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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반딧불이의 숲 中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반딧불이의 숲 中

박로제 2017. 3. 9. 01:22





스타페스가 가까워지면서 안즈는 너무 바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이 보고서의 수정과 의상수선, 무대점검같은 것들로 가득 차있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안즈에게 중요한 건 올해의 스타페스를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 거였고, 그 과정에서 신사는 자연스레 잊혀졌다. 문득, 갑자기 그 곳이 생각날 때도 있긴 했지만 안즈에게 우선 순위는 따로 있었고 안타깝게도 그 신사는 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스타페스가 끝나면, 크리스마스 관련 선물을 사서 찾아가자. 신님은 크리스마스같은 거 모를테니까. 바빠서 못 올수 있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안즈는 찾아가는 걸 계속 미루었다.

다행히 스타페스는 무사히 끝났다. 올해만큼 특별했던 크리스마스는 없을 거에요. 안즈는 에이치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있던 에이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중요한 일도 끝났으니 당분간은 일 생각은 말고 푹 쉬면 좋겠네, 안즈쨩.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일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쉴 거에요.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 에이치는 소리내 웃으며 좋은 꿈 꾸라며 인사로 안즈의 뺨에 입을 맞췄다. 부끄러워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가리며 안즈는 급하게 집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에이치는 현관문이 닫히는 것까지 지켜본 뒤에 차에 탔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오니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몰려와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아직 잠들기는 이른 시간이었고 읽다가 만 책이라거나, 취미삼아 만들고 있던 목도리같은 것들이 생각났지만 그동안 고생해 온 자신을 위한 상을 주고 싶었던 안즈는 푹신한 이불 안으로 꿈틀거리며 기어들어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무도 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안즈는 잘자라는 인사와 함께 방의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꿈인가?'

눈을 뜨니 안즈는 아무도 없는 꽃밭 위에 앉아있었다. 꿈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니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꽃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가 보였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콧등 위에 앉아 날개를 펄럭이는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하얀 나비 때문에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은 안즈는 신기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이때를 기다렸던다는듯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태양이 높게 떠있는데도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이 비는 여우가 시집가는 날에 내린다는 여우비가 분명했다. 그리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고 햇빛이 따뜻해서 안즈는 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 토끼?'

그런 와중에 안즈의 눈에 토끼가 보였다. 학교에서 키우고 있는 것과 매우 닮은 토끼는 안즈가 자신을 보자 귀를 쫑긋하며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따라가야할 이유는 없었지만 계속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었기에 안즈는 뛰던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붉은 눈을 깜빡이며 얼른 오라고 말하는 토끼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까만 털에 붉은 눈을 가진 토끼는 잘 뛰다가도 멈춰서서 안즈가 자신을 따라오는지 확인을 했고 그때마다 얌전히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안즈는 보여줘야 했다.

어디까지 걸어가야하지. 이제 걷는 것도 슬슬 지겨워졌을 때 토끼는 어떤 건물 안으로 잽싸게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확인한 그 건물은, 바로 안즈가 다니고 있는 유메노사키 학원이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는 꽃과 나무밖에 없었는데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건물들과 지하철역, 도로 등이 보였다. 갑자기 변한 풍경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이건 꿈이니까, 그럴수도 있지. 그런 마음으로 토끼를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즈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얌전히 따라오던 소녀가 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토끼는 다시 교문 앞으로 뛰어와 가만히 서서 안즈를 바라보았다. 그 붉은 눈은 왜 들어오지 않냐며 힐난하는 눈이었다.

'안들어가.'

