유가 듣고 싶어요. 당신이 그렇게 했어야만 하는 이유요.”

단지 이유가 알고 싶었다. 레이가 그렇게 했어야만 하는 이유가. 안즈는 다시 한 번 더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사쿠마 레이는 또 다시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그걸 전부 들어버리면 정말 무서워서 도망가 버릴 텐데.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으나 안즈가 원하니까, 그리고 그녀에게 거짓말만은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으니까, 레이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일단 먼저 용서해달라는 말부터 하고 싶구먼. 내가 이런 짓을 한 건 아가씨와 사귀기 훨씬 전부터 였으니까 말이야. 그래, 아가씨를 좋아하고 있다는 마음을 깨닫기도 전부터 다른 이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그런 짓을 해왔었다네. 사실 그러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는데 카오루 군이 그러지 뭔가. 이대로 안즈 쨩 주위에 아무도 남기지 않을 셈이야? 하고. 그래서 아가씨에 대한 내 마음과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구먼. 그런데 깨닫고 나니까 그전보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지 뭔가. 뭣도 모르고 아가씨에게 다가와서 허튼 짓을 하는 녀석들 하나하나가 전부 거슬려서 죽… 진정하게나. 내 얼굴이 그렇게 무서웠나, 아가씨? 아이돌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흐음… 그랬구먼.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단 말이지, 내俺가. 어쨌든, 아가씨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런 고백 따위 받아줄 리가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냥 그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네.

“…레이 씨?”
“아가씨. 아니, 안즈. 나는 말일세…다른 사람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네게 애정을 주는 것 자체가 싫었고 다른 이가 사랑에 빠진 얼굴로, 좋아 죽겠다는 바보 같은 얼굴로 너를 바라보는 게 정말 끔찍이도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네.”

숨이 멎는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그런 말을 하면서 진지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레이에게 안즈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거운 애정이어서, 감히 제가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깊은 애정이어서, 안즈는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한참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잡고 있는 레이의 손에 장난만 치던 안즈는 피곤한 목소리로 마지막 질문을 내뱉었다. 사귀고 난 다음에는 왜 그랬어요? 이미 안즈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일을 한 거냐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레이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들으며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분명히 사귀고 있다는 소문을 흘렸는데도 겁도 없이 달려드는 게 괘씸해서 그랬다고.

“레이 씨가 우리 사귄다고 소문 낸 거였어요? 그런 소문 돈다고 말 들었을 때 그렇게 좋다고 티내고 다녔나 싶어서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데!”

제 질문에 대한 답보다는 그게 더 화가 나서, 억울한 얼굴로, 분하다는 목소리로 그리 소리치는 안즈에게 레이는 사실 사귀기 전에도 우리가 그런 사이라고 나츠메에게 말해서 소문을 낸 것도 자신이라는 말을 해야 했지만, 거기까지는 묻지 않았으니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안즈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지. 그녀가 제게 물어본 다면 무엇이든지 빼놓지 않고 전부 말해줄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 검은 속내를 굳이 전부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편지 가져가는 거, 만나서 겁줬던 거, 그거 말고 또 뭐 했어요? 혹시 선물 같은 것도 전부 가져갔어요? 안즈에게 오는 러브레터는 읽은 뒤에 전부 태워버리거나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고, 선물 같은 게 오면 무엇인지 확인한 후에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흑심을 담은 불건전한 선물일 때는 더 생각도 않고 그대로 버렸다고 한다. 편지를 대체 왜 읽은 거냐고 했더니 혹시라도 고백하겠다고 어디로 나와 달라는 허튼 수작이라도 부리면 찾아가서 경고를 해줄 생각이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경고가 아닌 것 같아서 정말 경고만 했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제 시선을 피하는 게, 아무리 봐도 수상해서 바른 대로 말하라는 듯 노려보았더니 풀이 죽은 얼굴로 진실을 말해주었다. …협박이라는 단어로 바꿀 테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나…. 이것도 처음에는 그냥 나가지 않고 무시했는데 제 편지가 전해지지 않은 줄 알고 자꾸 보내고 아는 척을 해서 내린 극단적인 방법이었다고 하는데, 안즈는 머리가 아파 올 지경이었다.

