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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일어나. 무리다. 안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는 무리라고 한소리해주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는 안즈에게는 지금 말을 하는 것도 무리였다. 분명히 듣기 싫게 갈라진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것밖에 못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왜 당신은 아직까지 멀쩡한건데. 괜히 짜증이 나서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눈 앞의 남자를 노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레이는 일어나라는 말만 다시 할 뿐이었다. 이곳으로 올 때부터 레이는 좀 이상했다. 지금와서는 소용없는 말이지만 사쿠마 레이는 배려를 할 줄 알았다. 손목을 잡고 끌고가거나, 하지말라는데 억지로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듣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안즈가 하지 말라는 것은 들었다. 무엇보다도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선을 넘..
점심시간이었다. 이즈미는 유닛과 관련된 문제로 안즈에게 상의할 것이 있어 그녀의 반으로 가고 있었다. 원래라면 리더인 레오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골칫덩어리 임금님은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즈미가 맡게 되었다. 귀찮은 일이었지만 마코토도 볼 수 있으니 이즈미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안즈.‘ 2학년 A반에 도착해서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찾았지만 안즈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붙어 다니는 트릭스타 또한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식당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타이밍 나쁘네. 한숨을 쉬며 돌아가려고 할 때 뒤에서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걸 들렸다. 이즈미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코토였다. '이즈미 씨?''안녕 유우군~''으으 여긴 무슨 일이에요?''안즈가 안..
책갈피는 이번에도 에디(@lovedi97)님이 그려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즈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들어주시겠어요? 레이안즈 : 꽃, 그대 03 저는 올해 17살이 되었으며, 키미사키라는 이름의 여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교우관계는 나름대로 원만한 편이며,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그 중 저와 가장 친한 친구는 눈이 아주 예쁘고, 상냥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저를 안지라는 사랑스러운 애칭으로 불러주며 예쁜 목소리로 자주 노래를 불러주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좋아하는 건 케이크, 어렸을 때는 케이크 가게의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부끄럽지만 나름 손재주가 좋아서 재봉같은 것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실제로 의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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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어.' 그때 너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네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자주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잊지 못해도 좋아. 그래도 내 옆에 있어.' 물론 다 쓸모없는 이야기다. 시간을 돌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너에게 손을 내밀 것이고, 너는 그 손을 잡을 거다. 그 시절의 나는 끔찍하게 망가진 너라도 붙잡아두고 싶어 안달난 인간이었고, 너는 자신을 위로해준다면 그 누구라도 좋았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으니까. 나는 과거를 바꿀 생각도 없고, 후회도 하지 않는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나는 네가 필요해.' 어쨌든 지금 네 옆에 있는 건 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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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는 에디(@lovedi97)님이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즈를 데려오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레이는 본가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제 성인이고 혼자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리츠 때문에 나가는 걸 망설이고 있었던 레이였다. 그러다 안즈를 맡게 되었고, 이 집에서 키우는 것보다는 나가서 둘이 함께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망설이던 독립을 드디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남자 혼자가 여자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며 걱정했고 여기서 우리가 도와줄테니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레이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자기가 키우겠다고 데려 온 아이였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실수하고 벽에 부딪히더라도 제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리츠까지 있는 집에서 안즈를 같이 키우는 건 ..
아이란 건 빨리 크는 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고 귀여웠던 그의 동생 리츠는 어느새 자라 이젠 제법 듬직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작은 손과 발은 어느새 레이처럼 커져있었고,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졌다. 목소리도 변성기를 거쳐 어른스러운 느낌이 들정도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는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받지만 그때와는 달리 얼굴선도 제법 굵어졌고 지금 리츠의 얼굴은 어린시절의 "예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릴 땐 형아, 라고 부르며 뒤를 쫓아다니던 예쁜 동생이 이제는 험한 말을 하며 형 취급도 안해주지만 레이는 리츠를 보고 있으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직접 키운 것은 아니지만 동생의 성장은 형에게 그만큼 기쁜 일이었다. 안즈도 그랬다. 손과 발, 어디..
쌍둥이라는 건 너무나도 불편했다. 단순히 얼굴이 똑같아서,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오세훈과 오세희는 성별이 달랐기 때문에 얼굴이나 목소리로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 하는 일은 없었다. 세훈과 세희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것을 넘어서 불쾌할 정도로 똑같은 두 사람의 취향때문이었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가 있으니 어른들은 어릴 때 세훈에게는 로봇을, 세희에게는 인형을 선물해줬는데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취향은 인형이었다. 그 날 인형을 두고 서로 가지겠다며 싸우는 도중에 열이 받은 세훈이 집어던진 로봇이 부서지며 만들어 낸 파편이 세희의 볼에 상처를 내는 것을 보고 식겁한 집안의 어른들은 그 다음부터 쌍둥이에게 줄 선물은 항상 똑같은 것으로 사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
01. 아내에게 미안한 사실이지만 경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매일 다정한 미소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지만 그 ‘사랑해’의 주체가 단 한번도 아내였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단언컨대 경수가 그녀를 사랑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경수가 느꼈던 그 두근거림과 설렘, 그러니깐 사랑을 하며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감정들은 23살의 도경수가 모조리 가져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은 피어나지도 못 하고 저버렸지만, 그때 받은 상처는 이미 다 아물어 단단해 졌지만, 경수는 잊을 수가 없었다. 3월의 캠퍼스를, 모르는 사람밖에 없던 강의실에서 멍청하게 앉아있던 저에게 손을 내밀던 그 남자를, 그리고 저에게 인사를 하던 그 남자의 목소리를, 그 목소리에 넋이 나가 아무 말도 ..