안즈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꿈이니까 뭐 어때, 라고 생각할수도 있었지만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에도 영향을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그렇게 감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영력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믿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여기에 들어가지 않아. 안즈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사를 토끼에게 전달했고, 그 토끼는 더는 안즈를 붙잡지 못하고 학교 안으로 돌아갔다. 토끼가 사라지자 갑자기 주위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고,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눈을 뜨니 자신의 방안이었고, 그 익숙한 소리는 자명종 알람 소리였다. 꿈이라는 거,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는 거 아니었나? 안즈는 꿈에서 있었던 일들과 학교 안으로 사라지던 토끼가 자신을 향해 했던 말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테니 각오하는게 좋을게다.」

뭘 각오하라는 걸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안즈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걸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걸. 분명히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있음에도 온 몸이 차가워지고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결국 안즈는 그 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이상한 꿈을 자꾸 꾼다구?"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질문하는 아라시와 마찬가지로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있는 이즈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안즈는 울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오늘은 방과 후 레슨도 부활동도 없는 날이었고, 이때를 노려 아라시는 단골 가게의 신상품을 테스트해보러 갈 생각이었다. 직접 반까지 찾아 온 안즈가 시간이 있냐고 묻기 전까지는. 할 이야기가 있는데 시간이 괜찮냐고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안즈에게 없는 시간도 만들어보이겠다며 아라시는 말했고 마침 안즈를 찾으러 온 이즈미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어와 자기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심각한 고민인 것 같은데, 안즈의 오빠인 내가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잖아? 처음에는 이즈미에게도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지 고민했으나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안즈쨩의 언니와 오빠니까, 믿고 이야기해주면 안될까? 라고 말하는 아라시덕분에 결심을 했는지 이즈미에게도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바로 학교에서 나온 세 사람은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고, 최대한 사람이 오지 않는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케이크와 차가 나올 때까지 안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긴장한 얼굴로 어떻게 말해야할지 머릿 속에 떠도는 생각을 정리했고 아라시와 이즈미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걸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아무말 없이 자기 생각을 정리하던 안즈가 꺼낸 첫마디가 요즘 이상한 꿈을 꿔요, 였다.

"꿈에 누군가가 나오는데...그건 동물일 때도 있고, 사람일 때도 있어요. 물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나타날 때도 있구요. 어제 꿨던 꿈에서는 뱀이, 나왔어요."
"나와서 하는 행동은 별 거 없어요. 자꾸 저를 어딘가로 안내해요. 저는 가고 싶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따라가게 되요. 그리고 특정한 장소에 도착하는데...저기에 들어가면 정말 큰일나겠구나 싶어서 거절을 하면 그건 저에게 화를 내요. 왜 자기를 따라오지 않냐고. 슬퍼할 때도 있고 아쉬워할 때도 있는데 어제는 몹시 화를 냈어요. 자기를 버렸다고, 잡은 손을 놔버렸다고 소리치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잠을 잘 때마다 이런 꿈을 꿔서, 요즘은 자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일부러 자지 않으려고 하는데...오늘 점심시간에 깜빡 졸아서, 또 꿈을 꿨는데 그 꿈이 너무 이상해서...누군가한테 이걸 털어놔야지 이 오싹한 기분이 사라질 것 같아서 언니를 찾아갔던 거야."

안즈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라시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 안즈의 옆자리에 앉은 이즈미가 손수건을 꺼내는게 더 빨랐다. 그래, 많이 무서웠지. 지금은 울어도 괜찮아. 답지않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즈미때문에 안즈는 참고있던 울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한참을 이즈미의 품에 안겨 조용히 울기만 했다.

"별로 좋은 꿈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네. 꿈에서 누가 나를 자꾸 데려가려고 하는 건 보통 죽음을 뜻하잖아?"
"그건 그렇네. 그나마 다행인 건 안즈쨩이 계속 거부를 하고 있다는 거려나?"
"거기다가 모습을 자꾸 바꾸는 것도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유혹하는 거 아냐? 완전 짜증나네."
"안즈쨩, 오늘은 어떤 꿈이었어?"

...신사 앞에 내가 하얀 옷을 입고 서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그 안에서 걸어나왔어. 원래 꿈에서 한번 나왔던 얼굴은 다시 나오지 않는데 그 남자의 얼굴은 예전에도 한 번 봤었거든. 장소도 그때와 똑같았고. 저번에도 남자는 나를 데려가려고 했었는데 내가 거절했었어. 이번에도 그때랑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또 같이 가는 건 싫다고 말했다니 화가 났는지...난폭하게 변해서 내 손목을 잡고 신사 안으로 끌고 가려고 했어.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면서. 너무 무서워서 필사적으로 밀쳐내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남자가 뒤쫓아와서 이대로 끌려가는 건가 싶었는데, 마침 스바루군이 나를 깨워서...도망칠 수 있었어. 이번엔 정말 무서운 꿈이어서 도저히 잊고 넘길 수가 없어서 언니를 찾아온 거고.