그 카페에서의 일도 설마 알고 온 거예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부 들어야 겠다는 각오로 뭔가 수상했던,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타이밍이 좋았던 카페에서의 등장에 대해 물었더니 레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우연히 교문 앞에서 그 녀석과 이야기를 하는 아가씨를 발견했고, 두 사람이 함께 어디론가 가길래 욱하는 마음에 따라간 거라고 대답했다. 들어가서 상황을 살피는데, 아가씨에게 고백하려는 것 같길래 눈치를 줬을 뿐이라는데 그 눈치라는 게 어떤 건지 대충 감이 와서, 진짜 아이돌이 생각 없이 사람을 협박하고 다닌다고 감정을 실어서 그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그럼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얌전히 그걸 듣고 있어야 했냐고 레이는 항변했지만 안즈는 엄한 얼굴로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화를 냈다. 제가 거절할 걸 뻔히 알았으면서, 그냥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게 넘어가주지 속 좁게 그것도 못 들어줘요?

“안즈.”
“…왜요.”
“그딴 녀석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든 말든, 이 몸이 알게 뭔가?”

정말, 이 사람 정말 성격 나쁘다. 이제야 안즈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사쿠마 레이의 본모습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꽃 들고 저한테 고백하려고 했다는 그 남자애, 레이 씨도 알고 있죠?”
“촌스럽게 장미꽃을 사와서 고백하겠다고 주위에 떠벌리고 다니던 녀석말이냐?”
“대체 모르는 게 뭐예요?!”
“마치 들으라는 듯이 사람이 자고 있는데 옆에 와서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던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알게 된 거지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니 걱정 말게나.”
“정말… 저한테 고백한 적도 없는데 차였다고 돌아갔다 잖아요. 그것도 레이 씨가 무슨 짓을 한 거죠?”

그 녀석이 너에게 고백하려고 2학년 A반 교실문을 열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너를 무릎에 앉히고 키스해서 쫓아보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지, 하지말아야 할지 레이는 잠시 고민했으나 그대로 이야기해줬다가는 수치심에 혀를 깨물 것 같았기에 그 일은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자신이 겁을 줬다는 말로 돌려서 말해주었다. 겁을 준 건 맞지. 멍청하게 문 앞에 서서 가지도 않고 구경하길래 얼른 꺼지라는 듯이 노려봐줬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은 키스보다 더한 것도 보여준 적이 있지만 사쿠마 레이는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알았기에 이 문제에 관해서는 더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다행히도 안즈 또한 더 묻지 않았고, 이번에는 제가 아끼던 동생을 따로 불러내서 어떻게 겁을 줬길래 애가 그렇게 겁을 먹고 도망다니냐며 화를 냈다. 엄연히 옆에 자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안즈가 그런 놈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났던 것도 짜증났는데 동생이라는 이름 하에, 어리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귀여움 받는 게 너무 거슬려서 참다 못해 따로 불러내 웃는 얼굴로 좋게 타일렀을 뿐이다. 물론 얼굴만 웃었을 뿐 하는 말은 전혀 상냥하지 못했지만, 주제 파악도 못하고 옆에 달라 붙어 안즈에게 예쁨 받아서 좋겠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웃는 얼굴로 말했으니 협박한 건 아니었다. 정말로.

“…아가씨.”
“네, 이번에는 무슨 말로 저를 놀라게 할 생각이에요?”
“더 말할 것도 없으니 그리 겁먹지 말게나.”
“그럼 뭐 다른 할 말 있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네. 이걸 전부 듣고나니 무슨 생각이 드는가? 질린다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처음에도 말했잖아요. 그런 생각은 전혀 안들어요.”

