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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안즈 : 반딧불이의 숲 外 본문

안산블루스따즈

레이안즈 : 반딧불이의 숲 外

박로제 2017. 5. 19. 23:34

​​







요즘따라 자꾸 어디선가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 살고있는 존재는 자신과 레이, 둘 뿐인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처음에는 무서워서 무심코 귀를 막거나 누구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는 안즈가 혼자 있을 때만 들려왔기 때문에 레이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게 제일 큰 이유였지만 나중에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해져서,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안즈는 레이와 둘이서 이곳에서 사는 게 싫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있는 건 산이나 들 뿐이고, 조금 더 걸어가면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꽃들이 피어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걸어가면 아주 푸른 바다가 펄쳐져 있었다. 하루일과는 비슷하게 반복되었지만 지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옆에 레이가 있으니까,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어쨌든 안즈는 이 생활에 아무런 불만이 있었다. 사실 몇 번은 레이가 여길 벗어나 다른 곳으로 데려가준 적이 있었다. 사람이 굉장히 많고, 엄청나게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었다. 조용한 일상에 익숙해져서 일까, 안즈는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고, 레이도 돌아가고 싶다 말하는 안즈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어보였다. 아니, 오히려 지금 그 상황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아보였다.

「그래. 이제 굳이 여기에 올 필요는 없는 것 같구나.」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안즈야? 레이는 안즈에게 대답을 재촉했고, 왜 그러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안즈는 그렇다고, 여기에 다시 올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레이는 간혹 안즈를 그 시끄러운 장소로 데려갔고, 항상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불안한 사람이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구는 레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안즈는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런 레이가, 더는 그 곳으로 안즈를 데려가지 않게 된 건 마지막으로 갔던 날 만난 남자 두 명 때문이었다.

「안즈?」
「안즈, 쨩?」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 두 명이 자신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잠시 자리를 비운 레이때문에 안즈는 그때 혼자 의자에 앉아있었고, 남자 두 명은 재빠르게 그녀에게 다가와 정말로 안즈가 맞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어보는 얼굴이 너무 다급해보이고, 애절하게 보여서 안즈는 그렇다고 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금발머리의 남자가 안즈를 끌어안으며 여태까지 어디에 있었냐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며 울었었다. 분명히 모르는 사람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 어딘가 그리운 기분이 들어서 안즈는 차마 그들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은발머리의, 자신과 비슷한 눈색을 가진 남자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의 손을 잡고 보고 싶었다 말하는데 이상하게도 안즈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주 중요한 걸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이 사람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잊어버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모순적인 감정이 차올랐다. 그렇지만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만 했다. 제 안의 무언가가 그렇게 속삭였다. 무서워도 너는 이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누구고,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고. 그러나 안즈는 그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안즈야.」

할 일을 마치고 돌아 온 레이가 안즈를 불렀고, 이상하게도 소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레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낮았고, 굉장히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안즈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두 사람을 뿌리쳤고, 당황한 그들이 안즈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소녀는 아까 전과 달리 그것들을 매정하게 쳐내며 레이에게 달려가 안겼다. 방금 전과 달리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고, 안즈는 레이에게 안겨 그렇게 속삭였다. 더는 있기 싫으니 빨리 돌아가자고.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잠시 귀를 막고 있으라 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너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었고, 험한 말을 할 때 그가 어떻게 바뀌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즈는 얌전히 귀를 막고 두 눈을 감았다. 다행히도 레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는 않았고, 다시 눈을 뜨니 원래 살던 곳에 이미 도착해있었다. 그 뒤로, 레이는 안즈와 하는 외출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상한 목소리는 그 날 이후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레이는 가봐야 할 곳이 있다 하여 집을 비웠고,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끄럽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딱히 심심하지도 않았고, 지루한 것도 아니었지만 레이가 없는 건 외로웠기 때문에 안즈는 그 목소리를 한 번 따라가보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무서움이 사라지니 남은 것은 호기심뿐이었다. 누구의 목소리길래 나에게만 들리는 걸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일까? 만나보지도 못한 존재에게 물어볼 것만 잔뜩 쌓였고, 그 목소리를 따라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즐거웠다.

목소리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시끄럽게 웅얼거리는지 안즈는 알 수가 없었는데, 목을 다친 사람이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 뭉개져있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 듣는 건 무리였다. 이대로 만나면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어째선지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이상하게도 목소리의 발음이 정확해졌다.

'좀 더, 가까이 와주겠니?'

그리고 목소리가 하나의 문장을 완벽하게 만들어냈을 때, 안즈의 눈앞에 보인 것은 아주 커다란 저택과 푸른 장미가 가득 피어있는 눈부신 정원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던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곳이지만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때 그 두 사람을 만났던 것처럼, 안즈는 또 다시 자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걸 떠올렸다.

세상의 모든 종류의 꽃이 피어있는 그 꽃밭에서도, 안즈는 푸른 장미를 본 기억이 없었다. 왜 그것만 없냐고 물어보았더니 레이는 자신이 그 꽃을 좋아하지 않아 기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왜 좋아하지 않냐고 묻고싶었지만 그리 말하는 레이의 얼굴이 무서워 입을 다물었었다.