말을 마친 안즈는 가디건 소매를 들어 아라시와 이즈미에게 보여주었고 두 사람은 그 손목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손자국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꿈에서 있었던 일들이 현실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이건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쪽의 지식은 거의 없는 이즈미와 아라시도 이건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꿈을 꾸기 시작했던 건 정확히 언제부터야, 안즈?"
"스타페스가 끝난 당일날부터요...그때 나온 건 토끼였는데, 이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했어요."
"선전포고 같은 느낌이네."
"저기, 나루군. 혹시 그 사람 알아?"
"그 사람?"
"왜. 뒷소문으로 유명한 그 사람 있잖아. 감독들이 영화나 드라마 촬영 직전에 꼭 찾아가 본다는 그 무녀."
"아아. 알고있어. 이즈미쨩도 알고 있다니 의외네."

그래서, 그 무녀가 왜? 며칠 전에 드라마 미팅때문에 감독을 만났었는데 그 사람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런 거 안믿기는 한데,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뭐라도 해보는게 낫지 않겠어? 으음. 하긴 나도 그 사람에 대해서 들은 게 있는데, 지금 상황에선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안즈쨩. 어때? 오늘 같이 가볼래?

평소라면 그래도 조금은 고민했겠지만 이미 한계까지 몰려서 생각할 힘조차도 없던 안즈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볼 수 있어? 감독한테 명함 받았으니까 전화해볼게. 안즈. 일단은 물 마시고, 그래. 조금은 진정하고 있어. 그 사람 꽤나 유명하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줄거야. 이즈미는 전화를 하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떴고, 아라시와 안즈 두 사람만이 남았다. 모든 걸 털어놓았기 때문일까, 안즈는 이곳에 올 때보다는 편한 얼굴이었고,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계속 불안해하던 안즈가 조금이라도 편해진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라시는 아까 전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던 걸 물어보았다.

"근데 말이야, 안즈쨩."
"응?"
"아까 신사 앞에 있는 꿈을 꿨을 때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고 했었지. 그거 뭐였어? 역시 죽을 때 입는 소복?"
"어? 아니야, 소복은 아니었어."
"소복이 아니라면?"

결혼할 때 신부가 입는 그 하얀 옷, 그거 였어. 가만히 듣고 있던 아라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도 안된다고 중얼거렸고, 마침 자리로 돌아오던 이즈미도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미친 거 아니냐는 말을 내뱉었다.



"네 뒤에 신이 쓰였구나."

이즈미가 전화를 했을 때 그 무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이 신사로 오라는 말을 전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무례한 태도에 짜증이 났으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기에 이즈미는 별 말 없이 안즈와 아라시를 데리고 카페를 나와 바로 택시를 잡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 신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였으며 내내 불안에 떨던 안즈도 긴장을 풀 수 있게 만드는 곳이었다. 무녀는 안즈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어주었고, 중간에 떠올리는 게 무서워 말을 끊고 불안해하는 걸 다독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녀가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악령이 아니라 신이요?"
"그래. 그치만 하는 짓이 이래서야 악신이나 다름 없구나. 최근에 신사에 간 적이 있지?"
"...신사요?"
"그래. 아니지...꼴을 보아하니 좀 오래됐구나. 가을 쯤에 학교 뒷편에서 신사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냥 지나치면 되는 걸 궁금해서 너는 한 번 올라가봤을 거고. 거기서 끝내면 되는데 매일매일 찾아갔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우리 중에 그 신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단다. 내 선조가 그 신사에 신을 가뒀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겠어. 그대로 두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신사 안에서 살아갔을 신을 네가 깨웠구나."
"그치만 신사에 다니는 동안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으셨어요!"
"매일매일 찾아와서 말도 걸어주고, 꽃도 선물해주고 평생을 거기에 갇혀 대접받지도 못하고 버려져 있던 자신을 신처럼 모셔줬으니 신은 거기에서 만족하고 아무 짓도 안했을 게다, 네가 계속 그랬다면. 그래... 겨울이 되면서 만나러 가지 못한거지?"
"바빠서...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잠자는 시간도 부족했는 걸요..."
"매일 오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발길을 끊으면 어떻게 되겠니. 하물며 그 신은 몇백년의 시간동안 그 신사에 갇혀서 외롭게 살아왔던 신인데. 거기다가 그 신사는 특별한 봉인을 해뒀기 때문에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신사란다. 나도 그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그치만 너는 그것을 찾아냈지? 자신을 찾아내주고, 매일 만나러 오는 것도 모자라서 온갖 선물을 주고 가는데 어떤 신이 너를 예뻐하지 않겠어."