그냥 놀랐을 뿐이예요. 다른 생각 하지말아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라 놀라고 당황한 거지 질린다거나 당신이 싫어졌다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니까 이상한 생각은 절대 하지마세요. 알았죠?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뿐이에요. 이제 안 그럴 거죠, 레이 씨? 그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준다면 안즈도 그냥 이대로 넘어가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이제는 들켰으니 더 당당하게 굴겠다는 힘 빠지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안즈도 어렴풋이 예상했던 레이의 답이었다. 괜히 눈치 보면서 하지 못했던 것들도 이제는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됐는데 내가 굳이 그만 둬야 하는가? 이게 사람들이 말하던 사쿠마 레이의 본모습인가. 안즈는 다시 한 번 더 그런 생각이 들었고, 이걸 숨기기 위해서 애를 쓰던 친구들과 그 남자는 좀 그렇지 않냐며 말리던 선배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에게 엄청난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짜증냈었는데 미안해요, 모두들.

“오늘은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편지를 읽었을 때 티가 났다네. 꾸며서 쓴 것과 진심을 담아서 쓴 편지는 같은 문장을 써도 다르게 느껴지니까 모를 수가 없지.”
“만약 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쩔려고 했어요?”
“흐음…”

아 또다, 저 얼굴. 서늘한 얼굴로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안즈는 말하지 않아도 레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아, 여기에 나온 게 나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운 얼굴이라서 안즈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정말, 매사에 여유롭고 느긋한 사람, 질투같은 건 하지도 않고 무언가에 집착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남자였는데 사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사람이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롭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봤다는 게 기쁘기도 해서 안즈는 지금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기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짓을 저질러서 뭐라고 해야하는데, 화를 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들다니 어지간히도 이 사람이 좋은 건가 싶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요. 아이돌이 다른 사람을 협박하고 다니면 어떡해요. 나중에 메이저 데뷔 했을 때 무슨 소리를 들을려고 그래요.”
“그렇게 허술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구먼.”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행동했다는 사람이 저같은 사람한테 들켜서 이런 상황이 됐어요?”
“이건 들킨 게 아니라 이 몸이 제 발로 나와서 알려준 게 아닌가?”
“진짜 말이나 못하면. 어쨌든 그렇게 협박하는 건 제발 관둬요. 자꾸 그러면 음, 으음.”
“나와 헤어지겠다고?”
“아, 그런 거 아니니까 제발 그만 좀 해요! 그런 거 제 선택지에 없거 든요?!”
“음.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니까 말이야. 이 몸도 아가씨와 헤어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네.”
“아 정말, 레이 씨 진짜 성격 나빠요… 아무튼, 앞으로도 이러면 접근금지 시킬 거예요. 말도 못 걸고, 제 옆에 오지도 못하게할 거니까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요컨대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레이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내서 안즈를 화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짓들을 그만 둘 마음도 전혀 없고, 들켜서 안즈가 접근금지 시킨다고 해서 순순히 그걸 들어줄 생각 또한 전혀 없었지만 이런 얼굴로, 화난 토끼 마냥 굴면서 저를 노려 보는 안즈가 사랑스러워서, 당분간은 얌전히 있으면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처럼 연기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안즈도 알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말해봤자 레이가 또 그런 짓을 할 거라는 걸. 그러나 사쿠마 레이가 이걸 그만 둘 생각이 없듯이, 안즈도 하지말라고 설득하는 걸 그만 둘 생각 따위 없었다. 소용 없다고 하지만 알게 된 이상 조용히 넘어가줄 수는 없었고, 헤어질 마음은 전혀 없지만 어떻게든 이런 걸 하지 못하게 바꾸고 싶었다.

아마 앞으로의 연애는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고, 그전보다 싸울 일이라던가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이 생길테지만 안즈는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레이 또한, 예전과 다른 관계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이 더 편안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까,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물론 서로 하고 있는 생각도 다르고 서로 그 고집을 꺾을 생각도 없어서 앞으로의 연애는 그전과 다르게 시끄럽고 요란하겠지만.





그런데 레이 씨.
응?
솔직히 말해요. 그 꽃다발 들고왔다는 그 애한테 이상한 거 보여줬죠.

설마?
…아, 뭐.
아, 레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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