'너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꽃이라고 생각해서 준비해봤어. 마음에 드니? 으음... 뜻이 너무 무겁다, 라... 그렇지만 이 학원에서 너만큼 이 꽃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낯선 목소리가, 어쩐지 그립게 느껴졌다. 안즈는, 이 푸른 장미를 선물받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제게 이 장미를 선물하며 저렇게 말해주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건 너이니까, 기적이라는 뜻을 담은 이 꽃은 너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누구일까? 안즈는 이곳에서 레이와 함께 했던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의 망상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분명히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고, 자신은 이 목소리의 주인을 기억해야만 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성처럼 아름다운 저택은 안즈가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알려줄테니, 어서 이곳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귓가에 들리는 건 바람소리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토오랸세, 그리고 어서 오라고 부추기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푸른 장미의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저택은 소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안즈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곳으로 걸어갔다. 열린 문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졌고, 발자국 소리도 들려왔다. ​​여기는 명부의 샛길, 귀신님에게 가는 샛길입니다. 지나가게 해주세요. 불길한 가사의 토오랸세가 시끄럽게 울려퍼졌지만 안즈는 신경쓰지 않고 그 안으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

"안돼!!"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더니 급하게 손을 뻗어 안즈가 더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잡아 끌어당겼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붙잡은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품에 안겼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레이가 확실했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레이를 바라보니 그는 처음보는 얼굴로, 엄청난 공포를 느낀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안즈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소녀를 품안에 꽉 끌어안았다. 숨이 막힌다고 밀어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괜히 힘만 낭비하는 것만 같아서 품 안에서 바르작대는 것을 그만두고 얌전히 있자 레이의 힘이 약해졌고, 안즈가 제 품 안에 있는 걸 재차 확인한 그는 눈 앞에 있는 새까만 무언가에게 소리쳤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기어들어와."

아, 또다. 안즈는 이 목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낮고, 매서운 목소리에 담겨있는 감정은​ 단순히 분노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망령주제에 잘도 여길 찾아냈구나."

목소리는 매우 위압적이었고, 무서웠지만 안즈는 거기에 다른 것이 섞여있다는 걸 알아챘다.

"내 것이다. 이미 내 손에 들어 온, 내 아이야."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네 놈한테 빼앗길 것 같으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울려퍼졌고, 그 웃음소리가 거슬린듯 얼굴을 찌푸린 레이가 안즈를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푸른 장미로 가득했던 정원이 사라졌고, 커다란 저택도 사라졌으며, 안즈의 귓가에 계속 울려퍼지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레이, 씨. 안즈가 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러보았지만 그는 아무말도 없이 소녀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돌아가자."

그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는 것 같았지만, 안즈는 그걸 못본 척하고 넘겼다. 묻고 싶은 것이 한 가득이었지만 지금 자신은 너무 피곤했고, 지금의 레이에게 물어봐선 안될 것 같았다. 나중에 분위기가 괜찮아지면 물어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안즈는 눈을 감았다.

물론 다시 눈을 떴을 때, 안즈는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에 레이에게 그날의 일에 대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



텐쇼인 에이치는 죽어가면서 그렇게 저주했다. 당신이 그녀를 숨긴 곳을 반드시 찾아내서 끝까지 쫓아가주겠다고. 그리고 그녀의 기억을 멋대로 가지고 논 죄로 평생을 불안에 떨며 살게 만들어주겠다고. 곧 죽을 놈이 입만 살아서 나불거린다며, 들고 있는 칼로 목을 찔러 더는 말을 못하게 만든 것도 레이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때는 흘려들었던 그 저주가, 지금까지 자신을 죄여올 줄은 몰랐다. 안즈는 그날의 기억을 잊었다. 기억해봤자 좋을 것이 없어서 그대로 지워버렸고, 레이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죽어서도 포기를 못했는지 저승으로 가지 못한 그 망령은 기어이 이 장소를 찾아내 안즈를 데려가려고 했다. 돌아왔을 때 안즈가 집에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갔던 곳에서 에이치를 따라 가려던 안즈를 봤을 때 레이가 느낀 것은, 분명히 공포였다.

우습게도 사쿠마 레이가 공포를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날 인간계에서, 안즈의 옆에 붙어있는 두 남자를 만났을 때도 느꼈던 감정 또한 분명히 공포였다. 다행히도 자신이 이름을 부르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와서 안심하기는 했지만 내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레이는 그날 답지않게 그들에게 화를 내고 겁을 주었다.


자업자득이었다. 오기 싫다는 소녀를 억지로 붙잡아 끌고 온 것은 자신이었고, 자신의 욕심으로 소녀의 기억을 지웠다. 텐쇼인 에이치의 저주라고 말했지만 어찌보면 이건 자신이 감당해야할 업보에 가까웠다.

"...이제와서 돌려주기엔, 너무 늦었지."

그러나 레이에겐 안즈가 필요했고, 평생을 불안에 시달릴지 언정 이 소녀가 자신의 옆에 있어주길 원했다. 안즈가 없으면, 자신은 살아갈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잠들어있는 안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레이는 빌고 또 빌었다. 이 소녀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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