무녀님도 찾지 못한 걸 어떻게 제가 찾아낼 수 있었던 건가요? 그거야 자세히는 모르지. 네가 그 신의 사람이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난건지, 아니면 너도 모르는 영력이 네 몸 안에 숨어있는건지. 확실한 건 그 신은 너를 노리고 있고, 그 꿈이 바로 그 증거라는 거다. 무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고 안즈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굳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뒤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즈미와 아라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제가 다시 그 신사로 가면, 모든 게 해결되나요?"
"아니. 아마 상황은 더 악화될게다. 이제 신은 네가 그 신사를 찾아가서 참배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거야. 다만 이상한 건...분명히 그 신은 저주를 받아 봉인당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꿈에 나타날 수가 있는 거지?"
"봉인이요?"
"너희들이 다니는 그 학교는 세워졌을 때부터 영적현상이 자주 일어나서 그 힘을 누를 아주 강력한 힘이 필요했단다. 그치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라 마땅한 수가 없었지. 그때 학교 뒷편에 신사를 지어서 강력한 힘을 가진 그 신을 그곳에 봉인하자고 한 게 내 선조란다. 선조께서 자신이 죽어도 그 신사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해놨다고 했는데 어찌 그리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지..."

어쨌든 부적을 써주마. 내가 그 신을 이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꿈에 나타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을 게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 거절해주었지만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한다. 만약 꿈에 모르는 이가 나타나서 무언가를 주려고 하거나 어디로 가자고 하면 끝까지 거절해야해. 무녀는 바로 써낸 부적을 안즈에게 건네주었다. 몸조심하거라. 이 신은 너를 아끼고 있으니 그런 짓까지는 안하겠지만...낮에 꿨다는 꿈을 보니 아예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라서 말해주는데, 신은 너를 어떤 방법으로도 데려갈 수 있어. 죽여서 영혼만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자, 같이 온 너희들도 받아가라. 필요없다고? 자기 신부가 될 인간소녀의 옆에 있던 남자를 그 신이 어디 두고 볼 것 같으냐? 몸이 재산이라는 것들이 겁도 없이.

아라시와 이즈미에게 부적을 건네 주고 그렇게 말하는 무녀를 멍하니 쳐다보며, 안즈는 이곳에 오기 전에 사고가 날 뻔 했던 것을 떠올렸다. 마치 무녀를 만나러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그날따라 위험한 일이 많이 일어났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학교에서 머리 위로 화분이ㅡ

거기까지 떠올린 안즈는 정말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



안즈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았었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집에 있는 불단에 할아버지의 사진을 놔두고 아침 점심 저녁마다 시간에 맞춰서 인사를 하고 그 날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오늘 안즈가 내게 예쁜 꽃을 선물해줬구려. 영감도 보실라우? 할아버지의 생일에는 매번 할머니가 주는 선물이 사진 옆에 놓여있었고 이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불단 위의 할아버지 사진 옆에 놓여진 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안즈는 할머니가 했던 일을 그대로 따라했다. 할머니,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그게 익숙하고 버릇이 되어서 그 신에게도 그렇게 행동했었다. 할아버지도 이런 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그렇게 데려가버리신걸까. 침대맡에 놓여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안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에게 사랑받는다는 거,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귀신이나 악마가 아니라 엄청 대단한 신이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원한 건 아니었다. 안즈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고, 신의 신부가 되고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신사의 무녀는 원래대로 라면 안즈가 그 신사의 무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즈미와 아라시가 안즈를 제쪽으로 끌어당기며 그것만은 절대 안된다고 소리쳤고 무녀 또한 옛날의 이야기지 요즘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 신은 옛날 신이라서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다고. 침대 머리맡에 무녀가 준 부적을 떨어지지 않게 붙이고 안즈는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제발 꿈을 꾸지않길 바라며.


