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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푸른 장미 본문

이엑쏘

세종 : 푸른 장미

박로제 2015. 12. 1. 00:33

어느 날부터 숨을 내뱉을 때마다 입 안에서 꽃잎이 떨어졌다. 푸른색의 꽃잎이었다. 꽃잎을 내뱉을 때마다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꽃잎을 내뱉는다는 병 같은 건 여태까지 들어본 적이 없어서, 겁을 먹고 병원에 찾아 갔었다. 그리고 나의 증상을 들은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병명을 말해주었다.

 

 

구토중추화피성질환(嘔吐中枢花被性疾患)

 

어려운 이름과는 다르게 병의 증상은 간단했다. 짝사랑이 심해지면 꽃을 토해내는 병.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그 사랑을 이루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짝사랑이라고? 대체 내가 누구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 외의 치료법은 없냐고 물으니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그것뿐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몸속에 꽃이 가득 차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꽃이, 가득, 차서, 죽는다라.... 조금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 건 싫었지만.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야 했지만 오늘은 조금 걷기로 했다. 겨울은 지나갔지만, 꽃샘추위라는 것이 제법 매서워 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추웠다. 그런 찬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은 취미에도 없는 일이지만, 처음에는 숨을 내뱉을 때만 나오던 꽃잎이 이제는 입을 다물고 있어도 흘러나와서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꽃잎이 흘러나오는 걸 참으려고 하면 입안에서 그 꽃잎이 쌓여 헛구역질을 할 것 같아 참을 수도 없었다. 여러모로 성가신 병이었다.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꽃잎은 장미꽃잎 이었다. 그것도 푸른 장미.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고 좀 웃었던 것 같았다. 푸른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라고 했다. 짝사랑을 하면 꽃을 토해내는 병에 걸린 사람이 뱉는 꽃이 푸른 장미라니! 하긴, 누구를 짝사랑하는지도 모르는 자신에게 그 어떤 꽃보다 어울릴지도 모른다.

 

 

 

 

 

" , 그럼 죽는 건가. '

 

 

 

 

 

죽는 건 싫은데.

하지만 꽃에 파묻힌 죽음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짝사랑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언제 죽을지 몰라 휴학을 할까 하다가 그래도 죽기 전까지 집에만 쳐 박혀 있는 것보다는 학교라도 다니는 게 낫겠구나 싶어서 휴학신청을 취소했다. 병에 대해서 들은 친구는 짝사랑 상대도 모르는 게 너다워서 좋다며 핀잔을 주었고, 너무나도 그 친구다워서 웃고 말았더니 뭐가 좋아서 웃냐고 더 혼나버렸다. 웃으면 안 되지만 친구가 말은 저렇게 험하게 해도 사실 엄청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같이 찾아줄까? 라며 도움의 의사를 보였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친구에게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싫었다. 친구도 그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내게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가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단지 이런 게 사랑일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짝사랑하는 상대가 <없다>고 말을 했을 뿐이다.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하는 모습보다는 햇볕이 잘 드는 구석진 자리에서 보던 책을 꽉 쥐고 자는 모습을 더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시험기간에 도서관에 갔을 때 정말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자던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 지켜봤었고, 다음 날에도 그 자리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 또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보니 언제 일어나는지 궁금해 그 옆에서 그가 읽고 있던 책을 가져와 읽으며 그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가 일어나기 전에 친구의 갑작스런 호출 때문에 자리를 떠야했고, 결국 그가 잠에서 깨는 것은 보지 못했다.

 

 

다음날 다시 그 자리로 가니 그는 역시나 햇볕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번에는 분홍색 담요를 두르고 자고 있었다. 직원이 이래도 되나-싶었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도 그를 깨우러 오지 않았다. 그의 옆에 앉아 그가 읽고 있던 책을 찾아 들었다. 어제와 같은 책 일거라 생각하며 내가 읽다 만 부분을 찾기 위해 책을 넘길 때, 안에서 포스트잇이 떨어졌다.

 

 

<182.>

 

 

내가 어제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읽은 부분이었다. 그가 읽고 있던 부분일수도 있지만 어제 그가 펼쳐두었던 부분은 이야기의 후반부쯤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부분의 이야기의 중반부이니 이 포스트잇은 저를 위한 것이 맞았다. 나는 그가 일어나는 것을 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읽은 부분을 펼쳐 그의 무릎 위에 얹어놓은 뒤 나는 그 포스트잇을 챙겨 도서관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 방 책상 위에 붙여놓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그 포스트잇을 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매일 도서관에 갔었다. 그렇지만 그가 잠에서 깨는 것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냥,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가 읽고 있는 책을 읽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방학 동안에도 그를 보러 도서관에 갔지만 그는 없었다. 다른 사서에게 물어보니 그만뒀다는 말만 할 뿐, 다른 말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꽃을 토해내는 병에 걸렸다.

 

 

 

 

 

 

 

 

 

 

 

*****

 

 

 

 

 

 

 

 

상대를 알았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얼굴과 이름, 그 두 가지 밖에 몰랐다. 이름은 흔한 것이고 얼굴을 안다고 해도 사진으로 남긴 것도 아닌 눈으로 보고 머리로 기억하는 얼굴이 오래 갈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나는 그를 잊기로 했다. 죽는 건 싫지만 이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3월의 캠퍼스는 이제 봄이라고 해도 될 만큼 따뜻해졌다. 입에서는 여전히 푸른 장미 꽃잎이 흘러나왔고, 꽃향기를 맡은 나비들이 나에게 달려와 주위를 맴돌았다. 친구는 진짜 꽃미남이 됐네. 하며 웃었다. 그리고 의사는 나비들이 날라 올 정도면 속에 꽃이 꽉 찼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직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죽는구나. 그걸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낼 때, 오늘은 친구가 새로 복학한 동기를 소개 시켜줄 테니 같이 밥을 먹으로 가자고 했다. 꽃이 계속 흘러내려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고, 곧 죽을 건데 귀찮게 뭐 하러. 라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었더니 친구는 내 손을 잡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며 뭉개진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친구의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친구를 따라간 곳은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스타 집이었다. 남자끼리 무슨 파스타냐고 투덜거리니 복학한 동기의 취향이라고 했다. 특이하네. 파스타 집을 약속장소로 잡는 남자는 잘 없었기에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곧 죽을 텐데 새로 인연을 쌓아봤자 뭐하는가. 제법 염세적인 생각을 하며 딴 곳을 쳐다보고 있을 때, 복학한 동기와 친구가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

 

 

" 복학해서 다시 학교 다니려니 죽을 맛이다. 다시 휴학하고 싶다니깐? "

 

 

" 그러다가 다 늙어서 졸업하게? "

 

 

 

 

 

친구와 동기의 대화는 제법 친밀했다. 그 사이에 끼인 나만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이런 거 정말 싫은데. 마침 친구도 그 동기에게 인사하라며 나를 소개했고, 나는 자기소개를 하는 그 동기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돌린 그 곳엔,

 

 

 

 

 

그가

 

 

있었다.

 

 

 

 

 

 

 

 

" 김종인이야. 휴학해서 지금은 2학년이고- 저 녀석 때문에 자주 볼 것 같은데 친하게 지내보자. "

 

 

" 세훈아. "

 

 

 

 

 

 

 

 

, 그랬지 참.

푸른 장미의 또 다른 꽃말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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