꿈을 꾸지않은지도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 그 사이에 쇼코페스를 무사히 치뤘고, 눈물의 답례제와 졸업식도 무사히 보냈다. 이즈미는 끝까지 괜찮냐며 안즈를 걱정했고,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졸업식 때 만난 아라시는 그 사람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을 거냐고 안즈에게 물었다. 걱정시키기 싫어. 그리고 이제 꿈도 꾸지 않으니까, 괜찮을 거야. 걱정시키기 싫다는 말이 아라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믿고 이야기한 것은 기뻐서, 그리고 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리고 신학기가 시작하는 4월이 되었고, 안즈는 새로 들어 온 후배를 가르치느라 매우 바빴다. 신사와 그 이상했던 꿈은 어느새 잊혀졌고, 예전처럼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날은 장마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익숙한 신사와 곳곳에 피어있는 수국, 오늘도 어김없이 입고 있는 하얀 신부복,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여우비까지 모두 그대로였으며 신사 안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그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얼굴 한 번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야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어쩜 이리도 매정하누. 나와 함께 하는 게 그렇게도 싫은 게냐?」
'저는 여기에서 할 일이 있어요.'
「그건 걱정말거라. 나와 함께 가면 그건 모두 잊을테니까.」
'싫어요. 잊고 싶지 않아요.'
「신을 이만큼이나 거절하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게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아무리 나라도 거기까지는 상처받으니 그런 말은 하지말아줬으면 좋겠구나. 그래, 좋다. 왼손을 잠깐 내밀어주겠느냐? 그리 경계하지말거라.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테니까.」

수상하다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정말로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며 웃어보였다. 괜찮겠지, 오늘은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불안하긴 했지만 끌고가지 않겠다고 말을 들었으니 믿고 안즈는 왼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붉을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내 웃으며 그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 하나를 끼워주었다. 아무것도 받지말라고 했는데. 놀란 마음에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반지를 빼내려고 했으나 이내 다시 남자에 손이 잡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받지 않는다고 했으나 남자는 이제 네 것이니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은 널 오늘 데려가지 않다는 뜻이지 무얼 주지않겠다는 말은 아니란다, 아가씨.

「당분간은 네 뜻대로 기다려주마. 너도 떠날 준비는 해야 되지않겠느냐?」
'이거 놔요!'
「이미 늦었단다. 자아...이제 일어날 시간이 되었구나. 내일 꿈에서 또 만나자.」

「안즈.」

남자는 손바닥에 키스하며 안즈의 귓가에 한번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이름을 속삭였고, 그와 동시에 안즈는 눈을 떴다. 아침해는 이미 떠있었고,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의 내용과 그 오싹함에 안즈는 마치 한겨울 날씨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밖을 나간 사람처럼 온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문득 왼손에서 무거운 게 느껴져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제 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손처럼 느껴지는 그 낯선 신체의 일부를 들어올려보았다.

그 남자의 눈동자를 닮은 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 하나가 왼손 약지에 끼워져있었고, 이게 뜻하는 걸 안즈는 모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끌려가버릴지도 몰라.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이는 아라시였고, 안즈는 재빠르게 그 전화를 받았다. 꿈의 내용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다시 그 무녀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는데ㅡ

「안즈쨩, 어떡하니. 오늘 연락이 왔는데 그 무녀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오늘 학교 뒷편 산 밑에서 발견됐대. 어떡하면 좋지? 안즈는 전화기를 떨어뜨렸고, 울면서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빼내려고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그 반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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